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미쓰백」은 2018년 개봉한 영화다. 감독(이지원)이 직접 목격한 아동학대 사례를 소재로 7년에 걸친 준비 끝에 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미쓰백(한지민)의 엄마가 고독사한 시체로 죽은 지 한 달 정도 지난 다음 발견되는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미쓰백은 시신 수습 과정에서 경찰이자 남자친구인 장섭(이희준)이 엄마의 마지막 길을 보살피자는 권유를 매몰차게 거절한다. 어린 시절 그 엄마로부터 학대받다가 버려졌다고 믿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보는 듯한 지은(김시아)을 동네에서 여러 번 마주친 끝에 미쓰백은 지은의 보호자가 된다. 아빠, 아빠의 여자친구와 함께 살면서 끔찍한 학대를 받아온 지은에게 미쓰백은 유일한 탈출구가 된다. 그러나 살인미수 전과 기록 때문에 미쓰백은 지은의 ‘사회적 엄마’가 될 수 없다. 학대하는 아빠와 그 옆에서 더 학대하는 아빠의 여자친구이었지만, 학대를 묻어버리는 친권이 있기 때문이다. 

절정에 이른 아빠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지은이 위험스럽게 집에서 도망 나오는 순간, 미쓰백은 지은과 길을 함께 한다. 그리고 아동 유괴범의 누명도 쓴다. 이후에는 이런저런 도피 과정이 이어진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의 전개다. 경찰 남자친구의 노력으로 유괴범 누명도 벗었다. 끝까지 지은을 찾아온 아빠의 여자친구를 미쓰백이 직접 ‘응징’하는 모습도 예상대로 나온다. 그리고 지은과 미쓰백이 하나가 되면서 영화는 끝난다. 그리고 이 「미쓰백」은 2014년에 먼저 나왔던 영화 「도희야」에 이어 다시 한번 공권력을 물 먹인다.

「도희야」에서 영남(배두나)과 도희의 사회적 가족을 보았다면 「미쓰백」에서 미쓰백과 지은이 만든 사회적 가족을 본다. 이렇게 두 명의 ‘1인 여성’이 사회적 가족에 이르는 과정에서 경찰과 아동복지 체계가 ‘큰 공(?)’을 세웠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냥 육안으로 봐도 너무 뚜렷하게 온몸에 남아있는 학대의 흔적 앞에서도 경찰이 할 수 있는, 아니하고자 하는 일은 없다. 지구대 경찰이 “잘못하면 골치가 아파지는 문제가 돼서 그래요... 좋게 좋게 해결합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우리에게 그리 낯설게 보이지 않는다. (일부) 변호사들의 행태가 법정의 구현이라기보다 소송의 중재(와 수임료 수납)이듯이 영화가 보여주는 경찰의 기본 업무 역시 부모로부터 지은을 떼어내는 적극적 보호라기보다는 적당한 타협이다. 친권을 앞세운 부모와 충돌했다가 말썽이 나면 업무 평가 점수를 못 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 일단 ‘중재’부터 하고 보는 경찰의 모습을 감독이 경험했던 것일까?

경찰만 물먹은 것은 아니다. 영화가 개봉된 2018년이면 전국에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 때이다. 영화 끝 올라가는 자막에서도 해당 기관의 전문가가 영화 자문을 한 듯 이름이 나온다. 그런데 지은의 격리 보호를 문의하는 전화에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로 추정되는 “아이를 보호할 자리가 없다.”라는 목소리만 들린다. 학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친절하게 그 아빠와 여자친구에게 미리 방문 시간을 알리는 전화로만 아동복지 기관이 등장한다. 아동복지 체계는 전화에서만 존재한다. 자기 자리만 지키려고 하는 경찰과 아동복지 전문가들에게 유괴범으로까지 몰리면서 저항했기 때문에 미쓰백과 지은은 자신들만의 사회적 가족을 만들 수 있었다. 

버벅거리는 공권력이 아니었다면 영화 「미쓰백」이 세상을 만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현실도 있긴 하다. 감독께서 이웃에서 아동학대 사례를 보셨다고 하는 2010년 즈음에도 아동학대는 뜨거운 사회적 관심사였다. 1981년 제정된 아동복지법이 수시로 개정되는 주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였다. 2000년에 아동복지법을 전부개정하면서 국가는 전국 광역시도에 「아동학대예방센터」를 설치하였다.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도 당연히 함께 있었다. 이 센터를 2006년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 확대하였다. 2014년에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까지 제정ㆍ시행함으로써 아동학대에 대한 국가의 강력한 대응 의지(?)를 보였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지금은 「아동권리보장원」이 되었다. 전국 곳곳에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동학대에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법 따로, 현장 따로인 구조적 문제가 있다. 법과 제도는 나와 있지만 경찰이 한쪽 눈을 감고 이웃이 모르며 아동복지기관의 예산과 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 

아동학대처벌법으로 국가가 학대부모들에게 엄포를 놓기 시작한 지 4년 뒤에 「미쓰백」이 나왔다. 그리고 약 70만 명의 관객이 찾아서 영화의 손익 분기점을 넘기도록 해줬다. 미쓰백 한지민을 비롯한 출연진들은 여러 부문에서 수상을 하는 영광도 안았다. 아동학대에 무기력하게 대응한 국가의 덕도 좀 있을까?

만약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함께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구조가 있었다면 이지원 감독께서 이웃 아동의 학대 사례를 그렇게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학대받은 아이가 부모로부터 즉시 분리될 수 있는 조치가 가능하다면 미쓰백과 지은의 사회적 가족으로서 만남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영화를 봤지만 뒤끝이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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