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아빠가 MZ세대 딸에게⑭ 관망상제를 배우자

강한진 나음연구소 소장
강한진 나음연구소 소장

지난번 글을 올리고 두어 시간쯤 지났을 무렵, 딸의 전화가 왔다. 글을 봤다면서 다짜고짜  "아빠, 내가 예전 회사에 다닐 때 회식하다가 전화했던 거 기억나?"라고 직격했다. 녀석이 전화한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친구와 수다하다가 갑자기 영상 통화를 걸어와서 내의 차림이던 나를 당황하게 한 적도 여러 번인데 기억이 날 리 없지. "글쎄~"라고 했더니 채근하듯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전에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거의 마음 먹은 무렵이었어요. 하루는 회식하자고 하더라고요. 당시 '미투'가 한창일 때였는데 C부장이 술 좀 취하더니 난데없이 '여자들이 미투운동 하는 거 다 자기 무덤 파는 짓이야'라는 거에요. 그 말 듣고 내가 눈알이 돌아가는 줄 알았거든요! 정말 부들부들 떨었어요. 혼자 술을 따라 마시는데 표정 관리가 안 되더라고요. 당연히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냈죠. C부장이 그러는 날 보더니 ‘왜 너는 내 말이 영 마음에 안 들어?’ 이러는 거예요. 진짜 얼굴에 술을 확 뿌려버릴까 하다가 참고 아빠한테 전화 걸어서 큰 소리로 ‘어, 아빠. 나 지금 회식 중인데~’ 하면서 빠져나왔죠.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 아빠한테 막 화냈잖아요."

딸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상황이 기억났다. 당시 워낙 큰 이슈였고 실제 문제는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아는 나는 딸의 주변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하던 참이었다. 더 분명히 기억나는 것이 딸의 분노였다. 안 그래도 성격 못된 녀석 그만두려고 생각하는데 이참에 확 때려치우고 나오는 거 아닌가 걱정되었다. 

사실 많은 기성세대가 비슷한 전제와 잘 바뀌지 않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기성세대의 전제와 사고방식은 MZ세대의 그것들과 종종 어긋난다. 딸의 회식 사건처럼 그 어긋남이 드러나고 부딪치는 순간, 기성세대들의 말과 행동으로 그들의 인격 수준이 드러나고 가늠된다. 

꼰대가 힘으로 내 전제와 사고방식을 따르라고 윽박지르면 MZ세대는 표정을 굳히면서도 잠시 고개를 숙인다. 힘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서면서 속으로는 머지않아 퇴물이 될 것이라고 되씹는다. 이 모든 것이 누적된다는 것이 더 무섭다. 그래서 나중에 다시 다가서려고 하면 '혼자 놀게요, 우리 그냥 놔두세요' '우릴 그냥 가만히 놔두는 게 도와주는 거다'라며 거부하는 것이다.

딸에게 이제 기억이 난다고 말하자. 딸은 "아들 둘을 가진 C부장에게 딸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저런 소리를 지껄였을까, 자기 딸이 험한 꼴을 당하고 왔어도 같은 말이 나올까, 뭘 어떻게 하고 다녔길래 그런 일을 당했느냐고 했을까"라면서 이중적으로 보이는 면모까지 신랄하게 꼬집었다. 그러고는 "자기는 그런 이중성과 미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을 '꼰대'라고 부른다"고 했다. 

한참 그렇게 열을 내고는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그리고는 "근데 아빠, 내가 좋아했던 J부장님 기억나요?"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 부장님도 꼰대여서 '종종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뭣도 모르는 쬐꼬만 게 자꾸 이거 왜 이렇게 하냐고 묻고 따지고 덤비니 얼마나 웃겼겠어요. 그래도 그분은 내가 그럴 때마다 막 웃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라면서 늘 존대하시고 절대로 반말 안 하시고, 다 들으시고는 '음~ 그럴 수도 있겠네' 하면서 쿨하게 받아들였어요. 그리고는 '이번엔 ○○씨가 생각하는 대로 한번 해 봐요!' 하셨어요. 근데 나중에는 내가 다시 새로 일을 하게 되는 거 있지? ㅋㅋㅋ 해 보고 나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알고는 아무 소리 못 하고 밤새우면서 조용히 되돌려놨던 게 기억나요. 부장님은 자기가 커버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내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우도록 열어주신 거였어요. '○○씨는 똑똑한 친구니까 알아서 잘할 거야' 하시면서요. 저 녀석 스스로 깨달을 수 있을 거야 하고 믿어주셨던 거죠. 난 그게 아직도 기억나고 너무너무 감사하고 그래요. 그래서 지금도 가끔 연락을 드리게 돼요. 그 부장님은 꼰대긴 한데 '순한 맛 꼰대'였어요. 아랫사람들이 좋아하는…"

'순한 맛 꼰대'라는 단어가 마음을 끌었다. 내 나이를 다시 되돌려서 한해 한해 젊어질 수 없고, 머리도 굳어 예전처럼 빠르게 생각하지 못하고, 쉬 관점을 바꾸지도 못하는데 어쩌란 말인가. 딸이 말했던 J부장처럼 젊은 사람들과 잘 지내면서 존경받을 수 있다면 애써 달라지려 할 것까지 없을 수 있지 않을까.

딸은 대조적인 두 얼굴, 마음과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배척과 저항의 대상이 되고 감사와 존경의 대상이 되는 모습을 이야기했다. 어설프고 맹랑하며 패기만 있는 딸에게 실패할 수 있는 안전지대를 열어주어서 젊은 생각과 능력을 시험하면서 성장하게 이끌고 마음까지 얻은 그 부장의 탁월한 리더십(?)을 보며 춘추시대 정나라의 재상 자산(鄭子産, 원래 이름은 公孫橋. 子가 子産이라 정자산으로 많이 알려짐)이 유언으로 남겼다는 관맹상제(寬猛相濟, 너그러움과 엄격함이 조화되게 이끌라)의 교훈을 떠올린다. 관(寬, 너그러움)이 먼저이고 맹(猛, 엄격함)이 나중이라는 것, 그리고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모두를 행해야 함을 생각하면서.

▶필자는 마음을 연구하는 곳 나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통이 필요한 분은 언제든 메일(hjkangmg@hanmail.net)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필자소개]
나음 강한진 소장은 경북대학교 공대에서 전자공학을,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과 상지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국내 기업에서 엔지니어와 관리자 경험을 쌓고 지금은 나음연구소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대인관계와 소통, 특히 갈등을 긍정적인 계기와 에너지로 전환하는 지혜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가정과 학교, 청년에게 있다고 믿으며, 가족의 평화와 학교(교사-학생-학부모)의 행복, 청년의 활력을 키우기 위한 일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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