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섭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이 18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관련 전문가 및 노사단체 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 = 뉴스1
권기섭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이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관련 전문가 및 노사단체 토론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 = 뉴스1

중대재해처벌법 입법예고 종료가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경영계와 노동계의 입장차이는 한 발짝도 좁혀지지 않았다. 

지난 18~19일 고용부가 정부세종청사에서 중대재해법 시행령 제정안에 관한 노사 토론회를 열었지만 경영계는 과도하다는 입장을, 노동계는 미흡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나 정부가 내년 1월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예고했음에도 올해 각종 중대재해사고가 발생해 경영계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날 토론회에서 경영계는 뇌심혈관계 질환을 중대재해법에 포함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본부장은 "뇌심혈관계 질환 등은 정부의 직업성 질병 선정 기준인 인과관계의 명확성, 사업주의 예방 가능성, 피해의 심각성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만성질환 사망자까지 법 적용 대상에 넣는다면, 기업이 질병을 이유로 채용을 기피하는 상황도 나올 수 있다는 우려다. 

하지만 과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뇌심혈관계 질환이 발생하면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많다. 특히 이를 두고 기업이 만성질환에 의한 사망을 주장하며 산재를 거부한 사례가 다수 있다. 

이에 김광일 한국노총 본부장은 "직업성 질병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뇌심혈관계 질환 등 만성 질환, 직업성 암 등이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법이 시행되더라도) 실효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중대재해법 논란의 핵심인 경영 책임자 범위에 대해서는 막판까지 노사 의견이 갈렸다. 

임 본부장은 "경영 책임자 개념과 의무 등 많은 내용이 여전히 불명확하고 모호해 명확성의 원칙과 포괄 위임 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조항이 많다"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경영 책임자의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의무에 위험 작업 시 2인 1조 작업, 과로 방지를 위한 적정 인력 배치 등에 드는 인력과 예산 선정이 담겨야 한다"고 피력했다. 

노동계는 이날 토론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별도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천지선 민변 노동위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 및 정부 시행령안은 사실상 재계의 요구에 따라 통상 형사법에서 통용되는 명확성 원칙의 법리 이상의 과도한 명확성을 요구한다"며 "결과적으로 죄형법정주의의 위반 소지가 있고 위헌, 위법이며 오히려 중대산업재해 책임자의 처벌 범위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혹은 그 이하로 좁힘으로써 중대재해처벌법의 목적과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명확성원칙이란 기본적으로 최대한이 아닌 최소한의 명확성을 요구하는 것으로서, 법 문언이 법관의 보충적인 가치판단을 통해서 그 의미내용을 확인할 수 있고, 그러한 보충적해석이 해석자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없다면 명확성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는 헌재 판결도 있다"며 "재계는 이에 반하는 과도한 명확성의 원칙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마치 언제 어떤 방식으로 살인을 해야 살인죄로 처벌받는지를 더 자세히 명확하게 규정하라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김현주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중대산업재해에 직업성 질병자는 산재보험법에서 제시한 질병 등을 모두 포함하여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로 정의해야 한다"며 "한 해에 추락사가 500여명이고 과로사도 500여명이다. 과로 관련 뇌심혈관질환 등 주요 직업성 질병을 중대재해에서 제외해서는 안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또 "고용노동부는 인과관계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일부 급성 중독만 중대산업재해로 정한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검토해야 할 인과관계는 질병과 업무의 인과관계가 아니라 직업성 질병과 사업주의 안전확보의무 위반사이의 인과관계를 말한다"며 "직업성 질병에 대한 사업주의 책암을 묻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다. 직업성 질병이 발생하면 모든 사업주가 처벌받는 것이 아니다. 먼저 일년에 3명 이상의 동일한 직업병이 발생한다는 매우 희박한 확률의 사건이 발생해야 한다. 이는 2014년 9개소였다. 직업성 암, 직장괴롭힘으로 인한 정신건강문제, 산재사고 트라우마 등이다. 또 사업주가 안전확보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이 입증되어야 처벌된다. 여기서 안전의무는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막기 위한 근로조건을 확보하고, 청년노동자 7명이 실명했던 메탄올 중독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폭염에 고강도의 업무로 노동자를 내몰지 않는 것을 뜻한다. 예방가능한 문제를 방치하는 것에 대해서 최대 징역 7년 또는 1억원이하의 벌금
이 과도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창엽 시민건강연구소장 서울대보건대학원 교수도 "과거 개인 건강문제, 만성질환이라 생각했던 과로사와 뇌심혈관질환 등은 이제 가장 중요한 산재이자 중대재해가 됐다"며 "장시간 노동과 직장 내 괴롭힘이 노동자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보건학에서는 이미 정설로 확립됐다. 그럼에도 현재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안은 안전보건관계법령에 근로기준법을 제외해 놓았다. 노동자 건강 문제가 개인의 책임이라는 과거 패러다임으로 후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영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중대한 잘못이라 하겠다. 노동시간, 직장 내 괴롭힘 등에 대한 예방 조치를 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 등의 의무로 포함하도록 안전보건관계법령에 근로기준법을 포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익찬 민변 노동위 변호사는 "시행령 제5조 제2항은 경영책임자가 '점검'내용을 포함해 법위반 사항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수정돼야 한다. 점검이 위탁이 가능하다는 조항은 삭제되어야 한다"며 "시행령 제정안은 점검 내용이 부실하더라도 그 점검내용에 따라서 필요한 조치를 다하면, 중대산재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점검내용을 방패로 면책될 가능성이 있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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