우리는 지금 훗날 크게 기록으로 남겨질 하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 할아버지 혹은 그보다 조금 위 세대가 2차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의 시대였다면, 우리 아버지 세대는 IMF의 시대를 살았고, 우리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얼마 전 독일 총리 메르켈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힘든 고비를 맞이했다고 말하며, 이 상황을 우리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확진자에게는 바이러스와 싸우는 물리적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 그렇지 않은 이에게는 정신적, 물리적으로 구속 받는 시간이 주어졌다.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고, 집에 있는 이 시간 동안 혹자는 코로나보다 우울증으로 먼저 죽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반면 인터넷 게임 서버는 접속이 힘들만큼 사람들이 몰리고 있고, 아마존은 십 만 명 가량의 직원을 새롭게 채용했다고 한다. 이 시대의 필요에 맞는 산업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음식점이나 편의 시설, 미용업 등에 종사하는 자영업자들에게는 경제적으로 힘든 이 시기가 누구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 세상이 돌아가는 구조는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독일의 인터넷 속도가 한국에 비해 느리다는 건 모두들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난 6년 나름 적응하며 살아왔는데, 요즘은 모두들 밖에 나가지 않고 기숙사에 있는 통에 하루에도 두세 번씩 인터넷이 끊어진다. 3분 정도 끊어졌다가 다시 와이파이가 잡히는 신호가 뜨면 가슴을 쓸어 내린다. 지금같이 집 밖에 나갈 수 없는 이 시기에 인터넷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이기 때문이다.

4명으로 구성된 WG에 살고 있는 친구는 요즘 들어 함께 사는 친구들과 주방에 오래 함께 있는 것을 피한다고 한다. 혹여 내가 혹은 친구 중 누군가가 무증상 감염자일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다. 혼자 사는 것이 삭막해서 일부러 여럿이 함께 사는 거주 형태를 선택한 친구에게 이 전쟁 같은 코로나의 시대는 새로운 종류의 결핍을 제공한다.

해마다 봄이면 찾아오는 나의 벗 비염은 올해도 나를 찾아왔다. 맑은 콧물이 주르르 흐르는데, 행여나 밖에 있을 때 콧물이 날까 두렵다. 나더라도 최대한 훌쩍이지 않으려고 남들이 보지 않을 때 재빠르게 티슈로 콧물을 닦아낸다. 때로는 콧물이 뒤로 넘어가 내 목을 간지럽히기도 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연스럽게 가벼운 기침을 했는데, 지금은 이 간지러움을 최대한 무시하려고 노력한다. 행여 가볍게 기침을 했다가 코로나 환자로 의심받을까 두려운 마음에서다.

하지만 스스로도 계속해서 질문하게 된다. 이것은 비염인가 코로나인가. 나는 작년에도 이러했나 올해 특별하게 더 심각한가. 

독일에서 휴교령을 내린 지 2주 째, 심각한 시기이므로 나도 자발적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그 사이 밀린 넷플릭스 드라마도 다 챙겨 봤고, 집도 여기저기 치우고 정리하고, 대청소를 했다. 좋아하는 와인이 세일을 하길래 몇 병 사두었는데, 혹시나 면역력이 떨어질까 두려워 입만 대고 있다. 게다가 함께 마실 술친구도 없기에 흥도 나질 않는다.

야속하게도 날씨는 계속 좋아지고, 봄이 이렇게 성큼 왔는데, 그것을 창 밖으로만 보고 있자니 답답한 마음이 들어 오늘은 기숙사 뒤에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한가한 숲을 산책했다. 탁 트이는 기분이 어쩐지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하기에, 오늘 저녁에는 친구와 영상통화로 각자 술 잔을 들고 가볍게 한 잔 하기로 약속했다. 이렇게라도 심심함과 우울함을 달래는 중이다.

매일 아침 뉴스는 하루하루 늘어가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수와 유럽의 상황, 특히 이탈리아의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는 빠른 검사와 방역으로 골든 타임을 잘 잡은 한국에게서 배워야 할 점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유학생 커뮤니티에는 한국에 갈 전세기 편이 올라와서 공동 구매를 하고 있고, 돌아올 일에 대해 걱정하기도 한다. 전쟁 같은 상황을 전하는 뉴스와 태풍의 눈처럼 고독한 집 안에서의 괴리를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일단은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를 시작해보려고 프랑스 자수 세트를 주문했다. 친구에게 우스갯소리로 자수 장인이 되기 전엔 코로나가 지나가야 할 텐데, 라고 말을 했는데, 부디 내 솜씨가 덧없이 발전하기 전에, 자수에 쏟을 시간이 없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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