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칼럼]홀로서기의 시작, 「에놀라 홈즈」를 보면서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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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칼럼]홀로서기의 시작, 「에놀라 홈즈」를 보면서 한다면?
  • 정재훈
  • 승인 2020.10.2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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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에놀라 홈즈(Enola Holmes)」는 2020년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영국 영화다. ‘홈즈’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추리ㆍ모험 영화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에놀라 홈즈」는 홀로 자립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있는 영화이다. 또한 여성 참정권 운동을 역사적 배경으로 하는 페미니즘 영화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요소를 합치면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만의 힘으로 자립하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에놀라가 태어난 1884년은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 운동이 가열차게 진행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에놀라의 엄마 유도리아 홈즈(헬레나 본햄 카터. Helena Bonham Carter)는 19세기 말 실존 인물 에밀린 팽크허스트(Emmeline Pankhurst)를 연상케 한다. 에밀린 팽크허스트는 1858년 태어나서 영국 여성이 참정권을 획득한 1928년 고인이 되었다. 급진적이며 전투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을 평생 이끈 인물이다. 운동의 급진성ㆍ전투성으로 인하여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말보다 행동(deeds, not words)’을 앞세웠던 팽크허스트 없이 영국 여성의 참정권 획득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름 「에놀라(Enola)」를 거꾸로 쓰면 ‘혼자(Alone)’이 된다. 그렇다고 에놀라가 ‘혼자 살아야 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인물은 아니다. 영화의 메시지는 ‘혼자 운명을 개척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팽크허스트를 연상케 하는 엄마와 함께 16세 성인이 될 때까지 성장하면서 에놀라는 문학과 철학,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교육을 받는다. 여성이 정식으로 학교를 갈 수 없었던 시기에 학교를 간 남자 형제들과 똑같은 자질과 소양을 갖춘 여성들이 쏟아져 나왔던 19세기 당시 영국 중산층 사회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사라짐은 혼자 된 에놀라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해야 했음을 의미한다. 혼자가 됨으로써 온전히 나만의 인생을 개척할 계기를 갖게 된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테니스를 치며 성장한 에놀라에게 큰오빠는 좋은 아내가 될 수 있는 ‘교양교육’을 강요한다. 그 순간 에놀라는 집을 떠난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길을 가는 여성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쓸모없는 남자 애 하나를 내버리고 런던에서 혼자 사는 여자’가 된다. 더 나아가 그 ‘쓸모없는 남자’ 아이, 튜크스베리(루이스 파트리지. Louis Partridge) 후작을 단순히 찾는 것이 아니라 구해주는 여성으로 변신한다. 그러나 에놀라를 마냥 전투적인 페미니스트로 영화가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 에놀라는 코르셋을 거부하지만 필요하면 이용할 줄도 아는 현실 지향적 인물이다. 

에놀라가 이렇게 변하면서 성장하지만 오빠들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오빠 마이크로프트 셜록(Sam Claflin, 샘 클래플린)와 셜록 홈즈(헨리 카빌, Henry Cavill)은 성차별 문제를 대하는 남성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마이크로프트는 에놀라를 여자로 길들이기 위해서 강력한 수갑을 채우는 것 같은 훈육이 필요하다고 믿는 전형적인 가부장 남성이다. 그에 비해 셜록은 성차별에 저항하는 여성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그냥 지켜보는 정도에 머문다. 가부장적 남성이 누릴 수 있는 편리와 일정 정도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수 있는 교양 있는 남성 사이를 오가는 인물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힘, 영화에서 의미하는 여성 참정권 없이 사는 인생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평범한 남성이 셜록이다.

에놀라는 엄마와 살았던 어린 시절 이미 「소란스럽고 난폭한 여자들」을 경험하였다. 주짓수(Jiujitsu) 무술을 배웠는데, 나중에 보니 남성의 폭력에 대항하는 현실적인 수단이 된다. 셜록 시리즈의 전형적인 이야기 전개처럼 「에놀라 홈즈」도 여러가지 미스터리를 풀어가면서 영화가 전개된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면 「에놀라 홈즈」는 흥미진진한 추리영화다. 그런데 자신이 준비한 인생의 자산을 갖고서 어느 순간 혼자 인생을 개척하기 시작하는 과정에 의미를 두면 보기 좋은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게다가 누군가의 관점과 기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시각, 내 입장에서 나를 발견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 주목한다면 매우 훌륭한 1인 가구 영화가 되기도 한다. 엄마가 에놀라를 혼자 놔두고 떠남으로써 에놀라의 홀로서기는 시작될 수 있었다. 지금 홀로서기를 하는 다양한 배경의 1인 가구 사람들이 있다. 어떤 홀로서기를 할 지 「에놀라 홈즈」를 보면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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