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2016년 개봉한「좋아해줘」는 현실에 기반한 미래형 1인 가구 영화다. ‘미혼모’에 대한 수근거림, 동거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의식하는 모습, 여자 앞에서 ‘완벽해야 하는’ 남자의 강박은 현실이다. 경제적 능력이 있는 여성의 당당한 삶, 혼인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아이를 책임지는 아빠, 가장보다는 파트너가 되기를 원하는 남자, 감정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표현할 줄 아는 여자는 미래형이다.

혼인신고 없이 태어나는 아이들이 전체 출생아 중 차지하는 비율이 한국은 2% 정도 된다. 아이 100명이 태어나면 그 중 두 아이만 동거관계 혹은 혼자서 낳은 경우라는 의미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에서 결혼은 출산의 필수 전제조건이다. 그래서 특히 혼자 아이를 낳은 여자는 수근거림의 대상에서 더 나아가 죄인이 된다. 내 아이를 혼자 낳아서 당당하게 키우면서 살고 있는 경아(이미연)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미래형 인물이다.

그런데 혼인신고 없이, 일단 두 사람이 사랑해서 혹은 혼자 의지로 낳은 아이가 전체 출생아 중 차지하는 비율이 프랑스는 59.7%, 노르웨이 56.2%를 비롯하여 유럽연합이나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이 40%를 넘는다. 출생아 100명 중 4~50명이 혼인신고 없이 태어난다. 만약 이 국가들의 비혼 출산율이 한국과 같다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이 나라들 출산율은 1.0도 안될 것이다. “저출산, 저출산...” 하면서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먼저 싱글의 삶, 다양한 삶의 형태를 받아들이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족도 덧붙여 본다.

아이 아빠임을 눈치채기 시작하면서 경아에게 다가가는 진우(유아인)는 핏줄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내 아이를 낳은 여자를 ‘조강지처’로 받아들이는 전통적 가부장의 모습을 살짝 보여준다. 영화 결말 부분에서 아이에게 「이제부터 너는 노봄이다, 노봄.」이라면서 아이에게 아빠의 성(姓)을 붙여주는 부분도 현재형 가부장의 모습이다. 그런데 「남자가 할 말 다하면 멋있는 거고, 여자가 다 하면 드센거냐?」라는 대사 한마디로 가부장적 남자의 모습을 지운다. 아이 때문이 아니라 경아를 사랑해서 곁에 있고 싶다는 고백도 한다. 진우가 아이 아빠로서 확인받은 후에도 굳이 혼인 장면을 보여주지도 암시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결혼에 대한 전통적 관념과 선입견에서 벗어난 많은 싱글들이 살아갈 수 있는 미래형 생활을 영화가 보여준다면 지나친 일반화일까?

주란(최지우)과 성찬(김주혁)은 집주인과 세입자 입장에서 만남을 시작한다. 집을 갖고 있지만 경제적 부담 때문에 마땅히 살 집을 찾지 못한 주란은 오히려 성찬의 공간으로 월세를 내고 들어간다. 그러나 동거에 대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여 갑자기 두 사람은 오빠와 동생, 혈연관계로 행세한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현재형 모습이다. 

 

반면 같은 공간에 살기 시작한 두 사람 관계가 그렇게 전통적이지 않다. 남자는 가사와 돌봄에 소질도 있고 취향도 있다. 여자는 학자금 대출을 스스로 갚고 혼자 모은 돈으로 집도 장만한다. 여자를 가질 수 있었던(?) 아슬아슬하게 진도나갈 듯 하던 키스 직전 장면에서도 남자는 여자를 생각해서 물러날 줄 안다. ‘남자는 앞장서 나가면서 저지르고 여자는 뒤에서 수습하고 돌보는’ 모습이 아니다. 여자의 가장이 되기보다는 파트너가 되고 싶은 남자의 모습이다. 유쾌한 미래형이다. 

수호(강하늘)와 나연(이솜)의 만남 과정에서는, 이상형으로서 남자의 조건은 「능력」, 여자는 「능력과 가슴」이라는 대화가 오간다. 남자의 「능력」과 여자의 「가슴(외모)」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자신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수호는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감정을 표현할 수 없는 현재형 한국남자다. 내 모습 그 자체로서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랑받고 살아갈 수 있음을 잘 받아들이기 어려운, 남자다움의 맨박스(Man Box)에 갇혀 있다. 반면 나연(이솜)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할 줄 아는 여자다. 사랑할 줄 알 뿐만 아니라 치열하게 직장생활도 한다. 능력도 있다. 사실 미래형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매우 가깝게 다가온 한국 여성의 모습이다. 

싱글로 살던 세 명의 여자와 세 명의 남자가 자기의 파트너를 만나는 과정을 잔잔하게 「좋아해줘」는 보여준다. 만남의 끝이 결혼이라고 굳이 보여주는 시도도 없다. 싱글로 살다가 파트너를 만난 상황을 묘사할 뿐이다.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혼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혼자 사는 것 자체가 사람과의 단절, 사랑과의 단절은 분명 아닐 것이다. 누군가와의 만남으로 가는 과정으로서 싱글의 삶, 혼삶의 의미를 영화에서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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