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

“10년 전, 사업에 크게 실패한 후 커다란 빚더미에 앉게 되면서 이혼을 하고 가족들과 멀어지게 됐어요. 그 후 운전기사 일을 했는데 교통사고로 왼쪽 눈을 다치는 바람에... 이렇게 몸도 좋지 않고 상황도 이렇다 보니 우울증도 심하고... 돈도 잃고 사람들도 모두 잃었어요.” 대구에 사는 한 50대 1인 가구 남성이 인근 복지관 사회복지사에게 자신의 최근 상황에 대해 말한 내용이다.

이러한 중장년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은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더욱더 위태로운 상황이다. 이를 1인 가구 개인의 문제로만 한정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그 심각성이 이미 사회 전체로 확산하였고, 이로 인한 고립사가 수면 위로 올라와 한국 사회를 위협하는 신사회 위험(New social risk)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난해 3월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가족으로부터 단절되고 사회적으로도 고립된 채 홀로 임종을 맞이하는 고립사를 막기 위해 정부가 정기적으로 실태조사를 하고,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대책을 수립·시행하게 했다. 이 법은 올해 4월 1일에 시행된다.

이러한 국회와 정부 차원의 대응도 의미 있지만, 제도가 마련되었다고 곧바로 고립사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근본적 변화를 위해서는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사느냐가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과 그로 인한 고립사 해결의 핵심요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웃과의 관계가 어떠한지, 지역사회에서 돌봄과 긴급지원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인 가족 사정으로 인해 1인 가구로 혼자 살아가도 어려움이 있을 때 부탁할 이웃이 있다면, 혹은 지역사회에서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지속적인 인기척을 내는 관심과 긴급지원 체계가 작동한다면 이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또한, 사회적으로도 고립되었다고 볼 수 없다. 최근 사회복지 영역에서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이웃과 함께 중장년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을 해결하려는 변화의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

사회복지 영역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4대 나눔목표 중 '고독사 예방을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를 나눔목표 중 하나로 설정했다. 사랑의 열매는 일명 ‘가려진 이웃’인 사회적 고립가구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지역 내에서 관계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민관협력 지원체계를 강화하는 데에 4년 동안 100억원 규모의 사업을 계획·집행할 예정이다. 이미 지난해 전국적으로 선도(시범)사업을 시작했고, 올해는 선도사업의 결과를 반영하여 3년 동안 본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해 12월에 총 74개 기관이 '고독사 예방을 위한 사회적 고립가구 지원 및 대응체계 구축사업'공모에 프로포절을 제출했고, 그중 일부 기관과 면접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람과 마을을 잇는 길 : 사·잇·길”, “안녕하세요, 괜찮아요, 함께해요-요기요”, “인(人)·잇 네트워크”, “이웃의 발견, ‘마을온이음’” 등 프로포절의 제목부터 어떻게 1인 가구와 관계를 맺을지 고민이 묻어난다. 사업계획서마다 기관이 중심역할을 하지만, 고립 1인 가구를 발굴하기 위한 다양한 지역 주민모임을 제안하고 있다. "이웃살피미", "이웃지키미", "길동무 네트워크", "인(人)·잇 주민발굴단", "든든한 이웃", "등대지기", "희망메이커", "선(SUN)한 이웃", "라인헬퍼(line helper)" 등 이름에서도 기관마다 특성을 엿볼 수 있다. 

사진=나눔과 나눔
사진=나눔과 나눔

 

지난해 선도사업을 진행했던 서울의 한 복지관은 고립가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장기간 가족과 관계가 단절된 상황이거나 가족이 있어도 가족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워 도움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불규칙한 식습관, 과도한 음주와 같은 건강하지 않은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스스로 신체 이상을 느껴도 병원비 부담으로 병원을 이용하지 않아 자신의 건강을 버려두고 있었다. 비공식지지체계도 거의 없어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었고 공적제도의 보호를 받고 싶어도 틈새에 위치하고 있어 보호받기 어려웠다. 2020년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일자리까지 잃어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매우 힘들어했다.” 이러한 고립 1인 가구의 문제는 서울뿐 아니라 경기, 부산, 대구, 포항 등 이 사업에 참여했던 기관들이 위치한 지역에서도 유사하게 보고되고 있다. 사연은 다르지만, 개인마다 겪는 다양한 생애과정 속 문제들이 정보단절과 은둔, 취약주거 등 문제와 동반하여 고립을 초래하고, 특히 사회적 재난 상황에서 외로움과 고립감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는 청년층도 예외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사업에 참여했던 익산시의 한 복지관은 지역주민들과 고립 1인 가구를 방문하고 함께 이야기도 나누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런데 다양한 서비스 중에서 실제 참여자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서비스는 “찾아와주기였다”라고 한다. 복지관은 사업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서비스제공의 욕심을 부렸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집 밖 나서기 유도, 외식하러 나가기, 마트 물건 사러 가기, 월세 등 긴급 지원비 지원, 반찬 가져가기로 동네 상점 이용하기 등 다양한 활동의 경험을 기획했다. 그중 가장 만족하는 서비스는 경제적 어려운 환경으로 물적 지원을 예상하였으나, “찾아와주는 것, 안부 물어주는 것, 말 상대 있는 것” 이었다고 한다. 이는 앞으로 고립 1인 가구를 위한 정책 마련과 활동에 있어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나눔과나눔
사진=나눔과나눔

이렇게 찾아온 주민 활동가에게 한 고시원에 사는 분은 “정말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잠시 경제의 늪에서 긴 터널을 걸어가는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신 여러분의 관심이 헛되지 않게 열심히 노력할게요. 항상 건강들 하시고 일과 가시는 발길 늘 은총이 가득하세요. 고맙습니다.”라는 손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어쩌면 사회적 고립문제의 해법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을 수도 있다. “한 동네 살면서 모르는 사람들 그냥 지나치지 말고, 서너 번 정도 만나면 한 번은 눈인사하고, 또 서너 번 지나면 안녕하시냐 물어도 보고, 그래야 아는 사람이 되는 거지. 그렇게 들여다봐야 혼자 죽은 사람이 없어지는 기라.”(동자동 사랑방 김정호 이사)라고 했던 쪽방 주민의 말을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 안 그래도 고립된 사람들은 코로나로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게다가 이제는 전염병으로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기도 했다. 이럴 때일수록 인기척을 내야 한다. 내가 혼자가 아니고,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인기척, 코로나 시대에 새로운 일상이 되어야 한다. 

1인 가구가 증가하고, 다양한 생애과정 속 문제들로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복지 사각지대인 중장년이 그렇고, 최근에는 청년도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한국 사회가 이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사회복지 영역에서는 기존의 기관 중심이 아닌 지역 내에서 지속해서 사회적 고립가구 발굴 및 돌봄의 시스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주민을 조직화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위기지원과 지속 가능한 지원 네트워크 안전망이 구축된다면 1인 가구는 있어도 혼자 사는 세상은 없어질 수 있다. 고착화된 문화가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변화가 시작되면 그 흐름 또한 막을 수 없다.

사회적 고립가구 문제가 특정 집단, 특정인의 문제가 아닌 생애사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이며 누구나 이러한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즉, 타인의 고통쯤이 아니다. 이에 주민과 주민이 서로 돌보는 관계, 서로가 서로를 위해 돌봄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구조가 될 수 있도록 독려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구조 안에서 축적된 노하우와 탈고립 경험은 지역사회를 넘어 중앙정부의 공공영역에까지 전해져 제도로 확장된다면 언젠가는 사회적 고립과 그로 인한 고립사가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날이 오리라 기대해 본다.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독사 예방을 위한 사회적 고립가구 지원 및 대응체계 구축사업의 성공적 진행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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