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임금제 폐지를 두고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다시 한번 목소리를 모았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현실 개선을 위해 시급히 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10일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고용노동부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시민단체들은 "21세기 노비문서, 인간자유이용권으로 불리는 포괄임금제를 규제해야 한다"며 "정부가 포괄임금제 악용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자회견은 민변 노동위원회, 알바노조, 전국여성노동조합, 참여연대, 청년유니온,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화섬식품노조 등이 참여했다. 

포괄임금제는 연장·야간·휴일노동을 비롯한 초과근무수당을 월급에 포함해 일괄지급하는 임금지급 방식이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이러한 방식은 사업장이 노동시간을 제대로 측정하지 않아 사실상 주 52시간 상한제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또 이로 인해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되고,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지 못하는 공짜노동이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과로사의 원인이 포괄임금제란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포괄임금제는 노동시간 측정이 어려울 때만 극히 제한적으로 쓰여야 하고, 노동시간 계산이 쉬운 대다수 사업장에서는 쓰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노동시간 산정이 가능한 사업장 다수가 초과근로수당 비용을 줄이기 위해 편법으로 포괄임금제를 오남용한다"며 "화섬식품노조 IT위원회가 2020.11.18. 발표한 <판교 IT·게임 노동자 노동환경 실태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성남 판교지역 IT·게임업계 노동자 46.4%가 포괄임금제를 적용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IT 노동자들이 일하는 판교테크노밸리는 포괄임금제가 야기하는 잦은 야근과 밤샘 근무로 꺼지지 않는 불빛 때문에 '오징어배'로도 불린다. 고용노동부의 비공개 자료 ‘2020 포괄임금제 실태조사’를 입수해 발표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포괄임금제 적용사업체는 조사 대상인 2522곳 중 749곳(29.7%)으로 나타났다. 노동자를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를 유발하는 오징어배 현상은 업종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사회에 만연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포괄임금제 오남용이 만연한 이유는 일를 규제할 법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포괄임금제로 피해를 입은 노동자가 사업장을 대상으로 매번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형국이다. 이에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사업장에서 포괄임금제가 오남용되지 않도록 정부가 나서서 포괄임금제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왔다. 

오랜 주장을 받아들인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로 포괄임금제 규제를 내세운 바 있다. 하지만 무려 4년째 발표를 미루고 있다. 

2017년 8월 고용노동부는 포괄임금제 규제 가이드라인을 그해 10월까지 마련하기로 했지만 바통을 다음해로 넘겼고 2018년에는 이성기 전 고용노동부 차관이 6월 발표를 예고했다가 김왕 전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관이 다시 8월로 연기했다. 다시 2019년 이재갑 전 고용부 장관은 가이드라인 연구 용역을 마치고 최종 보완 중이라고 밝혔지만, 아직까지 발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최근 참여연대가 보낸 포괄임금제 규제 계획 질의문에도 구체적인 일정을 밝히지 않았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이번 정부가 포괄임금제 악용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는 상황"이라며 공개적인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어 "정부가 포괄임금제 규제 지침을 즉각 발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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