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 칼럼리스트

2019년 기준, 일본 가정에서 키우는 개는 약 879만 마리, 고양이는 약 978만 마리이다. 반려동물의 수가 피크에 달했던 2008년에 비하면 개는 약 30%, 고양이는 약 10% 정도 감소하였지만 여전히 반려동물 붐은 지속되고 있다. 

초고령화 사회인 일본에서 최근 떠오르고 있는 문제는 사람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의 고령화 또한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반려동물의 수명이 늘어난 것과 연관이 있다. 30년 전만해도 개도 고양이도 평균 수명이 7세 정도였다. 하지만 현재 개의 평균 수명은 약 14세, 고양이는 약 15세로 2배 정도 늘어났다. 반려동물의 수명이 길어진 원인은 사료의 개량과 함께 의료기술이 진화하였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의 알레르기를 비롯하여 많은 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것이 가능하고 사료의 질이 높아지며 동물들도 장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물 또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면 체력이 쇠약해지거나 노화에 따른 병을 얻게 된다. 때로는 병원을 다니는 것 자체가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부담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새로운 니즈에 대응하여 일본에서는 반려동물의 왕진만을 전문으로 하는 서비스가 주목을 받고 있다. 통원이 어려운 이유는 동물뿐만 아니라 주인의 고령화도 있다. 특히 고령 1인 가구 중에는 반려 동물을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주인이 나이가 들어 운전을 하지 못하게 되거나 주인이 쇠약해져 외출이 힘든 경우에는 반려동물을 병원에 데려가기 힘들다. 대형견을 키우거나 반려동물을 여러 마리를 키우는 경우 또한 통원 자체가 힘든 경우가 많다. 

왕진 전문 서비스는 의사에게도 장점이 있다. 우선 일반 병원을 개업하는 것보다 비용면에서 부담이 적다. 현재 왕진 전문 수의사의 경우 대부분이 작은 밴이나 대형 SUV에 필요한 장비를 싣고 다니며 가정을 방문한다. 

왕진 전문 서비스의 장점은 일반 동물 병원에 비해 진료에 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도 있다. 병원 운영비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기 때문에 무리해서 여러 집을 방문하지 않아도 수익을 낼 수 있다. 얼마 전 일본의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한 왕진 전문 수의사의 경우 하루 평균 5~8마리를 진료한다. 이에 따라 동물 한 마리당 진료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반려동물의 증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동물과의 거리도 가까워진다. 반려동물을 위한 왕진 서비스와 함께 니즈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방문 간호 및 간병 서비스이다. 

2016년 개업한 ‘케어 팻 (CARE PETS)’은 동물 전속 간호사가 가정을 방문하여 강아지와 고양이를 케어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케어 팻은 일반 반려 동물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현재 서비스 의뢰의 절반 정도를 고령 동물이 차지한다.

반려동물이 몸이 아파 간병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주인이 외출해야 하는 경우에 돌봐주길 바라거나 혹은 ‘아무것도 안 해도 좋으니 반려동물과 같이 있어 달라’는 정신적인 서포트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반려동물의 최후의 시간을 병원이 아닌 자택에서 함께 보내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자택으로 의사나 간호사가 방문해주기를 바란다. 

반려동물의 고령화에 따라 의료에 관한 니즈도 다양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문 서비스가 필요한 반려동물의 수는 늘고 있지만 아직 왕진 서비스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방문 서비스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케어 팻츠는 다른 업종과 적극적으로 업무 제휴를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반려견이 있는 사람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본자동차연맹(JAF)와 제휴하여 가입자에게는 서비스를 할인해 주는 식이다.

한국에서는 동물병원으로 신고가 되지 않은 곳에서 반려동물을 진료하는 행위 즉, 왕진 의료는 불법이다. 아직 반려동물의 고령화라는 주제가 조금 이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 왕진 서비스는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친숙한 서비스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국의 보건복지부는 고령화에 따른 왕진 의료 서비스의 필요성을 느끼고 2019년 12월부터 의자가 환자를 찾아가는 왕진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의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의도이다. 

언젠가는 한국에서도 사람뿐만 아니라 나이 들어 거동이 불편한 반려 동물을 위한 왕진 서비스를 시행할 날이 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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