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 

비대면의 시대, 서울은 무연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올 한 해가 채 가기도 전에 서울시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진행하는 나눔과나눔이 600명의 장례를 진행했다. 지난해 429명의 장례와 비교하면 증가 속도가 무섭다. 또한, 작년 전국 무연고사망자가 약 2,500명이었으니 거의 4분의 1이 서울시 무연고사망자로 이미 채워진 셈이다.

이제는 무연고사망자 장례가 일상화되었다. 2020년 거의 매일 두 분을 배웅해야 했고 오전과 오후 각각 두 분씩 네 분을 배웅해야 하는 날도 잦아지고 있다. 장례가 없는 날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무연고 공영장례는 쉴 틈 없이 진행되고 있다. 2018년 서울시 공영장례가 시작된 이후 2020년은 새로운 기록 경신의 한가 됐다. 

유난히 길었던 80일간의 나날들

2020년 1월 31일부터 4월 19일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80일 동안 장례가 있었다. 80일 동안 총 161분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했다. 그 어느 해보다 봄이 간절했다. 길었던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시작은 저마다의 삶의 역사를 가진 무연고사망자분들의 사연이, 그리고 고인들의 장례를 통해 만나게 된 지인과 조문객들도 각자의 사연과 이야기가 있었다.

"나중에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면 내가 감옥에 갈 테니 장례를 치르게 해주시오" 라며 사실혼 관계의 아내 장례를 치르고 싶지만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배우자분 , "장례에 참여하려고 남편의 영정까지 준비하고 있었어요" 마찬가지로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를 떠나보내고 공영장례 일정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담당구청에서 장례를 치른 뒤에야 일정을 안내받아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하소연하셨던 분, "고인의 얼굴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십시오.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타국에서 먼저 하늘로 떠난 아들의 시신 위임서에 적힌 어머니의 절절한 부탁, "꽃처럼 바람처럼 가신 고운님을 기억하겠습니다. 편히 쉬세요" 함께 활동했던 쪽방촌 이웃을 배웅했던 동자동 주민분들,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가기 위한 8시간 이상의 비행이 가능합니다" 라는 의사의 소견서를 받아들고 하루 뒤에 안타까운 선택을 하셨던 이주노동자, 그리고 한날한시에 안타까운 선택을 하셨던 70대 노부부까지.

무연고 공영장례./ 사진=나눔과나눔
무연고 공영장례./ 사진=나눔과나눔

무연의 도시에서, 봄을 기다린다

다시 겨울이다. 코로나는 더욱 기승이고, 무연의 도시 서울은 더 많은 무연사(無緣死)와 무연고사망자들을 토해낸다. 겨울 채비로 분주했던 11월 한 달 동안 40회의 장례로 79명을 배웅했다. 또 기록 경신이다. 2020년 가장 많은 무연고사망자가 있었던 3월 69명보다 10명이나 더 많다. 
12월이 시작되자 매일같이 무연고사망자 장례요청 공문이 팩스의 알람을 울린다. 12월 초인데, 이미 중순까지 예약할 공문이 도착했다. 밤새 이야기해도 모자랄 누군가의 인생이 A4용지 한두 장과 단 몇 줄의 사연으로 끝난다. 그 안에서 우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한 인생의 삶의 조각을 모아보지만 역부족이다. 

“성명불상의 영아 모 ○○○ 무연고사망자 시신처리 위임서를 제출” 22살 엄마가 갓 태어난 아가의 시신을 위임했다. 공문에서는 그 여성이 임신했던 동안 숱한 밤을 새우며 아이를 어떻게 할지 생각했던 고민을 전혀 읽을 수 없다. 아가의 이름은 “성명불상”, 하지만 여성은 아가에게 태명을 지어주었을 수도 있다. 생각이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진다. 

“상기 고인은 기초생활수급자이며 장제급여 대상자임” 40대 후반의 남성이 고시원에서 고립사했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다. 도대체 왜 아직도 젊은 나이인데 수급자가 되고 고시원에서 홀로 임종을 맞이했을까? 이런 분들과 시인과 촌장의 ‘좋은 나라’ 가사처럼 “아무 눈물 없이, 슬픈 헤아림도 없이, 그렇게 만날 수 있다면” 어떨까? 아직도 한 참 남은 봄을 기다린다. 

2020년에 마주한 명암(明暗)

그렇게 쉼 없이 장례가 계속되는 동안 공영장례에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들이 생겼다. 이전까지 무연고사망자분들의 유골은 뿌려지거나, 봉안(납골)되거나 둘 중 하나의 방법으로만 모셔졌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지침을 근거로 자연장(수목장)을 진행한 사례가 생겼고, 이제는 지인이나 가족들이 원한다면 비용을 내고 서울시립승화원의 자연장지에 고인을 모실 수 있게됐다.  

무엇보다 법적인 가족이 아니어도 장례를 치를 수 있게끔 ‘가족대신장례’ 지침이 마련되었다. 서울에서만 시행된 지 넉 달 만에 법적 혈연의 가족이 아닌 아홉 분이 가족 대신 장례를 진행했다.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가,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동지들이, 40년 지기 친구가, 30년 아버지와 아들로 지냈던 사실상 가족처럼 지냈던 분들이, 수양딸이, 그리고 함께 삶의 동반자로 살았던 파트너가 연고자로, 장례주관자로 장례를 통해 애도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큰 변화다. 

이런 밝은 면의 뒤편엔 여전히 어두운 부분들도 있었다. 서울시 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가족대신장례’ 매뉴얼을 배포하고 교육도 진행했다. 하지만 장례식장, 병원, 동주민센터, 심지어는 구청 단위에서의 안내 미비로 인해 제도 자체도 모른 채 고인을 무연고로 보내게 된 분들이 여전히 존재했다. 그리고 돈 몇 푼을 아끼기 위해 어느 장례식장에서는 무연고사망자 관에 관보를 덮지 않기도 하고, 당연히 있어야 할 유골함 보자기가 없는 경우, 유골을 가루로 만들고 분골을 싸는 한지가 너무 얇아서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또 무연고사망자의 가족이 사정이 있어 시신을 위임했지만, 자연장으로 또는 봉안으로 요청할 때, 대놓고 “시신을 위임해 놓고 이렇게 요청하는 건 웃기잖아요?”라고 면박을 주는 담당자도 있었다. 이게 웃긴 일인지, 타인의 죽음 앞에서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를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간디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나라가 위대한 나라인지 아니면 형편없는 나라인지, 그 국민의 도덕 수준이 어떤 수준에 도달했는지 알 수 있다.” 이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죽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나라가 위대한 나라인지 아니면 형편없는 나라인지, 그 국민의 도덕 수준이 어떤 수준에 도달했는지 알 수 있다.”

무연고 사망자 자연장./ 사진=나눔과나눔
무연고 사망자 자연장./ 사진=나눔과나눔

 

무연의 도시, 그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비대면의 시대, 서울은 무연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2020년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서울이 왜 무연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는지, 그 시작은 어디서부터였는지,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비대면을 넘어서 관계마저 끊어가고 있는 이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비대면의 시대가 무연의 시대가 되지 않도록,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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