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맛있는 영화(2021)」에는 ‘진짜’ 맛있는 음식이 나온다. 쌀국수, 떡볶이, 라면이다. 나는 태어나서 자라고 잠시 공부를 위하여 이 땅을 떠날 때까지 떡볶이를 가장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너무 이른 아침에 등굣길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입맛을 잃은 친구들은 그냥 아침밥을 굶고 학교에 왔다. 그러나 내 엄마는 아침에 늘 떡볶이를 해주셨다. 그러면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꼭 먹고 집을 나왔다. 아들 아침을 굶기기 위한 엄마의 전략이 주효했다. 

독일에 유학을 가서는 마땅히 거창하게(?) 한국음식을 해먹을 여건이나 재주가 안돼서 라면을 즐겨먹었다. 집에서 배로 부쳐주는 라면 개수가 여유로울 때에는 거의 매일 밤 12시쯤 라면을 한 개씩 끓여 먹었던 기억이 있다. 다시 한국에 오니 베트남 쌀국수가 막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서히 라면을 줄이고 쌀국수로 갈아탔다. 어쩌다 밖에서 뭔가를 먹을 기회가 생기고 내가 메뉴를 고를 수 있으면 무조건 쌀국수다.

「맛있는 영화」를 밤 12시가 좀 넘어서 봤다. 쌀국수는 당장 재료도 없어 엄두를 못냈다. 떡볶이와 라면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라면을 먹었다. 한 시간짜리 영화를 보면서 내내 “먹으면 안돼.”라고 나와의 싸움을 했지만 결국 졌다. 영화는 나로 하여금 결국 라면을 먹도록 설득하였다. 그런데 영화 내용에는 별로 공감은 안됐다. 

꼭 누구와 함께 먹어야 하나? 누군가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먹거리여야 할까? 쌀국수, 떡볶이, 라면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즐겨 먹는 음식이다. 그래서 영화는 쌀국수를 함께 찾아 새벽시간 서울 시내를 따릉이로 질주하는 두 친구, 여친이 남겨 놓은 떡볶이를 먹는 남자, 함께 라면을 먹으면서 우정을 확인하는 두 중년여자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누가 봐도 무난하거나 아련하고 훈훈한 모습이다. 한국인의 보편적 정서에 참 잘 들어오는 영화다. 

「굿바이 싱글」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함께 밥을 먹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식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주연(김혜수)이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가족’으로서 연결하는 고리는 자신이 직접 장만한 만찬이다. 그래서 빈 말이라도 우리는 “밥 한번 먹자.”는 인사말을 한다. 실제로 밥을 먹게 되면 “너는 나와 동료나 친구가 될 수 있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된다. 

그러다보니 서울시 1인 가구 지원기본계획의 주요 추진 과제 중 하나가 ‘소셜 다이닝 등 여가문화 확산’이다. 소셜 다이닝? 사회적 식사? 이 단어가 서울시 차원의 정책 과제에 나온 근거가 있다.  「서울특별시 사회적 가족도시 구현을 위한 1인 가구 지원 기본 조례」라는 긴 이름의 조례다. 일명 ‘서울시 1인 가구지원 조례’인데, 동 조례 3조 6에서 “소셜 다이닝(Social-Dining)이란 1인 가구들이 모여서 취사와 식사를 함께 하는 활동을 말한다.”라고 아예 개념 규정까지 하고 있다. 서울시 1인 가구지원센터에서도 ‘소셜 다이닝’은 빠질 수 없는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다. 1인 가구이면 혼자 밥을 먹게 되고 그러면 사회적 관계 차원에서 봐도 그렇고 어쩐지 외로울 것 같으니 ‘소셜 다이닝’ 프로그램으로 사회적 관계망 형성을 지원해주자는 취지다.

즐기거나 즐기지 않고를 떠나서 혼밥을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는 문화는 언제쯤 정착할까?  “혼자 밥 먹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취지의 언론 기사들은 여전히 혼밥을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지 않는 가치ㆍ규범이 존재함을 역으로 보여준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진아가 혼자 사는 식사에서 볼 수 있듯이 혼밥은 여전히 외로움의 상징이다. 그러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 주고받으며, 자리에 없는 사람 뒷담화를 하고 ‘윗분’ 취향과 분위기에 끌려 다니는 그 모습들은 무엇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 

내 취향대로 선택하고 나만의 시간을 고요하게 즐기면서 고된 하루 일과에서 잠시라도 재충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혼밥’을 생각해본다. 「혼자 맛있는 영화」를 언제쯤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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