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칼럼]「혼자 사는 사람들」이 허물기 시작한 관계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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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칼럼]「혼자 사는 사람들」이 허물기 시작한 관계의 벽
  • 정재훈
  • 승인 2021.10.25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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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1인 가구 지원정책 관련 논의를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혼자 산다고 특별히 무슨 지원을 해 줄 필요가 있는가? 서울시의 경우 「1인 가구 지원 조례」까지 만들긴 했는데, 2인가 구나 3인 가구, 4인 가구 등 다른 가구 형태는 왜 정책적 지원 대상이 되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인 가구는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당분간 정책적 지원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한부모가족이 부모가족에 비해 갖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듯이, 혼자 살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해결을 원하는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젠더폭력이 구조화되어 있는 한국사회에서 1인 가구 여성의 안전이 사회문제가 되는 사례가 있다. 

둘째, 이미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은 삶의 형태가 되었지만,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이 여전히 지배적인 한국사회에서 1인 가구는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1인 가구로서 산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관계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를 경험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1인 가구의 사회적 관계망을 복원하거나 유지ㆍ확대시켜주는 사회서비스의 필요성이 생겨난다.

셋째, 1인 가구의 삶이 자발적 선택이 아닌 비자발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안정적 주거와 사회적 관계망 유지라는 인생 과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 쉽다. 비자발적 요인으로서 학교나 직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지고 가치관의 변화 등으로 인하여 삶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자발적 요인에 따른 1인 가구 증가가 늘어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kb금융연구소, 2020 한국 1인 가구 보고서). 그러나 별거ㆍ이혼ㆍ사별 등을 포함하여 학교와 직장 요인에 따른 비자발적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감소했다고 단언하기는 아직 이르다. 

결국, 1인 가구이기 때문에 갖는 특별한 욕구가 있고, 1인 가구이기 때문에 경험하는 사회적 관계에서의 문제가 있으며, 비자발적으로 1인 가구가 된 사람들에 대하여 한국사회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혼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신용카드 회사 콜센터 고참 직원 진아(공승연)가 선택한 혼삶이 주요 줄거리다. 그런데 즐기는 혼삶인지 버거운 혼삶인지 그 특유의 무표정함에서 알아채기가 어렵다. 직장 동료, 이웃과의 관계는 없다. 출퇴근 길에서는 스마트폰에, 집에서는 TV 화면에 진아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다. 타인에 대한 진아의 무감각 그 자체가 수많은 진상 고객들의 요구에 기계적으로 응대하면서 성과를 가장 잘 내는 콜센터 직원이 되는 비결이기도 하다.

그러나 직장 신입 수진이 진아의 삶에 끼어든다. 진아가 외면했던 이웃집 청년은 혼자 죽고서도 한참 후 발견된다. 고독사한 청년의 집에 새로 이사 온 또 다른 청년은 진아에게 밥 한 끼를 권한다. 어머니와 사별하고 혼자된 아버지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행복해지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다른 혼삶을 경험하면서 진아는 직장 선배에게 “밥이나 함께 먹자”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변한다. 다른 사람들을 향해 쌓았던 관계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하면서 진아는 직장에 나오지 않는 수진에게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게 된다. “(저 사실) 혼자 밥 못 먹는 것 같아요. 혼자 잠도 잘 못 자고, 버스도 못 타고, 혼자 담배도 못 피우고, 사실 혼자 저 아무것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냥 그런 척하는 것뿐이지.”

진아의 직장 신입으로 들어온 수진(정다은)은 직장 요인에 따른 전형적인 비자발적 1인 가구다. 혼자 밥 먹기가 전혀 익숙하지 않다. 직장 적응을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지만 너무나 쿨한(?) 선배 진아가 계속 외면하는 현실의 벽에 막혀 결국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진아의 이웃집 청년(김모범)은 어떤 이유에서 혼자 살게 되었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결국 혼자 죽고서도 한참 후에야 발견된다. 고독사가 노인만의 이슈가 아닌 최근 흐름을 보여준다. 고독사한 청년 집에는 또 다른 청년이 들어온다. 성훈(서현우)이다. 밥 한 끼 들어와서 먹으라는 성훈의 자그마한 제안이 진아의 변화에 한몫한다. 사별로 혼자된 진아의 아버지(박정학)는 참 뻔뻔하다 할 정도로 금방 죽은 배우자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간다.

혼자 밥 먹으러 가기 힘든 수진, 고독사한 청년, 이웃과 밥 한 끼 나눌 수 있는 청년, 노년의 혼삶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아버지 등 다른 사람들의 혼삶을 경험하면서 진아는 자신의 혼삶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막아두었던 관계의 벽을 허물기 시작한다. 영화 속 진아는 그렇게 스스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진아는 어떤 도움을 필요로 했을까?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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