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옥 칼럼]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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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옥 칼럼]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 박진옥
  • 승인 2021.08.0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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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공영장례 현장 세 번째 이야기
나눔과나눔 박진옥 사무국장
나눔과나눔 박진옥 사무국장

2018년 5월 10일, 서울특별시 공영장례조례에 따른 첫 번째 무연고공영장례가 진행됐다. 벌써 만으로 3년이 된 서울시 공영장례는 그동안 해마다 제도를 개선하며 사각지대를 줄여왔다. 2018년 362명이었던 장례인원은 2019년 423명을 거쳐 지난해에는 665명까지 증가했다. 그동안 무연고사망자 장례 현장에서 2천명이 넘는 분들을 배웅하면서 고민했던 현장의 이야기를 세 번으로 나눠보았다. 그 세 번째 이야기.

고인에게 묻습니다 “조금 더 잘 살 수는 없었나요?”

무연고자 장례에서는 가족 간의 오랜 단절로 애증의 감정을 풀지 못해 분노하는 경우 역시 자주 접하게 됩니다. 2019년 12월, 어머니의 시신을 위임한 아들은 “어려서 아팠던 기억이 다시 떠올라 괴롭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시신처리위임서를 작성했습니다. 또한 지난해 8월에 돌아가신 1939년생 아버지의 시신 인수를 포기한 네 명의 자녀가 작성한 위임서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한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 나이 열두 살에 집을 나가 연락두절된 상태임. 그동안 노모가 고생해서 자식 키우고, 자식들도 고생해서 크느라 시신 처리하고 싶지 않음(앞으로 절대로 연락하지 말 것)”, “아버지가 아니라 원수임” 해방과 한국전쟁, 혼란했던 근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살았을 1939년생 남성, 그리고 그의 부재로 인한 아내와 네 자녀의 삶은 어떠했을지 그 분노의 이유를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듯합니다.

시신처리위임서의 내용을 보면서, 시신 인수를 포기한 가족에 대한 원망에 이어 고인을 향한 물음도 떠오릅니다. ‘이게 최선이었나요? 조금만 더 잘 살 수 없었나요?’ 때로는 아무도 없는 빈소에서 영정도 없는 위패를 바라보며 마치 친구처럼, 가까웠던 사이였던 것처럼 성과 이름 석 자 대신 이름만 부르며 묻고는 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무연고자가 잘못 살아 가족들이 시신을 인수하지 않았다고 여깁니다. 

잘살고, 못 살고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러면 한 인간이 잘살고, 못 살고의 기준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돈을 많이 벌면 잘 사는 것인지, 가족이라는 틀을 유지하면 잘 사는 것인지. 오히려 한 사람의 인생이 아닌 가족주의적인 관점으로만 고인을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어떤 사람을 두고 저 사람은 가족의 처지에서 봤을 때 힘들게 했던 사람이니까 나쁜 사람이라는 식의 판단이 과연 적절한지. 같은 핏줄로 태어났지만, 그 사람의 결이 가족들과 안 맞을 수도 있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두려움의 존재였지만, 지인들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였던 사람이 무연고사망자로 왔던 적도 있었습니다. 

좋은 삶을 살려고 노력했으나 힘든 부분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저렇게 살았으니까 저렇게 됐지’라는 식의 말은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닐지. 그런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해서 본인도 끊임없이 고민했을 수도 있고, 또 본인도 잘해보고 싶었고 잘 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때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마도 나름 최선이었을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서울시 공영장례 현장 이야기./ 사진= 나눔과나눔
서울시 공영장례 현장 이야기./ 사진= 나눔과나눔

 

장례는 애증과 원망의 감정마저도 정리하는 시간

지난해 11월 말 서울시 무연고 공영장례에 아내와 두 딸이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장례 현장에서는 별말씀이 없으셨는데, 장례가 끝나고 문자로 사연과 감사 인사를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가정 폭력으로 도망치다시피 나오고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오늘 같은 날에서야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네요. 평안히 가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조금 남았던 원망도 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장례식은 살아 있는 사람이 돌아가신 분과의 좋았던 기억뿐 아니라 미웠던 기억, 원망스럽고 억울하고 안타깝고 슬픈 응어리까지도 정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의례일 것입니다.

무연고사망자는 갓 태어난 아기부터, 20~30대의 젊은이, 그리고 100세가 넘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에서 발생합니다. 직업도 다양합니다. 송파구에서 삼십 년 공무원 했던 분, 강남에서 영어학원을 크게 운영했던 분까지. 단지 특정 누군가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누구나 삶의 과정에서 삐끗하면 시장에서 추락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탈빈곤 할 수 없는 사회시스템입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상’이 깨어진 거리에서, 고시원과 쪽방 등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한 뒤 시신처리위임서 한장으로 무연고사망자가 되는 겁니다.

나이, 직업, 빈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위해서는 공영장례가 절실합니다. 이는 고인의 존엄함과 함께 남은 자들이 고인과의 관계를,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재 체계적인 무연고자 장례의례를 지원하는 곳은 서울시가 대표적입니다. 현실이 이러하다보니 죽음의 질에 있어서도 차별이 발생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성장하는 동안, 다치거나 아플 때, 실업 상태에 놓을 때, 나이 들어 치매에 걸려도 누구나 같은 사회보장제도에 따라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직 장례만 어느 지역에서 죽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무연의 도시, 증가하는 무연고자

코로나는 4차 유행으로 더욱 기승이고 무연의 도시 서울은 더 많은 무연사(無緣死)와 무연고사망자들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를 끝낸 6월 기준으로 서울시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진행하는 ‘나눔과나눔’이 401명을 위한 장례를 진행했습니다. 이는 지난해 8월 말과 같은 수준입니다. 지난해 665명이었던 무연고사망자가 올해는 900명 가까이 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다시 8월이 시작되자 무연고사망자 장례 요청 공문이 팩스의 알람을 울립니다. 밤새 이야기해도 모자랄 누군가의 인생이 A4용지 한두 장과 단 몇줄의 사연으로 끝납니다. 그 안에서 우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한 인생의 삶의 조각을 모아보지만 역부족입니다. 

현실이 가혹하다보니 상상의 나래를 펴봅니다. 장례로 마지막 인사를 했던 분들과 시인과 촌장의 「좋은 나라」 가사처럼 “아무 눈물 없이, 슬픈 헤아림도 없이, 그렇게 만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때가 되면 노래가사처럼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은 까맣게 잊고 다시 인사”할 수 있을까요? “그냥 마주보고 좋아서 웃기만” 할까요? 언제쯤 무연고사망자가 줄어들까요?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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