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진의 리더십 읽기 -삼국지편③

디자인=안지호 기자
세상이 복잡하다고 느낄 때 다시 꺼내어 보는 것이 역사다. 그것을 들여다보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보이고 앞으로 어찌 되어갈지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극이 인기를 끈다. 춘추전국시대와 삼국지 이야기는 그 중 으뜸이다. 삼국지는 망해가는 한나라가 배경이다. 난세에는 망하게 하는 인물과 세상을 구하는 스타가 함께 등장한다. 조조 유비 손권은 최후의 승자이고, 초기에 두각을 나타낸 대권주자들은 따로 있다. 그들은 모두 대권 경쟁에서 실패하고 사라졌다. 원소, 원술, 공손찬, 유표, 여포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배경이나 세력 능력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고 도리어 더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왜 승자가 되지 못하고 무너졌을까? 역사의 패자들을 살펴보면 엄격한 경쟁 속에서 실패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삼국지 영웅들이 세력을 형성하는 과정을 기업의 창업 유형에 비유해 보면 재미있다. 유비는 시장의 작은 노점에서 출발한 형태고 조조는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다음 부모의 가산을 털어서 작은 가게를 내고 키운 형태다. 손권은 거의 틀이 잡힌 기업을 승계한 형태로 비유할 수 있다. 

원소는 어떨까. 조조처럼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은 원소는 바로 중소기업을 인수한다. 이후 인수합병을 통해 빠르게 체격을 키워갔다. 한복의 서주를 빼앗고, 이를 발판으로 조직을 확대해 누구보다 빠르게 성공가도를 달렸다. 인재 영입에도 유리해 초기에 전풍과 저수를 휘하에 두게 됐다.

전풍은 성격이 곧고 원칙에 충실하며 실무 중심적인 우수한 장수였다. 저수는 통찰력 있는 전략가로 ‘천하이분계(天下二分計)’를 내놓은 바 있다. 흑산적 장연을 토벌하고 인근의 4주(기주, 유주, 청주, 병주)를 병합한 뒤에 이를 기반으로 천자를 영입한다면 가히 패업을 이룰 수 있다는 계책이다. 이 계책은 당시 주요 정세가 장안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상황을 매우 통찰력 있게 파악한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저수의 전략대로 원소는 주변의 4주 점령에 집중했다. 그런데 천자 영입은 기회가 와도 무시하거나 회피했다. 그사이에 조조는 천자를 차지해 버렸고, 이는 훗날 조조의 큰 강점이 된다. 

아랫사람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고집을 부린 원소가 결국 천하이분계를 망쳐놓은 셈이다.  

어찌 되었건 원소는 주변 4주를 점령함으로써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해 대세가 된다. 장안의 벼슬아치와 조조의 부하들도 몰래몰래 원소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할 정도였다. 차기 대권주자와 연줄을 만들려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4주 확보 후 원소는 세력 확장의 첫 단계로 공손찬 제거에 나섰다. 그러면서 조조에게 편지를 보내 군량을 보내라며 자극한다. 조조는 아직 맞설 힘이 되지 않아 화만 내고 있었는데 원소 진영에서 전향해 온 곽가(일부는 순욱 또는 정욱이라고 함)가 원소를 이길 수밖에 없는 열 가지 이유와 향후 전략 방향을 제시하며 조조를 격려한다. 

곽가의 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원소는 허례허식을 좋아하나 승상은 순리에 따라 대합니다. 둘째, 원소는 천자를 거스른 역적이나 승상은 천자를 받드는 사람입니다. 셋째, 원소의 정치는 문란하나 승상은 법으로 다스립니다. 넷째, 원소는 겉으로 대범한 척하나 속으로는 의심이 많아 친척들만 신용하나 승상은 재주에 따라 사람을 씁니다. 다섯째, 원소는 모략을 즐기면서도 결단력이 없으나 승상은 계책 실행에 신속합니다. 여섯째, 원소는 명성 있는 자만 주위에 두려 하나 승상은 참다운 인재를 대합니다. 일곱째, 원소는 남의 눈에 띄게 자랑하나 승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덟째, 원소는 중상모략에 쉽게 흔들리나 승상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홉째, 원소는 옳고 그름이 수시로 변하나 승상은 법 집행이 엄하고 밝습니다. 열째, 원소는 허세를 좋아하고 병법을 소홀히 하나 승상은 병법과 용병술이 뛰어나십니다.” 

곽가의 평가는 매우 종합적이고 정확했다. 아랫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빠르게 판단한단 조조는 곽가가 제시한 전략 방향에 따라 장차 후환이 될 여포와 유비를 먼저 정벌하기로 한다. 

다급해진 유비는 원소에 도움을 청하고, 원소가 군을 이끌고 출전한다. 이렇게 원소와 조조가 처음 맞붙는 ‘여양 전투’가 시작된다.

여양에서 마주한 두 진영은 두어 달 이상 대치를 이어간다.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원소군이 이상하게 공격다운 공격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원소 진영 내부에 있었다. 당시 원소군을 지휘한 사람은 심배 장군이었는데 그것을 모사 허유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모사 중 수장 격인 저수도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삐져 있었다.

전쟁 중인 군대 내부에 갈등이 있다? 전군이 집중해서 힘을 모아야 하는데 최고 지휘 계층이 이 모양이라면 병사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결국 팀워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변변한 공격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원소 진영이 '막장드라마(?)'를 벌이는 동안 조조는 후방을 위협할지도 모를 유방을 먼저 공격한다. 그러자 이 정보를 입수한 전풍이 급히 달려와서 “조조가 유비를 공격하느라 근거지 허도의 방어가 약해졌을 테니 절호의 기회”라며 허도 공격을 강력히 권고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원소는 미적거렸다. 막내아들이 아파서 병간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 후 조조가 유비 토벌에 성공하고 돌아오자 상황은 달라졌고 절호의 기회도 함께 사라졌다. 

결국 원소와 조조의 첫 대결에서 조조는 위협이 되는 여포와 유비를 모두 제거하는 소득을 거두었으나, 원소는 무게만 잡고 얻은 것 하나 없이 전쟁 비용을 낭비하며 조직 내 불화만 키운 채 빈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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