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이다. 독일에서는 이를 위한 특별한 단체가 있다. 바로 페어라인 (Verein)이다. '모으다, 통합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된 페어라인은 한국어로는 단체, 협회, 클럽의 의미로 번역할 수 있다.

7명 이상이 모여 단체 이름과 목적, 활동 계획 등을 정한 후 회장, 부회장 등 임원진을 선출하고 그 신청서를 지방 법원에 제출하여 최종 승인을 받으면 정식으로 하나의 페어라인이 설립된다. 우리나라의 무수한 동호회들이 일정한 규칙과 법적인 절차를 거쳐서 승인을 받으면 독일식 페어라인이 되는 셈이다.

물론 가장 많은 수의 가입자를 가지고 있는 페어라인은 스포츠 분야이다. 축구는 기본이고, 테니스, 탁구, 배드민턴, 유도, 가라데, 태권도, 펜싱 등 아주 다양한 스포츠 페어라인이 지역마다 존재한다.

처음 이사를 와서 동네에 아는 사람도 없고, 회사-집 혹은 학교-집을 반복하는 이들에게 가장 많이 추천해주는 것이 그 지역의 스포츠 페어라인에 가입하는 것일 정도로 이삼십 대의 많은 이들이 스포츠 페어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 밖에 독서 모임, 보드게임 모임, 자수 모임, 환경 보호 모임, 댄스 모임, 연극 모임, 공연 감상 모임, 자전거 모임, 특정 컴퓨터 게임 모임 등은 물론이고, 그 지역의 큰 터를 빌려 함께 농사를 짓는 페어라인, 꽃을 가꾸는 페어라인, 겨울에도 호수에서 물놀이를 하는 페어라인, 어린이용 장난감 자동차를 타는 성인들의 페어라인, 코스튬 페어라인 등 재미있는 모임들도 다양하다.

특히 흥미로웠던 페어라인 중에는 문화와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모임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한글학교이다. 독일 내에는 수십 여의 한글학교가 있는데, 한글학교의 독일식 이름 뒤에도 페어라인이 붙는다. 같은 문화적 배경을 공유한 이들이 모여서 한국어를 배울 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역사도 공부하며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는 모임이기 때문이다.

한국 뿐 아니라, 이탈리아, 포르투갈, 터키, 스페인 등등 독일에 거주하는 이주민들도 지역 내에서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모여 페어라인을 형성한다. 해마다 지역 축제에 참가해서 그들의 전통음식과 음악, 춤 등을 선보이기도 하고, 그들끼리 모여서 자신들의 문화를 이어가고자 한다. 독일에 있는 한인회도 마찬가지로 페어라인이다.

물론 독일인들도 그들의 역사와 전통을 지키려는 페어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그 예가 바로 사격 페어라인인데, 과거에 산이나 들에서 동물을 사냥했던 문화를 토대로 매년 2-3일 간의 사격 축제를 연다. 첫 날에는 사격을 할 때 입던 전통 복장을 입고 카니발을 하고 음식을 판매하고 먹는 축제를 연다. 

이 때 지역 시민들은 구경을 가기도 하고, 음식을 사먹으며 함께 즐기기도 한다. 둘째날에는 실제로 사격대회를 열어서 명사수를 겨룬다. 이 날 아침에는 전통 복장을 한 이들이 기상 나팔을 부르고, 전통 복장을 한 후 사격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날 저녁에는 맥주와 함께 파티가 이어진다. 저녁 파티는 전통 복장이 아니라도 모두가 참가할 수 있고, DJ가 음악을 틀면 함께 춤을 추며 다양한 전통음식과 함께 신나는 파티를 즐기게 된다.

처음 독일에 오면 언어적인 장벽 때문에 사람을 사귀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페어라인은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에 언어가 부족하더라도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아직 독일에 와서 생활이 지루하다면, 지금 지역 이름과 함께 본인이 관심 있는 페어라인을 검색해보면 어떨까? 비록 지금은 코로나로 많은 것들이 닫혀있지만, 잘 찾아보면 내년 쯤에는 취미가 맞는 사람들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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