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투자 성행 '깡통전세' 기승
1인 가구 15.8% 전세 세입자

사진=미리캔버스/디자인=안지호 기자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거주하는 이지은(36,가명)씨는 갭투자 사기가 기승이란 뉴스를 접하고 요즘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현재 거주하는 집의 전세가율이 90%에 달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셋집을 알아보던 이씨는 전세를 끼고 매매를 한다는 전 집주인과 계약을 했다. 본인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공인중개사무소의 말을 믿어서다. 이후 전 집주인은 집을 팔았고 전세 계약은 자연스럽게 승계됐다. 불안한 마음에 부동산등기를 보니 현재 집주인은 광주에 있는 한 기업이었다. 말로만 듣던 '깡통전세'인 것이다. 이씨는 계약 기간이 끝나는 내년에 무사히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다.

부동산 시장에 갭투자가 성행하면서 이른바 '깡통전세' 경고등이 떴다. 특히 묻지마식 갭투자에 자금력이 취약한 20·30대가 피해를 보고 있어 청년 1인 가구의 전세 사기 피해가 우려된다. 

10월 국정감사가 시작되면서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는 갭투자 현황에 대한 자료가 쏟아지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강준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지역별 갭투자 현황'을 보면 서울의 경우 지난해 35%였던 갭투자 비율이 올해 43%를 넘어섰다. 

심지어 이 중 1만7539건(48%)은 전체 거래금액의 70% 이상이 보증금 승계로만 이뤄졌다. 흔히 말하는 전세가율이 70% 넘는 '깡통전세'다. 

지금처럼 집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갈 경우에는 괜찮지만 집값이 하락할 경우 자칫 전셋값 이하로 떨어질 수 있어 집을 팔아도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자료를 보면 깡통전세로 보여지는 서울 전세 거래 중 4582건은 임대보증금이 이미 매매가를 초과했다. 

여기에 임대보증금과 은행 대출로만 구성돼 자기자본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집을 산 경우도 1만4871건이나 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장경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도 갭투자 급증이 드러난다. 주택 매수자의 자금조달계획서상 주택담보대출과 임대보증금을 합산한 금액이 집값의 100%가 넘는 신고서가 2020년(3~12월) 7571건에서 2021년(8월까지) 1만9429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동기간 주택담보대출액과 임대보증금 합산액이 집값의 80% 이상인 신고서도 3만6067건에서 8만511건으로 역시 2배 이상 증가했다.

더 심각한 부분은 서민이 거주하는 다세대·다가구 등 이른바 빌라에서 깡통전세가 급증한 점이다. 주택유형별로 보면 올해 대출과 보증금 합산액이 80% 이상인 아파트는 지난해보다 1.8배 증가했지만, 빌라는 무려 3.3배나 증가했다.

갭투자로 인한 실제 피해사례도 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권영세 의원(국민의힘)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주택이 경매로 넘어가면서 세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례는 2455건에 달했다. 2018년(1738건) 대비 41%나 증가한 수치다. 

2016년부터 올해 7월까지 세입자가 주택 경매 처분으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례도 1만2745건에 달했다. 

이러한 깡통전세 주의보에 1인 가구의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2019년 기준 국내 1인 가구의 15.8%는 전세 세입자다. 가구수만 97만가구에 달한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20·30대 청년 상당수가 대출을 받아 전셋집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는 부분이다. 

5대 시중은행(국민·우리·신한·하나·농협) 잔액기준 전세대출 현황에 따르면 2017년 6월 52조8189억원이었던 전세 대출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48조5732억원에 달했다. 4년 만에 2.8배(95조7543억원) 증가한 수치다. 그런데 이 중 상당수가 20~30대 청년층이었다. 전세 대출을 보면 20대는 4조3891억원에서 24조3886억원으로, 30대는 24조7847억원에서 63조6348억원으로 급증했다. 

해당 기간 20·30대가 금융기관에서 받은 전세 대출 규모만 약 59조원이다. 이는 전체 전세 대출 증가액의 61.5%나 된다. 

실제로 전세 사기에 휘말리는 청년층 역시 증가하고 있다. 

장경태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8월 기준 20·30대의 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사고금액은 2210억원에 달한다. 40대 이상(1302억원)을 넘어서는 규모다. 2019년만 해도 전세보증 사고금액은 40대 이상이 2283억원으로 20·30대(1117억원)보다 높았다. 지난해도 20·30대(2320억원)는 40대 이상(2347억원)보다 피해액이 적었다. 

그런데 최근 갭투자가 성행하면서 20대의 전세대출 사고액이 급증했다. 2019년 62억원에 불과했던 사고금액이 지난해 291억원으로 늘어났다. 올해도 지난 8월까지 564억원을 기록, 이미 지난해의 두 배를 넘어섰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한 개업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전세 대출이 잘 나오다 보니까 청년들도 월세보다는 전세를 선호한다. 그런데 전세가 거의 없어, 위험한 물건도 거래가 이뤄지는 형국"이라며 "예전 같으면 70%만 넘어도 깡통이라고 피했는데 지금은 90%가 넘는데도 거래되고 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개업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도 "빌라 전세 찾아보면 요즘 갭투자 의심 사례가 많다. 전세보증보험이 되는 물건은 그나마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물건은 사고 날 가능성이 아무래도 높다"며 "전셋값이 치솟은 데다가 물량도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거래되는 거 같다"고 전했다.

사진=1코노미뉴스,픽사베이/디자인=안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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