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휴가 계획을 세워서 알려줘" 장기화된 코로나로 한 달째 지속되는 재택근무로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화상회의를 마무리하며 팀 리더가 덧붙였다. 이는 프로젝트 일정과 동료들의 휴가 계획이 겹치지 않도록 스케줄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인데 아직 휴가 계획을 제출하지 않은 직원들이 있단다.

순간 뜨끔했다. 독일에서 직장 생활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독일인에게 휴가는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1년 전부터 휴가 계획을 짜고, 휴가에서 돌아온 직후에도 다음 휴가를 계획한다. 마치 휴가를 가기 위해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독일은 주 6일 근무 시에는 24일, 주 5일 근무 시에는 20일이라는 법정 최소 휴가일로 이를 든든히 뒷받침한다. 이 법정 규정은 근로자에게 매년 최소 4주간의 휴가를 받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는 최소 휴가일수일 뿐이며 대게는 30일 정도의 유급휴가가 주어진다. 

이 유급휴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 모두 사용하는 것을 권장하며 병가와는 별도로 취급된다. 보통 독일에서 3일 이상 병가를 쓰게 될 경우 병원을 방문해 병가 확인서를 받아 회사에서 제출하면 된다. 다시 말하면 3일 미만인 경우는 별도의 제출 서류 없이 회사에 알리고 쉬면 되는 것이다. 휴가 시에 병가를 쓸 경우에는 첫 번째 날부터 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나름의 특별 조건이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무 상 연락을 할 시에 담당자가 휴가 중이라는 자동 이메일을 받게 되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다. 대리인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담당자의 부재에서 파생되는 불편함에 있어서는 휴가 중이니 어쩔 수 없다는 관용을 베푼다. 

하지만 이 깊은 휴가 사랑도 코로나 사태로 인해 타격을 받았다. 전 세계적으로 여행 자제가 권고되고 있고, 유럽연합 내의 국경 통제 조치도 계속하여 연장되고 있어 부활절 연휴로 시작되는 독일인들의 봄맞이 Wanderlust (방랑벽)은 갈 곳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계획처럼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을 지도 당장은 불투명해 보인다. 이로 인해 미리 구매한 항공, 숙박, 여행 보험 및 각종 이벤트 티켓의 처리로 인해 소비자와 공급자와의 갈등도 자주 목격된다.  

이번 부활절 연휴에 계획했던 포르투갈 여행은 취소됐다. 여름 휴가로 계획했던 북유럽 여행도 밝아보이지 않고 한국 방문도 당분간은 어렵게 느껴진다. 아직 올해의 휴가가 27일이나 남았다. 넉넉한 유급휴가로 쉽게 다스릴 수 있던 방랑벽을 올해는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지 고민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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