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신고 꺼리거나 '쉬쉬'
전문가 "아동 성폭행 이상으로 사회적 관심 필요"

사진=미리캔버스/디자인=안지호 기자
사진=미리캔버스/디자인=안지호 기자

#. 69세 노인 효정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29세 남자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고민하던 효정은 동거 중인 지인에게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효정을 치매 환자로 매도한다. 법원 역시 사건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69세'의 내용이다. 69세 여성이 성범죄를 당했는데도 '노인'이라는 이유로 외면당한다. 실제로도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빠른 고령화로 노인가구가 증가하는 가운데 최근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특히 혼자 거주하는 독거노인의 경우 '성폭력 사각지대'에 놓여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7일 경찰청의 '최근 5년간 60세 이상 노인 대상 성범죄 검거 현황'을 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총 3442건의 노인 성범죄가 발생했다.

연도별로는 2015년 565건, 2016년 599건, 2017년 598건, 2018년 765건, 2019년 815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범죄유형은 강간·강제추행이 3185건(92.5%)으로 압도적이었다.

실제로 지난달 경기도의 한 농촌 마을에서 80세 독거노인 A씨가 인근 마을에 거주하던 60대 B씨에게 성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경찰은 B씨를 검거해 구속 송치했다. 아울러 지난해 3월에도 농촌 지역 주택에서 여성 독거노인이 성폭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문제는 피해 노인은 대부분 주위의 시선과 '노인이 성폭행을 당할 일이 없다'는 사회적 인식을 의식해 피해를 당했음에도 신고를 꺼리거나 범죄를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노인을 대상으로 치안 인프라가 부족해 성범죄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 상담 소장은 "노인 성폭행피해는 다른 성폭행 피해와 달리 관련 법 제정이나 운용과정에서 제대로 거론된 적조차 없다. 노인들은 신체기능의 저하 때문에 자기방어가 어려워 성폭력 범죄대상으로 쉽게 지목된다"라며 "아동 성폭행 이상으로 노인 피해자들에게도 특별한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노인 성폭행피해 상담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많은 고민을 한 끝에 상담전화를 거시는 노인분들은 오히려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거나 신고를 하려고 해도 증거가 없어 스스로 위축되어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노인 성범죄가 늘어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영화 69세 포스터./사진=뉴스1
영화 69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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