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격리 38일째 파리 곳곳에 예쁜 꽃이 핀 것처럼 내게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는 모순적인 집순이인 나는 본래 뭐든 혼자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가장 싫어하는 건 혼밥이고 그 흔한 집에서의 혼술 역시 서른 넘는 해동안 다섯 손가락에 꼽힐 정도다. 외국에서 혼족으로 지낸지 꽤 많은 해가 지났지만 혼자 노는 법을 전혀 모르는 혼족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이동금지령이 시행된 초반에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갇혀 지내야 하는 시간이 곤욕스러웠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평소 바쁜 일상으로 한 두끼 대충 먹기 일수였는데 이제는 제대로 삼시세끼를 꼬박 차려먹는다. 자연스레 다양한 재료와 요리법을 시도한다. 평생 불가능으로 여겼던 베이킹에도 도전해 티라미수, 수플레 팬케익, 스콘 등을 만들며 홈카페를 즐긴다. 이뿐만 아니라 쌓아놓기만 했던 책들도 한 권, 두 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는다. 평소 소홀했던 불어 공부도 여유롭게 즐기고 있다. 아, 넷플렉스를 보며 즐기는 술 한 잔의 기쁨. 와인병이 쌓이고 있다.

굉장히 평범한 일상이지만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내게는 낯설고 지루하고 어색했다. 사람들과 함께일 때 즐겁고 살아있는 감정을 느꼈기에 항상 친구를 찾았다. 20대 초반부터 외국에서 혼자 지낸 시간이 많았지만 ‘혼자놀기’란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강제 자가격리 시간이 드디어 나를 진정한 혼족의 길로 인도해 주고 있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이토록 즐겁고 보람차고 나아가 뜻깊기까지 하니 얼마나 큰 발전인가. 스스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낄정도다.

그래도 매일 저녁 8시 창가에 나가 박수치는 일은 잘 하지 않는다. 나만 빼고 모든 이웃들이 다 가족 혹은 커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 뒤로. 최근 프랑스의 한 뉴스에는 백발의 할머님이 등장했다. 정부의 강제 자가격리 조치가 끝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할머님의 답변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할머님은 ‘가장 먼저 밖으로 나가 또래의 할아버지를 찾은 뒤 잠자리를 가질 것’이라고 유쾌하게 말씀하셨다.

5월 11일까지 지속되는 이동금지령. 하지만 이후에도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 모든 세부사항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우선 지역 간의 이동은 당분간 금지 된다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으로 부터 비교적 안전한 지역을 지키기 위한 조치로 해석한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 난 혼자 노는 법을 아주 잘 배웠으니. 자가격리가 해제되면 왠지 좀 아쉬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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