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 칼럼니스트

초고령화 사회이자 다사 (多死) 사회인 일본에서 최근 자필 유언을 작성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일본 법무국이 작년부터 자필 유언장을 보관하는 제도를 시작하면서 분실이나 조작의 가능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죽음을 조금 더 가깝게 느끼기 시작한 고령자들 중에서 유언서 작성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사후에 아내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 유언장 한 장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니가타현에서 자영업을 하는 다카하시씨(42)는 아직 4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유언장을 작성, 예금 등 재산을 모두 아내에게 상속하겠다고 밝혔다. 아이들도 어리고 자신도 아직 건강하지만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다카하시씨가 유언장을 쓰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동창의 사망 후 상속으로 인한 갈등을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동창인 여성은 뇌경색으로 급사했으나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고, 여성이 살던 집을 누구의 명의로 할지를 두고 시댁과 실랑이가 일었다. 

유언장은 자신이 직접 쓰는 ‘자필증서유언’와 법률 전문가인 공증인이 조언하면서 본인에게 내용을 듣고 작성을 대행하는 ‘공정증서유언’이 있다. 자필유언은 전부 자신이 쓰기 때문에 비용이 들지 않지만 공정증서유언은 수만 엔 (약 수십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들고 완성까지 한 달 정도가 걸리기도 한다.   

다카하시씨 또한 친구의 죽음을 통해 유언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지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비용을 들이며 작성하는 유언은 아무래도 부담이 느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일본 법무국이 2020년 7월부터 ‘자필증서 유언서 보관제도’의 운용을 시작하였다는 소식을 접했다. 

1통당 보관료 3,900엔 (약 42,000원)을 내면 자필로 쓴 유언장을 법무국의 보관소에 맡아 주는 제도로 본국, 지국, 출장소 등 전국 312개 장소에 보관소를 설치하였다. 다카하시씨는 ‘집에서 유언서를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며 안도한다. 

이러한 보관제도는 유언자가 죽은 뒤가 아니라면 상속인이 유언의 내용을 확인할 수 없도록 하기 때문에 유언서를 조작하거나 분실할 우려가 적다. 제도 도입 후 1개월 동안 보관 건수는 2,500건을 넘었으며, 2021년 3월까지 9개월 동안 총 1만 6,655건의 자필 유언이 보관됐다. 

이렇게 자필 유언 시장이 확대되면서 유언서의 작성을 도와주는 상품과 서비스 또한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다. 유언서 작성을 지원하는 앱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법무사 사무소 엔퍼스트 (N-first)가 운영하는 앱 라쿠츠구 (らくつぐ)에서는 챗봇의 질문에 답하는 것만으로 자동으로 유언서를 만들 수 있다. “상속을 받을 사람은 누구입니까” “현재 보유한 부동산을 입력해 주세요” 등 간단한 질문에 답하면 앱이 유언서를 만들어 준다. 작성자는 만들어진 유언서를 손글씨로 베껴 쓰면 된다. 

간편하게 유언장을 만들 수 있는 앱을 알게된 계기로 가족들과 상속 문제에 관한 의논을 시작하거나 유언장을 작성하는 케이스도 늘고 있다. 

“이렇게 간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 놀랐다. 앱을 알게된 계기로 남편과 상속에 관해 의논하게 됐다” “최근 코로나 뉴스를 보면서 죽음이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다. 아이도 자립했으므로 슬슬 상속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하고 싶다”는 의견을 들을 수 있다. 

라쿠츠구를 개발한 엔퍼스트는 “사정이 복잡하다면 전문가와 상담하는 것이 좋지만 유언서의 형식이나 내용을 이해하는 첫 걸음으로서 앱을 사용해 주면 좋겠다”며 개발 배경을 설명한다. 2019년 12월 론칭 후 약 3천명이 앱을 다운로드 했다. 

문구용품 제조사인 코쿠요(KOKUYO)도 용지와 가이드 책을 세트로 묶은 ‘유언서 키트’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유언서 작성에 관한 가이드북이 함께 들어 있으며 작성의 흐름을 단계별로 알기 쉽게 설명한다. 용지에는 법적인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날짜, 서명, 인감 등의 누락이 없도록 테두리로 구분해 놓았다. 자필증서 유언서 보관제도가 시작된 후 문의가 증가했으며, 이에 따라 코쿠요는 자사 홈페이지에 “본 제품을 사용해 보관제도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라며 홍보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자필증서 유언에는 과제도 있다. 전문가의 체크가 없기 때문에 유족이 최소한 받을 수 있는 법정 상속 비율을 밑도는 내용의 분할 방법을 기재해 버림으로써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상속과 관련된 법률에 대해 스스로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제에도 불구하고 자필유언 보관제도가 가지는 의의는 크다. 자필유언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일반인들도 쉽게 유언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로 인해 유언서 시장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초고령화 사회에는 누구나 쉽게 유언장을 작성하고 보관할 수 있는 제도가 중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일본의 자필유언 보관제도를 참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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