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상영관 기준으로 160만 명 가까이 본 영화이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첨예한 이슈인 여성의 안전, 젠더 폭력을 주제로 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시작하면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우선 들었다. 

“짜증이 난다. 젠더폭력 장사 영화 아니냐? 감독이 별 의식도 없으면서 사회적 관심을 끄는 주제이다 보니 영화로 만들었나? 그러다 보니 시나리오 자체가 너무 허접한 것 아닌가? 어떻게 저렇게 일방적으로 여성은 당하는 존재로만 나오나? 경찰은 무슨 호구인가? 요즘 저런 경찰이 있나? 경찰청에서 성평등위원회를 2018년 4월에 만들고 야심차게 젠더폭력 문제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선포했는데, 그해 12월에 나온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런 변화를 감독은 왜 감안하지 않았나? 골치 아프게 복잡한 설정을 하기 어려워서 그냥 대충 넘어가는 장면으로 일관했나? 그냥 늘 갖던 편견에 맞춰 경찰을 묘사하는 것이 편했나? 그나마 뒤늦게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결국 경민을 구하려고 현장에 갔던 경찰은 왜 그렇게 맥없이 죽나? 옆에서 사람이 죽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 무서워서 꼼짝도 못하던 여자가 어떻게 그런 ‘수퍼범인’을 죽이는 것이 가능했나?” 

영화의 짜증 포인트 중 하나가 「답답한 주인공 + 무능한 경찰 + 초인적인 범인」이라고 한다. 도어락에서 ‘언뜻’ 그걸 볼 수 있다. 무기력하게 늘 무서워서 벌벌 떠는, 그러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강해지는 주인공 경민(공효진), 젠더 감수성이라고는 전혀 없이 기계적으로 일 처리만 하(려)는 무능한 경찰, 게다가 맥락도 없이 그냥 범인에게 죽는 경찰 이형사(김성오), 반전이 반전같지도 않은, 모든 등장인물을 압도하는 초인적 범인 한동훈(이가섭)의 등장은 뻔하게 예측 가능하다. 처음에 범인일 듯 나오는 김기정(조복래)은 당연히 범인이 아님을 영화를 좀 봤다는 사람은 금방 알 수 있다. 영화에는 늘 있는 반전이 있기 마련이다. 김기정이 아무리 설쳐대도 경비원 한동훈이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쟤가 나중에 범인이겠군.”이라는 느낌을 쉽게 갖게 된다. 

그런데 ‘언뜻 보면’ 「답답한 주인공 + 무능한 경찰 + 초인적인 범인」 공식을 반복하는 듯한 이 영화가 16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의 발길을 어떻게 끌었을까? 그만큼 혼자 사는 여성의 안전 문제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살만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2018년 1인가구 대상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연구 「서울거주 1인가구실태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연구」를 보면 청년은 여성ㆍ남성 구별을 떠나 소득과 주거 불안정을 가장 큰 문제로 본다. 이런 공통점 외에 청년남성에게는 외로움, 청년여성에게는 안전이 가장 큰 관심사다.

늦은 밤 골목길에서 어떤 남자가 뒤에서 걸어오기만 해도 걸음걸이를 빨리해야 하는 상황이 한국의 여성들에게는 존재한다. 아버지 세대가 누렸던 특권은 누리지 못한 채 「어렸을 때 학교에서 여자들에게 밀리고, 군대 갔다 와서 취업 시험에서 밀리고, 그런데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정도로 능력있는 남자는 되어야 하기 때문에」 진짜 ‘화나는’ 남성들조차도 여성들이 경험하는 무서운 밤길은 별로 없을 것이다. 여성 사회진출 확대와 관계없이 성폭력에서 ‘남성 = 가해자, 여성 = 피해자’ 구도는 변하지 않았다. 최근 관련 처벌 규정이 강화되는 추세이지만 이 구도가 금방 변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1인가구 여성의 ‘안전’이라는 절박한 현실을 배경으로 하지 않는다면 도어락은 그냥 짜증나는 3류영화일 수 있다. 그러나 도어락을 한국의 대중은 3류영화로 만들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1인가구 여성들에게 도어락은 대충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영화이다. 그래서 또 많은 여성과 남성들이 불편함 때문에 외면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 불편함의 기저에는 지나치게 여성을 피해자로서만 부각한 내용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어락 같은 영화의 줄거리 속에서 안젤리나 졸리같은 주인공의 모습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한국사회에는 여성과 남성이 경험하는 사회화 과정이 있다.

한국사회는 어린 ‘여자아이’에게서 저항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요구하지 않는다.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남자아이들은 파랑색, 자동차, 몸으로 움직이기를 좋아하도록 어린이집ㆍ유치원에서부터 가르친다. 여자 선생님들도 그렇게 가르친다. 여자 아이들은 핑크색과 인형, 얌전함을 중심으로 표준화된다. 그리고 초등학교부터 본격적으로 ‘여자 아이는 여자아이로, 남자 아이는 남자 아이로’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학교 밖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물론 성장 과정에서의 사회화를 강조하면 여성을 지나치게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한계가 있다. 도어락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쫓기는 여성’의 모습만 있을 뿐 저항하거나 압도하는 여성의 모습은 제시하지도 기대할 수도 없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습 자체가 현실이다. ‘약한 여성’에게만 강자로 군림하는 남성의 모습 또한 현실이다. 도어락은 다시 봐도 짜증이 날 수 있는 영화이다. 그런데 짜증을 낼 수 없다. 그 정도로 아직 1인가구 여성들은 불안하다.

영화가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메시지는 1인가구 여성의 공포와 불안, 개인적 외로움을 여성 혐오로 분출하는 남성의 모습에 멈추지 않는다. 1인가구 여성의 공포와 불안을 한국사회가 받아들이는 모습 그 자체를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에 주목해 보시라.

결국 사건이 그렇게 밝혀지고 해결되었다는 뉴스가 나온다. 그런데 해당 사건 보도 뒤에 일기예보가 이어진다. 모든 소식이 중요하지만, 뉴스 시간에는 가장 중요하다고 데스크에서 판단한 소식이 앞에 나온다. 중요하지 않거나 심각하지 않은 소식들은 뒤에 배치한다. 그렇게 모든 소식을 전한 후 일기예보가 나온다. 경민의 사건은 일기예보 직전에 나오는 단신일 뿐이다. 이 사건을 대하는 사회의 모습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런 결론이 가능할 듯 하다. 도어락은 1인가구 여성의 안전 관련 불안과 공포를 전달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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