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거인(2014)」은 이른바 ‘보호종료아동’ 영화이다. 최근 정부는 지원 대책(관계부처합동(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 지원강화 방안, 2021년 7월 13일)을 발표하면서 ‘보호종료아동 → 자립준비청년’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2021년에 나온 영화 「아이」가 보호기간이 종료된 청년의 영화라면 「거인」은 보호기간 종료를 앞둔 청소년(아동)의 영화다. 혼자 살기를 앞두고 혼자 살기를 두려워하는 청년 예비 1인 가구 이야기다.  

영재(최우식)는 지금 살고 있는 공동생활가정에서 어떻게 해서든 더 머물러 있고 싶다. 대학교도 신부 예비과정으로 가서 공동기숙사에서 살려고 한다. 천주교 사제로서 소명이나 자질에 대한 관심은 없다. 혼자 나가야 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원장 부모와 신부 등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행동만 한다. 그러나 그들이 보지 않을 때에는 몰래 물건을 훔쳐 내다 파는 등 비행을 저지른다. “네가 네 말에 속지 않았으면 좋겠어. 영재가 정말로 말하는 것처럼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윤미(박주희)의 말도 대안이 되지 않는다. 자립준비청년 대책을 내놓는 사회에서 이 영화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영재가 사는 ‘이삭의 집’이라는 아동 공동생활가정이다. 영재가 아예 고아는 아니다. 부모가 있지만 엄마와 아빠는 별거 상태다. 엄마는 심하게 아파서 영재와 동생 민재를 양육할 능력이 없다. 아빠는 일 하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영재를 이미 이삭의 집으로 보냈다. 민재마저 보내려고 궁리 중이다. 아빠의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태도가 영화의 이야기를 이끈다.

영재가 사는 공동생활가정에는 7명 정도 아이들이 산다. 초등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연령도 다양하다. 예전에는 흔히 보육원, 고아원이라고 말하는 대규모 아동양육시설만 있었다. 1995년 김영삼 정부 때 ‘국민복지기획단’에서 ‘국민복지 기본구상’을 발표하면서 대규모 보육원ㆍ고아원을 소규모 그룹홈으로 전환하는 변화가 있었다. 2004년 아동복지법 상 아동복지시설에 ‘공동생활가정’을 추가하면서 가정형태 보호가 확대됐다.

영재가 집 창고에서 기부금품으로 모여 있는 운동화를 훔쳐 학교에 가서 파는 장면이 나온다. 부정기적 기부금품 외에 공동생활가정 거주 아동에게는 용돈, 교통비, 체험활동비, 수학여행비, 학습 보조비 등 지원을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한다. 지자체 사정에 따라 지원 수준이 조금씩 다르지만, 중하층 정도 생활 수준을 유지한다고 보면 될 듯하다.

영재, 영재와 한 방을 쓰는 범태(신재하)의 경우처럼 공동생활가정 거주 아이들 대부분에게는 부모가 있다. 부양 능력이 없거나 부양 의사가 없는 부모들이다. 학대피해 아동도 있다. 부모가 사라지거나 죽은 아이들도 있다. 다양한 아이들이 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18세가 되면 나가야 한다. 최근 정부 대책으로 24세까지 그 기간이 연장되긴 했다. 어쨌든 일정 나이가 되면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원장님들을 떠나 홀로 자립해야 한다. 

보통의 경우에는 성인이 되어 부모 곁을 떠나더라도 부모와의 관계가 변하지 않는다. 보호종료아동과 원장님들 간 관계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부모-자녀 관계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나를 지켜주던 경제적 울타리와 내 집, 내 식구들이 18세가 되었다고 갑자기 사라진다. 집을 나와 1인 가구로 독립해도 이른바 원가정이 남는다. 그러나 보호종료아동에게 자신이 성장한 원가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함께 살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송두리째 없어지는 것이다.

완전히 홀로 남은 이들에게 세상은 그리 따뜻하지 않다. 사회가 영재와 공동생활가정 아이들에게 하는 소리다. 아이들이 사는 곳은 가정이 아니라 ‘그런 데’이다. 아이들은 ‘그런 데 사는 아이들’이다. “또 너같이 부모 없는 애들 손버릇은 타고난 거고... 은혜도 모르는 새끼... 보호받을 권리(가 어딨어)?”라는 말을 원장이 한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거야”라는 신부의 말은 공허하기만 하다.

자신을 낳아 준 부모가 울타리가 되어 주지 않는 현실에서 영재는 지금 살고 있는 곳을 필사적으로 지켜야 한다. 보호종료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영재는 “저 집에 가면 절대 안 돼요. 집에 가면 책임져줄 사람도 없구요”라고 원장(부모)에게 애원한다. 물론 원장 부모도 우리가 흔히 아는 부모의 모습은 아니다. 물건을 훔치는 아이를 찾아내면 경찰에 넘기겠다고 아이들에게 말하는 사람들이다. 자식이 집에 있는 물건을 부모 몰래 팔았다고 당장 경찰을 찾는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함께 사는 동안만 성립하는 보호(부모-자식) 관계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빠라고 안 불러도 돼. 어차피 새 아빠가 생길 텐데(원장 부).”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라도 영재에게는 절실하게 필요한 보호자이다.

영재가 결국 자신의 보금자리를 지켰을까? 영화 「아이」가 만든 사회적 가족이 「거인」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영재에게 필요한 가족을 찾아줄 준비가 되어 있을까? 능력은 있을까? 영화를 한번 보시기 바란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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