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 환상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장 

사람 대부분은 가족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에 대한 환상을, 그리고 가장 어려울 때 힘이 되는 마지막 보루인 가족에 대한 환상을 말이다.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 가족은 이런 환상에 들어맞는다. 하지만 오늘날 경제적 안정이라는 것은 얼마나 쉽게 깨어지는가. 경제공동체가 깨어지고 혈연의 가족이 남과 다름없어지는 순간 각자도생의 삶이 시작된다.

경제적 이유 말고도 가족 내에는 다양한 이유와 가족사가 존재한다. 가족이 불의의 사고로 홀로 남은 사람, 가정 안에서 소외되거나 단절된 사람, 미혼모·미혼부·독거노인, 친구만이 유일한 비상망인 사람, 친인척이 이민 상태이거나 돌보지 않는 사람, 그리고 고아로 홀로 살아 온 사람 등 다양한 개인사로 가족의 환상은 깨어진다.

“결혼하지 않아 직계가족은 없어. 형제는 오빠와 언니들이 있었지만 모두 돌아가시고 혼자만 여태 살아 있네. 조카와 친척들이 있지만 2009년 사기를 당해 가난해지니까 소식을 모두 끊고 왕래도 없고, 죽으면 시신 기증을 해서 어떻게 장례라도 치르려고 했는데, 그것도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해서 하지 못하고 말이야.” CBS라디오에 소개된 나눔과나눔의 장례지원 이야기를 듣고 메모해두었던 80대 할머니가 2017년 12월에 본인의 장례를 부탁하고 싶다며 전화했던 이야기다.

그리고 2017년 10월 늦은 오후에 나눔과나눔 사무실에 전화해 상담했던 40대 후반 남성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 아버지와는 거의 관계가 없는 상태이고, 어머니는 5년 전 즈음부터 실종 상태예요. 어머니 외가 쪽 친척은 있지만 연락하지 않고 살고 있어요. 이복형제도 있지만 역시 왕래하지 않아요. 결혼하지 않아 직계가족도 없고요. 작년에 친 누나가 돌아가셔서 이제는 정말 주위에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현재는 요양 때문에 전라도에 와 있는데, 죽음이 걱정이에요. 내가 죽으면 왕래도 없는 친척, 이복형제가 시신을 포기할 거고. 그러면 무연고사망자가 될 게 확실하다고 생각해요. 비용은 제가 어떻게든 마련해볼 테니 제 장례를 치러줄 수 있나요?”

안타까운 사연들이다. 하지만 나눔과나눔은 이분들의 장례를 지원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지원하지 못한다.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혈연의 가족, 즉 연고자가 아닌 사람은 장례와 사망신고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렇게 혈연이라는 가족의 테두리는 여러 삶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도 죽음이라는 삶의 과정에서 혈연이라는 가족의 존재가 가장 필요한 순간이다.

[저자소개]나눔과 나눔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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