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재 칼럼] 지방 덩어리와 현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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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재 칼럼] 지방 덩어리와 현미경
  • 나성재
  • 승인 2020.10.0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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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재 한국코치협회 코치

"병원에서 현미경 보는 일을 하고 있어요. 현미경 위에 세포가 정상 세포인지 비정상 세포인지를 살펴보는 일이에요.“

필자가 주최한 신효정 시인 초빙 강연회에서의 일이다. 시인의 권유로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앞에서 소개를 너무 잘해서 부담이 된다는 한 참가자는 차례가 되자 수줍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였다. 병원 진단과에서 근무하다가 1년 반 동안 육아휴직을 한 상태라고 했다. 이제 회사 복귀가 두 달이 채 안 남았다고 했다. 다시 직장 생활에 적응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휴직기간 동안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 가버렸단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강연회에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강연 전에 잠깐 시인과 차 한잔 하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이야기 해준 데로 외국어 공부를 다시 해보겠다고 다짐을 했단다. 두서없이 한참 동안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몸에서 열이 난다며 자기소개를 마무리했다. 말을 마친 그녀의 모습이 처음보다 훨씬 편안해 보였다.

문득 나는 감정이 삼겹살 지방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겹살을 먹고 난 후 설거지를 할 때면 찬물에 굳어버린 하얀색 지방이 여간 골치 아픈 것이 아니다. 뜨거울 때 먹으면 고소한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는 지방이지만 말이다. 우리의 감정도 차갑게 굳으면 설거지할 때 삼겹살 지방처럼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 마음속에서 굳어진 지방 덩어리는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우리의 몸과 삶이 가벼워지려면 이 지방 덩어리를 녹여내야 한다.

필자는 글쓰기와 말하기로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냥 글쓰기와 말하기로는 부족하다. 뜨거운 글쓰기와 말하기여야 한다. 

뜨거운 글쓰기와 뜨거운 말하기란 무엇일까? 가슴 깊은 곳에서 힘겹게 끌어 올린 진실한 자신의 이야기가 뜨거운 글쓰기와 말하기일 것이다. 이렇게 뜨거워져야 우리 몸속 뼈 사이, 근육 사이에 꽉 끼여 있는 굳은 지방 덩어리가 사르르 녹아서 빠져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짧지만 진솔한 자기소개가 끝난 후 그녀가 몸에서 열이 난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녀의 몸 한구석에 끼여 있던 지방 한 덩어리가 '툭' 떨어져 나온 것이 아닐까 엉뚱한 상상을 했다.

그녀는 두 달 후면 다시 현미경 속 세포를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그 현미경 속에 있을 비정상 세포가 어쩌면 누군가가 미처 토해내지 못한 마음의 지방 덩어리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필자 소개]
나성재 코치는 알리바바, 모토로라솔루션 등 다국적 IT기업에서 다년간 근무했고, 한국코치협회 코치이자, 현 CTP(Coaching To Purpose Company)의 대표이기도 하다. 또한 NLP 마스터로 로버트 딜츠와 스테판 길리건의 공동 저서인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 번역서를 출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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