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세월호 시신수습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장 

2017년 3월 23일, 1,073일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세월호가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세월호를 생각하면 304명의 희생자를 잊을 수 없다. 7년이 지났다. 하지만 어제일 같은 그 당시를 회상해보면, 희생자 시신수습은 사고당일인 4월 16일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시신이 인양된 10월 28일까지 196일 동안 계속됐다.

4월 16일 9명부터 시작해서 17일 9명, 18일 11명, 19일 4명, 20일 25명, 21일 29명, 22일 34명, 23일 38명을 정점으로 4월 30일까지 212명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이후 5월부터 10월까지 83명을 추가로 수습하고는 사고 발생 210일인 11월 11일 정부가 실종자 수색을 공식적으로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 그 당시 까지 9명의 시신은 수습하지 못했다.

이후 세월호를 인양하고 4명의 유해를 수습했다. 안타깝게도 단원고 남현철·박영인 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 등 5명의 유해는 결국 찾지 못했다. 이들 5명을 제외하고 304명 가운데 299명의 시신을 수습해서 가족이 있는 안산 등으로 운구한 것이다.

당시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 그리고 이송하는 모습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된다. 119마크가 또렷이 새겨진 주황색티셔츠를 입은 119소방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할 때 사용하는 구급차로 수습된 시신을 옮겼다. 수습된 시신은 구급차용 침대위에 흰색 침대보로 덮여 있고, 움직이지 않도록 벨트가 채워진 채로 구급차로 그리고 다시 영안실로 옮겨진다. 이를 보는 가족들은 오열하고, 가족들의 오열을 보며 주위 사람들도 함께 눈물 흘리고 있다. 당시 시신을 수습하는 대원들은 갑작스런 사고에 최대한 신속하게 시신을 운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2014년 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 시신수습

4월 세월호 참사로 많은 한국인들이 슬픔에 잠겼다면, 같은 해 7월 네덜란드의 많은 사람들도 말레이시아 항공기 격추로 슬픔에 잠겼다. 2014년 7월 17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가던 국제선 여객기가 283명과 15명의 승무원을 실은 상태에서 우크라이나 근처에서 격추된 것이다. 이 사고로 283명의 승객과 15명의 승무원모두 사망했는데, 탑승객 중 3분의 2가 네덜란드 사람들이었다.

사고 직후 네덜란드 총리는 성명을 통해 휴가를 중단하고 신속한 대응을 밝혔고, 네덜란드 정부 건물은 7월 18일에 조기를 게양했다. 우크라이나 지역에서는 반군의 개입으로 인해 여객기 피격 희생자들의 시신 수습에 어려움이 많았다. 사고 엿새 만인 23일 40구의 시신이 네덜란드 남부 에인트호번 공군기지에 도착했고, 27일 수습된 시신 227구와 산산조각난 시신의 일부들이 네덜란드로 옮겨졌다.
 
◇세월호 시신이송과 사뭇 다른 네델란드

여객기 피격 참사 희생자의 시신수습은 세월호 시신수습만큼 갑작스럽고 어려운 작업이다. 사고 현장인 우크라이나에서 네덜란드로 희생자를 옮겨오는 과정 또한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진행된 시신 운구 장면은 세월호의 경우와는 사뭇 달랐다.

추락 현장 주변에 있던 피해자의 시신은 정중하고 예의 있게 네덜란드로 운구 되었다. 시신이 도착하는 네덜란드 공군기지에는 사망한 네덜란드 국적 193명의 유족 약 1,000명과 네덜란드 국왕 내외, 총리 등이 희생자들을 맞이했다. 같은 시각 전국의 교회에서는 5분간 조종이 울렸고 시신을 맞은 이들은 1분간 묵념 시간을 가졌다. 묵념하는 동안 모든 항공기와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전국엔 조기가 내걸렸다.

공군기지에 도착한 시신은 모두 관에 입관된 상태였으며, 이들을 운구하는 군인들 역시 정장차림으로 예의를 다해 관을 고급리무진으로 모셨다. 시신을 모신 고급리무진이 운구 되는 100㎞의 길은 오직 영구차만 달릴 수 있도록 통제됐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길 양쪽에 조용히 서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한국과 네덜란드, 하지만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선명하게 달랐다. 물론 시신을 수습하는 상황과 여건이 똑같지 않기 때문에 단순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세월호는 살아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이 시신수습 못지않게 중요했고, 시신수습도 사건 직후에만 그렇지 침몰 사고 발생 9일째인 24일에는 시신 ‘가입관’을 마친 뒤 헬기로 안산 비행장까지 예의를 다해 모신 것 또한 사실이다.

◇선명하게 드러난 죽음을 대하는 태도

그럼에도 시신을 수습하는 전체 과정에서 한국사회와 비교할 때 네덜란드 사회가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특히 국가 지도자 태도의 차이는 선명했다. 총리의 신속한 대응과 진정성 있는 국왕 내외의 마중과 눈물은 많은 사람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굳이 연기할 필요도 없었다. 네덜란드 정부 또한 이 날을 애도의 국경일로 선언하기도 했다. 그들이 '나라를 구하다가 희생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혹자는 놀러갔다가 교통사하 당했다고 말 할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국가가 이렇게까지 해야 해? 전용기도 그렇고, 운구차 값이 얼마인데 200명이 넘는 사람을 고급리무진으로 운구한다고? 그럴 돈이 어디 있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덜란드 정부는 기꺼이 희생자를 위해 전용기와 고급리무진을 준비했다.

간디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그 나라가 위대한 나라인지 아니면 형편없는 나라인지, 그 국민의 도덕 수준이 어떤 수준에 도달했는지 알 수 있다.” 이 말을 이렇게 바꾸면 어떨까 “죽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나라가 위대한 나라인지 아니면 형편없는 나라인지, 그 국민의 도덕 수준이 어떤 수준에 도달했는지 알 수 있다.”

올해도 4월이 돌아왔다. 봄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7주기를 맞이하는 세월호 때문이다. 세월호의 시신이송 과정을 보며 우리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그리고 존엄한 삶의 마무리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돌아가신 분들은 119구급차로 운구 되든지, 고급리무진으로 운구 되든지 상관없다고 하실 수 있다.

하지만 사회는 고민해야 한다. 사회적 재난 등으로 사망한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고 해도 말이다. 즉, 한 사회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살아있는 유가족을 어떻게 대할지 알 수 있고, 또한 다른 사고 희생자뿐 아니라 현재 살아 있는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대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리본./ 사진=나눔과나눔
세월호 리본./ 사진=나눔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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