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 70대 초반의 어르신이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에 무연고장례 자원봉사 신청을 했다. 사실 그는 자원봉사보다는 본인의 죽음이 걱정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홀로 사는 그는 법적 가족이 있지만, 오랫동안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내다 보니 본인이 '고립사'하게 될 것 같고 결국 '무연고사망자'가 될 거라며 "내가 죽으면 집에서 죽을 텐데 주변에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본인의 장례가 걱정된 어르신이 자필로 작성한 문의 내용./ 사진=나눔과나눔
본인의 장례가 걱정된 어르신이 자필로 작성한 문의 내용./ 사진=나눔과나눔

1인 가구가 늘면서 사회적 단절과 고립이 증가하는 요즘, 이렇게 본인의 죽음과 이후 장례가 걱정인 이들의 상담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무연고사망자는 665명(공영장례 지원 인원수)으로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9년 486명 대비 179명(37%)이나 증가했다. 부산시 역시 무연고사망자가 증가 추세다. 2016년 135명이었던 부산시 무연고사망자는 2019년 95명(70%)이나 증가한 230명이었다.

이제 거대도시 서울과 부산은 무연(無緣)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법적 연고자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오랜 단절을 이유로 시신을 인수하지 않는다. 연고자가 있어도 무연고자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가족과 연락하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말한다. 사는 것도 걱정인데 죽음마저도 걱정이라고 말이다.

복지국가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게 하는 사회보장을 전제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요람에서부터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복지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죽음과 무덤까지의 사회보장도 고민해야 할 상황이 도래했다.

해마다 사회적 고립으로 발생하는 고립사와 무연고사망자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안타까운 점은 무엇인가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새로운 시장이 의지만 있다면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갑자기 가족 중 누군가 돌아가셨다고 가정해 보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상조회사와 장례식장에 맡기면 된다. 만약 친척도 없고, 외동으로 형제도 없다면, 게다가 경제적 상황도 여의찮다면 어떨까? 공공기관 중 어디에 문의하면 좋을지 떠오른 곳이 있는가? 우선 급한 대로 주민센터에 문의를 해봐도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장제급여' 뿐이라는 답변을 듣게 될 것이다.

지난 12월 말, 친형과 십여 년 넘게 연락과 교류가 없었던 분의 상담 전화를 받았다. 그는 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경찰에서 받았는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 형의 병원비와 장례비가 걱정이라고 했다. 가족의 시신을 포기하는 것이 타인의 일인 줄로만 생각했는데, 본인이 형의 시신 인수를 포기하거나 아예 나 몰라라 할 슬픈 처지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서울시는 2018년 광역단체 최초로 '서울특별시 공영장례 조례'를 제정했다. 부산시는 광역단체 차원의 조례 대신 동래구, 서구, 수영구 등 기초단체에서 '공영장례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이러한 공영장례 조례가 실제로 작동하고 실효성을 가지려면 '공영장례 상담 및 지원센터'가 제도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공무원들이 직접 장례지원에 나설 수 없을 뿐 아니라, 민간 시장의 선의에만 맡겨둘 수도 없기 때문이다.

2019년 3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은 서울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장례상담과 지원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시민의 경우 재정적 어려움 등으로 가족이나 본인의 장례가 걱정일 때 죽음과 장례에 대해 상담을 할 곳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대표전화(1668-3412) 요금을 제외한 모든 운영비를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민관협력으로 장례상담과 지원은 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제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해마다 큰 폭으로 상담과 장례지원이 증가하면서 시민사회단체 자체 예산으로 운영하는데 점점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다른 지역은 이마저도 없기에 상담과 문의할 곳조차 없다.

실제로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에는 서울과 인접한 경기도와 인천광역시뿐 아니라 강원도와 제주도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상담 전화가 오고 있다. 그만큼 재정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긴급한 장례상담이 절실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간혹 장례상담과 안내를 했는데 돌아가신 분의 지역이 서울이 아니어서 적절한 도움을 드릴 수 없었던 적도 있다. 그때마다 상담 전화를 건 분은 "아니, 서울이 아니면 지원이 안 된다고요?"라며 어이없어하는데 상담자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4월 보궐선거를 통해 선출된 새로운 시장이 의지만 있다면 '공영장례 상담 및 지원센터' 예산을 마련하고 제도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근거가 될 공영장례 조례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의지와 함께 사회적 애도의 마음이 있다면 새롭게 당선된 시장이 기꺼이 무연고자의 상주가 되어 공영장례를 치르는 날도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 대놓고 이야기할 변화의 시기

서울시와 (사)나눔과나눔이 공영장례 상담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사진=나눔과나눔
서울시와 (사)나눔과나눔이 공영장례 상담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사진=나눔과나눔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는 전 세계 40개국을 대상으로 실시한 '죽음의 질 지수(Quality of Death Index)'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한국은 2010년 32위에서 2015년 18위로 높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열악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영국은 정부 주도로 '좋은 죽음'(Good Death)을 정의하면서 정책의 긍정적 변화를 이뤘다. 물론 처음부터 영국이 죽음에 호의적인 나라는 아니었다. 죽음 이야기를 꺼리는 문화가 분명 존재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바꾼 건 정부 정책이었다. 거기에 비영리 단체들도 동참했다. 2009년 출범한 민관합동기구 '다잉 매터스(Dying Matters)'는 영국 보건부와 전국완화치료위원회가 "죽음을 금기시하는 문화를 바꾸자"는 취지로 만든 단체다. 이 단체는 해마다 5월이면 '죽음 알림 주간(Dying Matters Awareness Week)' 행사를 열기도 한다.

이처럼 새로운 시장이 당선되면 서울시와 부산시가 중심이 되어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죽음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대놓고 이야기하기를 기대해 본다. 영국처럼 사회 인식 변화를 위해 시민사회단체와 적극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아울러 기대해 본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조직도 변해야 한다. 무연고사망자 행정을 비롯한 공영장례 관련 업무는 서울시 '어르신복지과'에서 담당한다. 한편 '고립사'는 '지역돌봄과'에서 그리고 웰다잉 문화조성 사업은 '건강증진과'에서 추진 중이다. 죽음과 장례 문제를 제대로 대응하면서 죽음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관련 정책을 집행할 행정 조직개편도 빼놓을 수 없는 조건 중의 하나다.

오는 4월 7일 서울과 부산의 시장 보궐선거가 한국 사회에서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위한 공영장례뿐 아니라 죽음의 질 변화를 위한 정책과 사회 인식 변화의 변곡점(tipping point)이 되기를 기대한다.

저작권자 © 1코노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