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죽음'에 대한 인식 개선 시작해야

사진 = 픽사베이
'당신은 죽음에 대해 준비하고 있습니까?' 현재 고령층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면 열 중 열은 '욕'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노인이 될 세대에게는 '준비하고 있다'는 답을 들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60년에는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운 43.9%가 노인이 돼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1인 가구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독거노인'이 급증할 것이란 의미다. 이미 지난해 기준 혼자 사는 노인이 전체 고령층의 34.2%를 차지했다. 그러나 고령화사회에 대한 우리 사회의 현실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무연고 사망자는 매년 늘고 있고, 노인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배, 노인 빈곤율은 4배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돌봄 관련 정책의 변화와 함께 '장례문화'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1코노미뉴스]는 기획 시리즈를 통해 생전에 준비하는 죽음 '웰 다잉(Well Dying)'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편집자 주

'웰 다잉'은 그동안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평안한 삶의 마무리를 일컫는 말이다. 죽음을 스스로 미리 공부하고, 준비하는 것은 자신의 생을 되돌아볼 뿐만 아니라 남은 가족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나타난 장례형식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보편화되고 있는 방식이지만, 국내에서는 생소하다. 장례문화에 대한 인식 개선, 제도적 정비가 이뤄지지 않은 결과다. 그리고 그 영향은 '죽음의 질' 평가에서 드러난다.

영국 시사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기관 EIU에 따르면 한국의 '죽음의 질'은 2015년 기준 주요 40개국 중 18위로 조사됐다. 이는 죽음을 앞둔 이에 대한 서비스 질이나 정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반면, 세계 헬스케어지수는 한국이 2위를 차지했다. 의료기술은 세계 상위권에 속하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죽음에 대한 대책은 부족하다는 의미다.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사회문제 중 하나가 '고독사'다. 가족과 아는 지인 없이 사회적 고립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채 상당 기간 방치되어 결국 '악취'로 죽음을 알리게 된다.

1인 가구 급증과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죽음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응이 요구된다. 

해외에서는 어떻게 죽음의 질을 높였을까. 

◇ 일본의 장례문화 '슈카쓰(終活·종활)'

가까운 일본의 경우 웰 다잉 개념인 '슈카쓰(終活·종활)'가 보편화되어있다. 슈카쓰는 죽음에 대비해 장례와 유서 등을 미리 준비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으로, 2009년 '주간 아사히'신문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과거 일본은 장례 준비 등을 사후 가족이나 친척들이 도맡았었다. 하지만 핵가족화·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자신의 장례를 맡기기보다 스스로 준비하는 문화가 녹아들었다. 장례준비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게 되자, 관련 업계는 다양한 슈카쓰 산업을 펼쳤다.  NHK에 따르면 슈카쓰 산업 규모가 연간 1조엔 (약 11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의 슈카쓰 열풍은 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젊은이들 사이에도 퍼졌다. 지난해 2월 일본은 20~6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슈카쓰 관련 설문조사에서 71%가 응답했고, 20~30대 중에서도 63%가 관심을 보였다.

이들이 바라는 서비스로는 "스마트폰으로 부담 없이 종활에 대한 상담"이 1위(37.7%)를 차지했다.  해당 서비스는 20~30대에서 높게 나타났으며, 50~60대는 자신의 집이나 차를 매각했을때 금액을 알려주는 서비스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응답했다.

일반인 사이에서 가장 많이 확산된 것은 '엔딩 노트(Ending note)'다. 엔딩 노트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가족들에게 남기는 유언, 자신의 장례 절차, 장례식에 초대할 사람들의 명단 등을 기록한다. 엔딩 노트는 법적인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고 자신이 엔딩 노트를 작성하면서 죽음에 대비할 뿐만 아니라 죽음을 건강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엔딩 노트 작성하는 법, 활용하는 법 등 관련 기사와 주간지, 웹사이트 등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종활 관련 박람회 '엔딩 산업전'이 지난 2015년부터 개최되고 있다. 매해 약 2만 4000~5000명 정도가 방문하는 만큼 규모가 크다. 박람회에서는 최근 IT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장례 관련 아이디어를 선보이기도 할 만큼 장례 서비스에 대한 관심도가 높고, 활성화되어있다.

◇ 세계에서 죽기 좋은 나라 1위 영국

죽음의 질 1위를 기록한 영국은 정부가 주도한 '생애말 돌봄 전략'이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생애말 돌봄 전략이 처음 시행되던 2008년에도 영국 국민들 또한 죽음에 대한 관심은 적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기준 국민의 58%가 병원에서 사망했다. 집에서 사망하는 경우는 18%, 주거용 요양시설 사망은 17%, 호스피스 사망은 4%였다. 당시 영국 국민 74%가 자택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고 답했다.

영국 정부는 1년여에 걸쳐 생애말 돌봄 전략을 선보이는 등 정부가 직접 주도하여 사회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영국은 '좋은 죽음(good death)'에 대하여 '익숙한 환경에서',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가족·친구와 함께', '고통 없이' 죽어 가는 것으로 정의하였다. 이러한 전략 실행을 통해 나이, 성별, 인종, 종교적 신념, 장애, 성적 취향, 진단 또는 사회 경제적 취약 정도와는 관계없이 생애말기에 접근하는 모든 사람에게 양질의 의료 접근이 가능해졌다. 

생애말 돌봄을 위한 단계적 접근은 1~6단계로 나뉜다. ▲1단계, 생애말기에 대한 논의 ▲2단계, 돌봄계획 수립 ▲3단계, 돌봄의 조정 ▲4단계, 양질의 돌봄 제공 ▲5단계, 임종돌봄 ▲6단계, 사별돌봄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1단계는 개방적이고 정직한 의사소통을 통해 생애말기 논의를 진행한다. 이후 2단계는 정기적인 치료계획을 합의하고, 환자가족의 요구를 평가한다. 3단계는 환자 개인별 치료를 조정하고, 발 빠른 서비스를 선보인다. 4단계는 모든 제공 장소에서 고품질 돌봄을 제공하고, 케어홈, 호스피스, 급성 병원, 지역사회병원 등 이송서비스를 지원한다. 5단계는 임종단계를 파악하고 사망 장소에 대한 요구사항과 선호를 살핀다. 또한 환자와 환자가족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6단계는 생애말 돌봄은 죽음의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다는 인식과 함께 감정적 및 실질적 사별지원을 포함하는 사별가족에게 치료를 지원한다.

죽음의 질을 평가한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紙)의 대표 데이빗 클락(David clark)은 "영국이 죽음의 질 1위를 기록한 이유는 죽음을 자유롭게 말하는 문화와 교육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상 속에서 죽음을 자유롭게 말하는 문화, 존엄한 죽음을 성찰하는 문화, 죽음을 대비하는 문화 이것은 웰 다잉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 '아시아 죽음의 질 1위' 대만

대만은 죽음의 질 지수 조사에서 아시아 1위(2015년 기준)를 기록, 세계적으로는 6위를 기록했다. 일찍부터 대만 정부는 민간단체와 손잡고 생애 말기 환자의 임종 의료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다.

이 같은 결과는 1990년 캐나다 선교사가 세운 매케이의과대학병원에 설립된 호스피스병동이 생기면서부터다. 같은 해 설립된 대만호스피스재단이 정부와 함께 호스피스 인프라 확산을 이끌었다.

대만의 호스피스 서비스는 모두 국민건강보험으로 지원된다. 1996년 '가정 호스피스 암 환자'에 건강보험이 처음 적용됐고, 2000년 병동 호스피스 임원 암 환자, 2005년 자문형 호스피스 암 환자로 확대됐다. 2009년부터는 암 외에도 알츠하이머치매, 뇌질환, 만성폐질환, 만성간경화, 만성신부전, 심부전 등 8개의 말기 질환도 건강보험 적용되도록 확대시켰다.

아울러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꾼 사례는 2000년 아시아 최초로 제정된 '자연사법(Natural death act)'이다. 20세 이상의 정상 판단이 가능한 성인은 누구나 사전에 심폐소생술 거부 및 호스피스 의향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다. 2011년부터 신청서 정보를 전 국민의 건강보험카드 IC칩에 저장해 이후 당사자가 의식이 없더라도 법적 효력을 발휘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자연사법 시행 초기에는 대만 국민들의 관심을 얻지 못했다. 이에 대만 정부와 대만호스피스재단이 10년 넘게 '선종(善終·좋은 죽음)'의 개념을 알리고 유명인이나 연예인 등이 사전 호스피스 의향 신청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홍보하면서 관심도를 높였다. 아울러 대만호스피스재단과 전문학회 등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전국을 돌며 '죽음 교육'에 나서면서 지역사회의 참여 빈도 또한 높아졌다.

◇ 국내 웰 다잉 상황은?

반면 우리나라 웰 다잉 개념은 아직 낯설다. 과거 존엄사법 통과 과정에서 웰 다잉이 언급됐고, 지자체별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웰 다잉 관련 소규모 교육이 진행되는 정도다. 일부 보험사와 상조회사가 웰 다잉 관련 상품을 내놓기도 했지만, 일본 등 해외와 비교하면 품질이나 서비스 모든 면에서 떨어진다.

실제로 세종시는 지난 2월 세종시청 앞 한누리대로에 위치한 세종민주시민교육원에서 '대한웰다잉협회 세종지부' 창립식을 진행했다. 이어 '웰 다잉 교육사업'과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작성 상담', '웰 다잉 시민운동'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웰 다잉 교육은 자저선 쓰기, 버킷리스트 작성, 아름다운 추억 만들기, 용서와 화해, 유언장 쓰기, 장례식 준비하기, 입관체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 존엄한 죽음을 위한 교육이다.

앞서 우리나라 정부는 2017년 8월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전국 시·도와 시·군·구에서는 웰 다잉 강사 양성사업과 시민을 위한 웰 다잉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세종시는 2018년 12월 ' 세종특별자치시 웰 다잉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올해 '세종시 웰 다잉 사업을 위한 연구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최근 우리나라 소수의 대학들이 교양과목으로 웰 다잉 교육 강좌를 개설·운영하기 시작했다.

충주시는 최근 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도록 웰 다잉 문화조성에 나섰다.

'웰 다잉 온라인 특별강좌'를 마련해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깨고 '웰빙 만큼 중요한 웰 다잉'이라는 인식 변화를 주기 위해 마련됐다. 강좌 진행은 최형숙 에코연구소장이 강사로 나서 '오늘을 마지막처럼 사랑하자'라는 주제로 연명의료 결정법과 유산기부, 아름다운 마무리 준비 등 강좌를 진행한다.

서산시도 '웰 다잉 웰라이프 아름다운 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다른 지자체와 유사한 내용의 교육 강좌다. 

경기복지재단에서 지원하는 '경기도 어르신 인생노트사업'도 있다. 죽음을 스스로 미리 준비하면서 살아온 날들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한 '경기도 웰 다잉 문화조성에 관한 조례'의 실효성 확보 및 미래를 준비하고 살아온 삶을 정리하는 주체적인 노년 준비 지원사업이다.

이처럼 국내 지자체가 진행하는 웰 다잉 관련 정책은 소수의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에 한정돼 있다. 일본처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죽음'에 대한 인식 변화로 이어지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편, 임종을 앞두고 연명의료결정을 이행한 환자가 제도 시행 3년차에 12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에 등록한 인원이 각각 70만8808건, 5만1832건에 이르고, 이행 건수도 12만897건으로 조사됐다.

연명의료는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 항암제 투여, 체외생명유지술, 혈압상승제를 투여해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이 같은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고 서약하는 것이 연명의료결정제도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단, 연명의료계획서는 임종이 가까운 환자나 가족의 의견을 반영해 의사가 작성한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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