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칼럼] 「성혜의 나라」, 어디로 가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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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칼럼] 「성혜의 나라」, 어디로 가시나이까?
  • 정재훈
  • 승인 2021.01.0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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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성혜의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이 1인 가구 청년여성에게 어떤 나라인지 영화는 보여주고자 한다. 2020년 1월 말에 개봉했는데,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의 여파인지, 영화 내용이 불편해서인지 2천 명 조금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고 한다. 2018년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영화이니 작품성이 적은 관객 수의 원인은 아닌 듯 하다. 영화 관련 어느 댓글을 보니 “청년의 가난을 전시하는 영화는 이제 그만”이 눈에 띈다. 많이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 “지나치게 일부 청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닌가?” 그런데 사회의 흐름이 그렇지 않다.

2011년 청년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론」이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청년의 어려움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였다. 그런데 2014년 연애, 결혼, 출산과 더불어 내집 마련과 인간관계를 포기한 「오포세대론」이 등장할 무렵 「헬조선」 담론이 등장했다. 당시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재벌가의 따님이 이륙하려고 출발한 비행기를 되돌리는 모습에서 많은 청년들이 이 사회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 「헬조선」은 잃어버린 희망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 다음 「칠포세대론」은 꿈과 희망을 잃은 청년의 모습을 대변한다. 흙수저, 금수저로 구성된 「수저계급론」이 함께 등장하였다. 그리고 2015년 건강과 외모관리까지 포함하여 아홉가지를 포기하는 「구포세대」가 청년의 모습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무엇을 포기할 지 모르겠는데 계속 무언가를 포기해야 상황에 몰리는 「N포 세대」 청년도 등장했다. 

 

청년의 문제를 개인적 차원에서 바라보던 「삼포세대론」에서 헬조선ㆍ수저계급론으로 대변되는 사회구조의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이 불과 4~5년이 걸렸다. 한 사람의 청년이 경험하는 문제가 개인의 무능력과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사회구조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인식 변화가 그만큼 빠르게 일어났다. 그 속도만큼 청년의 좌절도 커졌다.

‘어디 숨겨 놓은 돈’이 있을 리 없는 부모를 떠나 서울로 온 성혜는 1인 가구이다. 그리고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구직을 하는 청년이다. 저녁과 새벽 시간에 편의점 알바와 신문배달 일을 한다. 그리고 인턴할 때 과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후 어느 직장에도 제대로 취업하지 못하는 성폭력 피해여성이다. 아무리 일하고 또 일해도 도대체 몇 년 후 내 앞길이 어떻게 전개될 지 예측을 할 수가 없는 1인 가구 청년여성으로 성혜의 모습이 완성된다. 기약도 없는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는 남자친구, 열정만을 강요받으면서 일의 현장에서 몸을 불살라야 하는 친구들의 상황도 성혜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성혜는 이 시대 보통청년이자 보통부모의 딸이다. 성혜의 부모가 가난한 듯 나오지만 그렇지도 않다. 근근히 돈 벌어 병원비, 간병비 대고 장성한 자식의 도움을 은근히 바라지만 요구하지는 못하는 그냥 보통 부모들이다. 여유가 조금 생기면 갈비도 사먹고 자동차 드라이브도 나가는 사람들이다. 성혜는 저소득ㆍ극빈층의 자녀가 아니다. 

성혜는 이 시대 보통여성이다. 성추행을 당했고 그냥 있지 않았다. 그래서 고소했지만 결국 본인만 사회로부터 멀어졌다. 취업도 어려워졌다. 이 시대 보통여성이 겪을 수 있는 상황이다. 보통청년이, 보통여성이 혼자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나라가 「성혜의 나라」이다. 

이 나라에서 성혜의 삶이 반전된다. 숨겨놓은 돈이 한푼도 없는 부모가 음주운전 교통사고의 사망 피해자가 된다. 그리고 성혜는 부모의 죽음으로 인한 사망 합의금 5억원을 받는다. 내 노력만으로 인생의 희망을 보기 어려운 청년의 삶이 찾아가는 판타지가 영화의 결말이다. 사실주의 영화가 판타지 영화로 바뀌는 순간이다. 「성혜의 나라」는 1인 가구 청년여성의 삶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면서도 판타지 영화로 끝을 맺는다. 부모의 재력이 없다면 희망을 찾기 어려운 청년들에게 한국사회가 줄 수 있는 유일한 답이‘5억원 판타지’라고 감독께서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82년생 김지영」은 한국사회의 성차별에 문제를 제기했고 분노를 표현했으며 변화를 요구하였다. 개봉 연도 2020년 기준으로는 한국 나이 92년생일 수 있는 성혜는 분노 하지도 변화에 대한 요구도 하지 않는다. 부모 덕분에(?) 받은 5억으로 이제 좀 일찍 은퇴한다 생각하고 모든 일을 그만 두었으며 웃음을 되찾은 성혜가 있을 뿐이다. 82년생 김지영은 그나마 결혼도 하고 아이 하나는 낳은 엄마도 되었고 다시 일해 보려는 의지도 보였다. 92년생 성혜에게 결혼, 아이, 일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한국사회가 청년여성을 대해온 결과 생겨난 변화이다. 쿼바디스 한국(Quo vadis, Korea)? 「성혜의 나라」가 하루 빨리 대답을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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