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가 상을 받았다. 그리고 ‘K-할머니 찬송가’가 울려 퍼진다. 그런데 윤배우 본인은 ‘K-할머니 찬송가’를 어떻게 생각할까? 본인이 아니라서 당연히 모른다. 그런데 왠지 “너희들 왜 그러니?”라고 코웃음을 치는 윤배우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것만이 내 세상(2018)」을 보면 자식사랑으로 애틋해지는 엄마의 마음이 보인다. 「고령화가족(2013)」은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당연시하는 이른바 ‘정상가족’의 엄마는 아니다. 「고령화가족」의 엄마 윤배우를 만약 현실에서 대한다면 K-할머니 찬송가를 부르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앞장 서 손가락질을 할 지 모르겠다. 「바람난 가족(2003)」에 나오는 윤배우는 K-할머니 이미지에서 더 멀어진다. 「돈의 맛(2012)」에서는 어떠한가? 진짜 K-할머니들은 기겁을 할 듯하다. 

사실 대배우의 모습을 이렇게 영화 몇 편으로 단정하는 시도 자체를 할 필요도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상 받았다고 윤배우를 K-할머니로 단정하는 것은 엄청난 실례라는 생각이다. 윤배우가 보여준 다양한 연기 인생이 K-할머니 하나로 단순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쨋거나  당분간 「미나리」를 안보려고 한다. ‘찬송가’ 소리가 좀 잠잠해지면 그때 봐도 늦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윤배우를 띄우는 요즘 분위기를 그대로 넘길 수는 없을 것 같아서, 2008년 개봉 당시에 보았던 「여배우들(2008)」을 다시 한번 보았다.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한국에서 직업은 남자가 기준이다. 의사, 검사, 배우, 회사원 등이 있다. 그리고 여의사, 여검사, 여배우, 여사원이 있다. 반면 남의사, 남검사, 남배우, 남사원은 없다. 그래서 배우는 남자다. 그 배우를 기준으로 여배우가 있다. 

60대 윤여정, 50대 이미숙, 40대 고현정, 30대 최지우, 20대 김민희와 김옥빈이 나오는 「여배우들」은 배우를 배우가 아니라 먼저 ‘여자 취급’을 하는 세상의 편견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도 세상에게 치열하게 싸움을 걸지 않는다. 세상이 무서워서 위축된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한 마디로 쿨하고 담담하게 여배우들의 생각을 수다로 쏟아낸다. 그것도 포도주 몇 잔을 들이켜 혀가 조금씩은 돌아간 발음이다. 유쾌하고 상큼한 이야기 전개다. 그 중심에 윤여정 배우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이혼은 특히 여자에게 여전히 큰 낙인이다. 특히 여배우들에게 더 그렇다. 이혼한 여배우가 컴백을 하면 ‘예수 재림’과 동일시했단다. “이혼하니까, 2년은 안나왔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들었어... 이혼이 주홍글씨야... 조용히 있자...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지.” “그 못생긴 놈(조영남)한테 차였다는(이혼 당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는 찼다는 소리를 듣는 게 더 나았겠지.”라고 깔깔댄다. 윤배우 이야기다.

윤배우는 화보 촬영장에 스타의 체면을 구길 수준으로 일찍 도착했다. 그리고 담배 하나 입에 물었다가 밖에 나가 피우라는 면박을 받는다. 그걸 개망신이라고 표현하면서도 유쾌하게 받아들인다. 자기를 망신 준 ‘이름 없는’ 스태프를 그대로 인정하는 여유가 있다. 누가 자기를 먼저 알아보고 대접해 주기를 바라는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도착한 이미숙이 자기를 못보고 있으니까 “나, 여기 있다.”고 먼저 알린다. 한국의 꼰대들이 하기 어려운 말이다.

어두운 계단으로 나와 김옥빈 배우가 담배 피우는 장면은 K-할머니 찬송대가 보면 실망하실지도 모르겠다. “저도 펴도 될까요? 펴라.”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서 건넨다. 그런데 김배우 피는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너 화장실에서 배웠구나? 피려면 제대로 펴!” 여성스러움을 주문하는 한국사회에게 윤배우가 해주는 답이다.  

윤배우가 고현정 배우에게 말한다. “야, 너 할 말은 하면서 살지? 기죽지 말어. 시상식이라는 게 어차피 짜고 치는 거 아냐?” 그런데 이번에 윤배우가 큰 상을 받았다. 짜고 치며 받은 상이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그 상 받았다고 인생이 크게 바뀌거나 기고만장할 배우는 아닐 것이다. 상을 받든 안받는 어느 작품 하나로 평가할 수 있는 배우가 아니기 때문이다.

윤배우는 매우 다양한 영화에서 더 다양한 모습으로 여성의 경험을 담담하게 보여줬다. 윤배우의 그 모습들이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자, 엄마, 할머니의 모습이다. 「죽여주는 여자(2016)」의 소영으로서 윤배우와 「미나리」의 할머니로서 윤배우의 모습은 비교 불가능할지 모른다. 모든 게 윤배우의 모습이다. 그런 다양한 모습이 왜 가능할 수 있을지, 혼자 살면서 여자에 대한 편견을 배우로서 경험하고 또 이야기를 쏟아내는 「여배우들」에서 볼 수 있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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