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꼽아 기다리던 이동금지령이 드디어 곧 끝난다. 프랑스 정부는 계획대로 11일 다음주 월요일부터 전국민 이동금지령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지난 3월 17일부터 꼼짝없이 집에 갇혔으니 강제 자가격리 된 지 정확히 55일 만에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며칠 전 이웃집 노부부 창문이 활짝 열렸다. 이동금지가 시행된 뒤부터 굳게 닫혀있었다. 파리를 잠시 떠났던 모양이다. 실제로 엠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이 이동금지 방침을 공포한 뒤 약 20만명에 달하는 파리지앙들이 파리를 떠났다. 많은 이들이 답답한 도심보다는 한적한 시골에서의 여유를 택한 셈이다.

매일 저녁 8시마다 들리는 박수 소리도 조금 달라졌다. 파리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의 박수가 더해져서 그런지 이전보다 훨씬 우렁차게 들린다. 박수치는 사람들의 표정 역시 굉장히 해맑다. 긴 겨울이 끝나고 꽃피는 봄을 기다리며 설레이는 사람들 같다.

대형마트는 손님들로 넘친다. 곧 이동금지가 풀리면 자유롭게 장을 볼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까 하는 의아함도 잠시. 마트에서는 세일이 한창이었다. 세일 품목 또한 다양했다. 육류를 비롯해 와인, 치약, 샴푸, 청소 용품, 빨래 세재 등 생필품들이 줄을 이었다. 나도 지금 나열한 모든 것들을 바구니에 담았다.

동네 약국 앞은 줄이 길게 늘어섰다. 최근 프랑스 정부가 약국에서 일반인들을 위한 마스크 판매를 다시 허용하면서 부터다. 3월 1일 프랑스 전역 모든 약국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마스크 판매가 금지됐다. 최전선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맞서고 있는 의료계 종사자들이 사용해야 할 마스크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약국을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수술용 마스크를 다시 판매하도록 허용했다. 프랑스 정부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스크를 어느정도 구축해놨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동안 사람들이 재택 근무를 하는 등 이동이 제한되면서 재미를 못봤을 소매치기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 주변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역 안에서 한눈 팔고 있던 내게도 슬그머니 다가왔다. 음악을 들으며 걸어가고 있다가 쎄한 기분에 깜짝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발걸음을 멈추고 그놈을 째려봤다. 아랍계 남성 2인조였다. 길을 몰라 두리번 거리는 시늉을 하더니 사라졌다. 언제든지 이곳이 파리라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도시.

지하철 역무원들은 그 누구보다도 긴장하고 있다. 이동금지령이 풀리면 사람들로 가장 붐빌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 지하철이다. 정부에선 11일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권장하고 재택근무가 힘들다면 자전거를 통한 출퇴근을 추천한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동이 파리에서 가장 편리한 게 사실이다. 개찰구와 매표소 등 역 내 곳곳에선 방역 작업이 한창이다. 또한 마스크 착용 없이는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고 역마다 이용자들에게 면마스크를 무료로 나눠줄 예정이라고 한다.

이동금지 제한 조치 ‘해제’ 보다는 사실 ‘완화’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노동자들이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고 이마저도 회사에서 발급받은 증명서가 있어야 가능하다. 또한 100km 이상은 이동할 수 없고 국경 역시 굳게 닫혀있다. 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갑자기 거세져 다시 이동이 금지될 수도 있다. 5월 11일 모두에게 조심스러운 외출이 될 것이다.

현재 파리는 해가 길어져 밤 9시가 넘어야 노을이 진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파리의 모습이 지금이다. 평소대로라면 파리지앙들이 세느강에 나와 친구들과 와인 한 잔씩 하며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을 텐데. 2020년,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면서 그동안 누렸던 일상에 감사하고 있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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