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재 한국코치협회 코치

“금융 비전문가인 제가 말하는 전문적인 내용이니 이치에 맞지 않으면 듣고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알리바바 마윈이 10월 24일 상해 와이탄 금융서밋에서 진행한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자신의 연설을 시작했다.

마윈의 연설이 끝나고 사회자는 이렇게 평가했다.

“마윈 선생이 폭탄을 하나 던지고 나갔습니다.”

그 폭탄의 위력 때문이었을까 11월 5일 세계 최대 규모 IPO로 진행 예정인 알리바바의 자화사 앤트그룹의 홍콩 상해 동시 상장을 중국 금융감독위원회는 하루 전날 전격 취소시켰다. 삼성전자 시가 총액을 뛰어넘는 큰 규모의 회사 상장을 전격 중단시킨 것은 세계 경제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마윈이 기조연설에서 금융당국에 겨눈 칼날은 너무 예리해서 듣는 사람들마저 숨죽이게 했다.

“기차역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공항을 관리할 수 없다.”

”좋은 혁신가들은 감독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뒤떨어진 감독은 두려워한다.”

“은행이 담보에만 의존해 대출하는 전당포 영업을 하고 있다.”

”리스크가 제로인 것이 가장 큰 리스크이다.”

“금융당국에게 아무런 리스크가 없게 된다면  곳곳에서 리스크가 생길 것이다.”

“노인의 병에는 노인의 약이 필요하고 청년의 병에는 청년의 약이 필요하다. 왜 미국 유럽이 정한 금융 건전성에만 집착하고 새로운 시대와 중국에 맞는 혁신적인 금융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는가.”

중국의 은행은 대부분 국유은행으로 우량한 담보가 가능한 국유기업을 위주로 대출을 한다. 따라서 담보가 취약한 중소 상공인들에게 은행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또 효율성이 낮은 국유기업의 경영부실과 도산으로 발생한 엄청난 불량채권은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되었다. 따라서 리스크 관리는 중국 금융 당국의 최대 관심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중소기업, 청년들 그리고 미래 혁신을 위해 빅데이터, 핀테크 기술 등을 통해 자금을 공급해줄 수 있도록 관리감독과 건전성 일변도의 금융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주장을 마윈은 기조연설에서 줄기차게 강조했다.

이 행사에는 왕치산(王岐山) 국가 부주석, 이강(易綱) 인민은행장 등 정부 지도부와 금융 최고위급 당국자들이 대거 참석해 있었다. 이들은 이날 금융의 리스크 관리와 안정성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마윈은 정부와 금융 당국을 향해 도발한 것이다.

하지만 연설하는 동안 마윈의 확신에 찬 목소리는 힘 있게 울려 퍼졌다. 그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1999년 마윈이 알리바바를 자신의 아파트에서 창업했을 때 그가 품은 비전은 소상공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쉽게 사업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었다. 또 앤트 그룹은 거대 은행권에서 소외된 작은 개미들이 소액 자금이라도 대출받아 그들의 사업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앤트그룹 상장을 앞두고 마윈은 금융계 인사들이 듣기 좋은 축사와 덕담으로 기조연설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마윈은 자신의 비전을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자신의 비전을 위해 과감하게 몸을 던지는 그가 아니었다면 아마 오늘의 알리바바 전자상거래 제국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의 사원에 가보면 많은 사람이 관우의 상에 향불을 피우고 기도를 한다. 중국에서 관우는 재물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몇 년 전 관우 대신 마윈의 사진을 걸고 기도하는 사람이 생길 정도로 마윈은 동시대 중국인들의 존경과 추앙을 받고 있다.

마윈의 기조연설은 어쩌면 잠들어 있던 관운장이 마윈을 통해 깨어나 금융당국을 향해 자신의 청룡언월도를 휘둘렀던 것은 아닐까?

마윈은 서슬 퍼런 중국 문화대혁명 끝자락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어 개혁개방으로 그의 고향 항저우에 많은 서구 관광객이 몰려들 때, 그는 관광 가이드로 외국인들에게 영어를 배우며 서양의 새로운 시각을 접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현실과 모순에 눈을 뜨게 된다.

마윈의 아버지는 그를 위험한 아이가 될 거라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친구들은 그를 이상한 아이라고 말했다. 마윈은 학교 선생님의 말씀을, 정부 당국이 던져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진실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 위험한 아이는 몇십 년 후 중국 최고의 갑부 반열에 올랐다. 그런 그가 이제 다시 위험한 인물이 되려고 한다. 이번 사건으로 그가 중국 금융의 개혁을 이끄는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오를지 금융당국의 심기를 건드린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힐지는 지켜볼 일이다.

[필자 소개]
나성재 코치는 알리바바, 모토로라솔루션 등 다국적 IT기업에서 다년간 근무했고, 한국코치협회 코치이자, 현 CTP(Coaching To Purpose Company)의 대표이기도 하다. 또한 NLP 마스터로 로버트 딜츠와 스테판 길리건의 공동 저서인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 번역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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