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영장례 현장 두 번째 이야기

박진옥 나눔과 나눔 사무국장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

2018년 5월 10일, 서울특별시 공영장례조례에 따른 첫 번째 무연고공영장례가 진행되었다. 벌써 만으로 3년이 된 서울시 공영장례는 그동안 해마다 제도를 개선하며 사각지대를 줄여왔다. 2018년 362명이었던 장례인원은 2019년 423명을 거쳐 지난해에는 665명까지 증가했다. 그동안 무연고사망자 장례 현장에서 2천명이 넘는 분들을 배웅하면서 고민했던 현장의 이야기를 세 번으로 나눠보았다.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가족은 누굴까?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하면서 첫해는 ‘도대체 가족이 누굴까’에 대한 질문을 숱하게 했습니다. 무연고자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연고자가 있습니다. 부모 없이 태어난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만, 어디 있는지 모를 뿐입니다. 또한 대한민국이 주민등록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실제로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부 사망. 모 시신위임서 제출. 미혼으로 자녀 없음. ”
“오래전부터 가족관계 단절되었으며 아들은 사망 사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병원 및 구청 측의 연락을 차단해버림.”
“부모는 모두 사망하였으며, 형제 여섯명이 확인되어 유족 대표로 형이 가족관계가 너무 오래 단절이 되었으며 경제적 어려움이 있어 시신처리위임서를 제출함.”

무연고사망자 장례 지원을 위해 받은 공문에 기록된 시신처리위임서의 내용입니다. 부모가 자식의 시신을, 자녀가 부모의 시신을, 그리고 형제가 또 다른 형제의 시신을 포기하는 비정한 사회의 적나라한 단면처럼 보입니다. 처음 공문을 받아 들고 ‘그래도 가족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미워도 가족이라면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시신을 내팽개칠 수 있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의 시신을 외면한 이들에 대한 원망이 커져만 갔습니다. 

장례 할 돈이 없어 작성한 시신처리위임서
시신처리위임서를 한 장 두 장 받으면서 위임 사유를 보게 되고, 또 현장에서 가족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왜 피를 나눈 가족이 연을 외면했는지.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돈’이었습니다. 가족이 해체된 상태에서 각자도생은 서로를 빈곤하게 만들고, 결국 가난은 다시 사람이 사람 구실도 못 하게 만들어버립니다. 만약 시신을 인수할 경우 가족을 찾는 동안 늘어난 안치료, 병원에 입원했을 경우 갚지 못한 병원비를 내야 합니다. 거기에 장례비를 더한다면 금액은 감당할 수 없는 정도까지 불어납니다. 

지난 3월 자택에서 고립사한 남성의 아내는 “큰아들은 사업실패로, 작은아들은 실직으로 경제 사정이 매우 어려운 상태고 올 수 없는 상황이라 알리지도 못하는 어미의 심정을 혜량해 주시기 바”란다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또한 그의 형제는 “죄송합니다만, 모든 면에서 능력이 없으니 나라에 장례를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라며 경제적 어려움으로 시신 인수를 하지 못하는 사연을 안타깝게 써 내려갔습니다.

유족들은 때때로 가족 장례로 치러주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기도 합니다. 지난 7월, 60대 초반의 남성이 서울의 한 주택에서 고립사했습니다. 미혼에 자녀는 없었습니다. 무연고 장례식 당일에 참석한 남동생은 무거운 표정이었습니다. “제가 형의 시신을 포기하고 왔습니다.” 자신이 4남매 중 막내라고 밝힌 동생은 열한살에 어머니를 잃었고, 시각장애인인 아버지와 함께 어렵게 살았다고 전했습니다. 형제들이 일찍부터 경제활동을 해야 했고, 막내인 자신도 성인이 된 후 트럭 운전을 하며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세월이 지나 아버지와 큰형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고 동생은 혼자의 힘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러던 올해 코로나 대유행으로 물류업계가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동생의 일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초 둘째 형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서 전해 들은 사망 소식은 동생을 극심한 고통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는 형의 장례를 치를 수 없었기에 동생은 끝내 형님의 시신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코로나는 사람 도리도 못하게 하네요.” 형의 무연고 장례에 참석한 동생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형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러워 동생은 이런 세상이 ‘서럽다’라며 괴로운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서울시 공영 장례 현장 이야기./ 사진=나눔과나눔
서울시 공영 장례 현장 이야기./ 사진=나눔과나눔

 

버겁게 써내려간 시신처리위임서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말합니다. 시신처리위임서 한 장 쓰는 게 뭐가 어렵냐고, 그거 한 장이면 구청에서 알아서 다 해주니까 장례비도 안 들고 신경을 쓸 것도 없다고. 그런 점에서 도덕적 해이를 가져온다고 공무원들은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신처리위임서를 작성하는 당사자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지난해 1월 12일에 인력사무소에서 돌아가신 40대 초반의 남성 무연고사망자가 있었습니다. 공문에는 사인이 미상이라 적혀 있었고, 그 외엔 고인의 삶을 짐작할 어떠한 단서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 차가운 공문을 받아 들고 장례를 마친 날, 유난히 쓸쓸한 겨울바람과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기억납니다. 장례를 치르고 며칠이 지났을 무렵 고인의 아버지께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피를 토하며 사경을 헤매던 와중에 경찰이 아들의 부고를 알려왔고, 장례를 치르기 어려운 상황이라 말하니 시신 위임을 권유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들려주었습니다. “나처럼 못난 부모는 세상에 또 없을 거”라며 자책하던 아버님이 들려준 가족사에는 중동 건설 붐으로 인한 가족 해체와 같은 현대사의 아픔이 짙게 묻어 있었습니다. 아버님은 이미 가족들 사이에서 아들을 버린 매정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본 앞에서 사라진 인간의 존엄성
‘자유로서의 발전’을 쓴 아마티아 센은 말합니다. 빈곤은 사람들이 이성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선택할 수 없거나, 기회의 여지가 거의 없는 ‘부자유(不自由)’라고 말입니다. 가족이 돌아가신 가족을 위해 최소한의 장례를 하려고 해도 돈이 없어 ‘시신처리위임서’를 작성해야만 하는 ‘부자유’한 상태, 이것이 바로 빈곤입니다. 그리고 빈곤은 범죄가 아닙니다. 재난 수준의 병원비와 감당할 수 없는 장례비가 죽음 앞에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본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사라지고 맙니다.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사회보장제도로의 공영장례 제도가 운영되기를 바라면서 2021년 문명사회를 다시 한번 더 기대해봅니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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