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2007년에 개봉하였고, 100만 명 정도가 극장에서 마주한 영화다. 여유로운 상류층 30대 부부와 열심히 직장 생활하는 중산층 40대 부부가 서로의 배우자에게 이끌려 결국 4명의 1인 가구로 변신(?)하는 내용이다.  

청년 시절에는 미혼이라서, 노인이 되면 배우자와 사별해서 1인 가구가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중년 1인 가구 탄생의 가장 큰 이유는 이혼이다. 4ㆍ50대 1인가구 셋 중 하나는 이혼으로 생겨난다(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나타난 1인가구의 현황 및 특성 보도자료, 2018년 9월 28일, 22쪽). 이혼은 왜 하나? 

통계조사 항목으로서 이혼사유에는 「배우자 부정, 정신적ㆍ육체적 학대(가정폭력), 가족 간 불화, 경제문제, 성격 차이, 건강문제, 기타, 미상」이 있다. 이 중 가장 빈도 높은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다. 「성격 차이」는 2000년 항목으로 들어가자마자 가장 선호하는(?) 이혼 사유가 되었다. 1999년까지는 「부부 불화 + 가족 간 불화」가 으뜸가는 이혼사유였다(매년 9만여 건).  그러나 「성격 차이」가 들어가고 「부부 불화」가 항목에서 빠진 2000년 이혼 사유로서 「가족 간 불화」는 「성격 차이」의 절반 수준(2만6천 건)으로 감소했다. 

이혼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대답하는 「성격 차이」는 무엇일까? 100명에게 물으면 100가지 답이 나올 것 같은 「성격 차이」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복잡한 이혼 상황을 단순하게 정리해주는 기능을 한다. 법원에서 제한된 시간, 빨리 지나보내고 싶은 상황에서 가장 무난하게 선택할 수 있는 답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이 무난함에 도전하는 영화다. 「성격 차이」가 아닌 다른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라는 이야기를 걸고 있다. 영화 제목이 「지금 성격이 같은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다.

 

결혼 몇 년이 지나면 ‘가족이 되기 때문에’ 부부의 섹스리스 생활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 결혼 전에는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도 배우자를 보면서 심장이 뛰면, 심장병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다. 영화 속 유나(엄정화)ㆍ민재(박용우) 부부의 이야기다. 소여(한채영)와 영준(이동건)은 한 때의 ‘뜨거움’마저 없었던 배경 좋은 상류층 부부이다. 재벌가 정략결혼 냄새를 풍긴다. 이렇게 출발은 달랐을지 모르지만, 두 부부는 자신의 옆에 있는 배우자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부부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각자에게 사랑이 찾아왔다.

아직도 한국사회 많은 사람들은 이들에게 찾아온 사랑을 불륜으로 부른다. 그러면 소여ㆍ영준, 유나ㆍ민재 부부의 이혼 사유는 「배우자 부정」일까 「성격 차이」일까? 영화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물에 빠진 소여를 민재가 구하고, 유나는 영준이 구한다. 사랑은 이렇게 움직인다. 그래도 누구는 그냥 살고 누구는 헤어진다. 다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이가 있어서, 남의 눈이 무서워서, 부모들의 반대로 등등 정해진 답은 없다. 

그렇지만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는 결혼이 행복으로 그냥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을 때 그건 불륜이 아니다. 「배우자 부정」으로 퉁치고 그냥 이혼사유로 갈 일은 더군다나 아니다. 네 사람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각각 1인 가구의 길을 선택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사랑에 대한 희망을 본다. 혼삶은 인생의 결말이 아닌 과정일 뿐이다.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졌지만, 사랑은 움직이면서 다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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