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00만원. 강원도에 사는 권순녀(가명ㆍ72) 할머니가 올 1월 손자를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에게 속아 넘겨준 돈이다. 폐지와 공병을 줍고 남의 집 밭일을 하며 한평생 한두 푼 모은 전 재산이었다. 권 할머니가 앞뒤 가리지 않고 돈을 보낸 이유는 단 하나 '손자'라고 했기 때문이다. 업어 키운 손자였기에 더욱 애틋했다. 일찌감치 서울로 올려보낸 손자에게 탈이 생겼다는 말에 이유도 묻지 않고 보낸 돈이다. 이따금 주변에서 '보이스피싱을 조심하라' 고 일러줬지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손자와 똑같은 목소리였다는 게 권 할머니의 말이다. 

#지난달 27일 경북 구룡포수협에서는 포항시 호미곶면에 사는 송인숙 (가명ㆍ76)할머니가 은행 창구에 찾아와 정기 예금한 4건 4584만원을 중도해지를 하고 급하게 현금으로 인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수협 직원은 "현금으로 찾아가면 고액이라 위험하니 송금 또는 자기앞 수표로 찾아주겠다"고 유도했다. 하지만 송 할머니는 굳이 현금으로 달라고 했고 보이스피싱을 의심한 수협 직원이 경찰에 연락하면서 소중한 전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송 할머니는 아들이 사업자금으로 필요하다며 돈을 보내달라는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최근 보이스피싱 등 사기범죄가 조직화 지능화하면서 65세 이상 노령층의 피해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혼자사는 독거노인을 겨냥한 진화된 보이스피싱이 느는 추세다. 주변 도움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실제로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양정숙 의원 (무소속)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무선 보이스 피싱은 3년 새 26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선 보이스피싱은 2017년 240건에서 지난해 6351건으로 26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도 지난 7월 말까지 4729건으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편취형 보이스피싱도 꾸준히 늘고있다. 대면 편취형 보이스피싱 범행은 지난해 1~7월 1261건에서, 올해 같은 기간 2920건으로 전년 대비 131.6%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보이스피싱에 대해 연령대를 불문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걸려오지만, 판단력이 흐린 노인은 특히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안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처럼 혼자 사는 고령 1인 가구를 겨냥한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자 금융기관이 보이스피싱 예방에 나섰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관련 종사자 전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이스피싱에 대한 홍보를 하고 있지만 정보가 취약한 계층의 피해사례가 끊이질 않고 있다"면서 "경찰과 협조해 맞춤형 홍보를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갈수록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단속에 주력하고 있다. 이날 경찰청은 금융기관과 협업을 통해 보이스피싱 2424건과 548억원의 피해를 예방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최근 보이스피싱 관련 대면 편취 수법이 지속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금융기관 종사자나 택시·경비원 등의 신고가 피해 예방 및 검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이에 따라 지역별 금융기관 협의체, 택시조합, 택배회사 등 유관기관·단체와 협업을 증진해 맞춤형 홍보를 추진했다.

경찰은 주요 신고사례 유형으로 '은행직원이 창구에서 고액 현금을 인출하려는 고객을 수상히 여겨 신고', '택시기사가 승객이 보이스피싱 피의자로 의심된다며 신고' 등을 소개했다. 

경찰청 지능수사대 관계자는 "실질적으로 원활한 정보수집이 힘든 독거노인의 경우에는 쉽게 이러한 사기수법에 넘어가게 되기 때문에 평소에 주의를 주시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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