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화 1인 가구 청년 칼럼니스트
한유화 1인 가구 청년 칼럼니스트

"혼밥의 시간을 스타일링하라"

얼핏 단순하게 들여다보면 혼밥은 편리한 부분이 더 많아 보이기도 한다. 길게 줄을 서는 맛집에서도 혼자 슉 하고 앞질러 들어갈 수 있고 메뉴를 정하는 일도 쉽다.(심지어 갑자기 변덕스럽게 바꾸는 일도!) 문제는 비자발적인 혼밥이다. 

프렌치 코스요리나 스시 오마카세까지도 혼자 즐기곤 하는 혼밥 능력자인 나조차도 예정에 없던 비자발적 혼밥 상황이 생기면 신경질이 날 때가 있다. 이미 배가 고픈 상태로 외출을 마치고 터덜터덜 집에 들어와 신발과 겉옷을 사방으로 벗어던진 상태에서 뭔가 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때. 배달 음식도 좋아하지 않는 나이기에 귀찮음을 이겨내고 여차저차 뭔가를 요리해서 입에 넣어봐도 맛의 수준이 성에 차지 않을 때. 

혼삶에서는 내가 나를 먹이고 대접해야 하는데! 나 자신이 맛있어할 만한 음식을 만들어 낼 정도의 요리 실력이 없다는 것을 실감할 때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부족한 어른이라고 느낀다. '요리를 꼭 잘해야 하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내가 맛있는 요리를 원한다지 않나. 그 누구도 아닌, 다름 아닌 내가.

혼밥의 매 끼니를 소중하게 준비해서 스스로에게 대접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오랜 시간을 들여 영양이 가득한 식사를 직접 마련해야 한다는 의도와는 다르다. 태블릿 PC로 유튜브 영상을 틀어 놓고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데워서 먹어도 괜찮고, 냉장고에서 꺼낸 밑반찬에 소주 한잔이 옆에 있어도 괜찮다. 굳이 집밥을 먹지 않고 식당에 혼자 찾아가서 일본의 유명한 드라마인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처럼 즐겨도 좋다. 

중요한 건 혼자 하는 식사 시간을 혼삶의 일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자신만의 시간이 되도록 스타일링하는 것이다. 간혹 내가 살고 싶은 '혼삶의 모습'과 '혼밥의 모습'에 괴리가 있다고 느껴질 때, 그때 우리의 혼삶 자체가 나약해지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혼밥 추억 쌓기"

혼자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다양한 혼밥 경험을 쌓게 된다. 나는 주로 궁상과 청승을 기본 테마로 한 배낭여행을 떠나곤 했었기에 '이동식 혼밥' 경험이 잦다. 가방에 사과를 챙겨다니면서 껍질 채로 먹는 식사도 잦았고 길거리에서 파는 현지 음식을 사 들고 공원에 가서 먹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이렇게 금전적, 시간적인 절약을 위한 길거리 혼밥을 하던 내가, 한 번은 '잘 나가는(?) 여자의 여행'을 해보리라 맘먹고 싱가포르 70층 전망대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식사를 예약한 적이 있다. 2인분이 기본인 코스요리였지만 혼자 여행 가서도 이것저것 여러 메뉴를 주문하곤 하는 나이기에 거침없이 예약 버튼을 눌렀다. 기념일을 맞은 손님에게는 초콜릿 케이크를 제공한다는 말에 별생각 없이 'Y(그렇다)'를 체크하고는 방문일이 다가올 때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럭셔리한 여행을 대놓고 즐겨보겠다는 다짐을 내어 보이듯 허리가 트여있는 독특한 디자인의 붉은색 점프슈트를 차려입고 당당하게 레스토랑에 등장. 그런데 그곳의 매니저가 흔들리는 동공으로 나를 여러 차례 돌아보더니 다른 직원들과 다급한 귓속말을 수군대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커플이 함께 걸어 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Happy Anniversary(행복한 기념일 되세요)' 케이크까지 준비한 그들은 보란 듯이 강렬한 모습으로 혼자 등장한 나에 대해서 결별, 혹은 이혼 키워드까지도 짐작하고 있는 듯했고 그렇기에 더욱 '혼자 오셨네요?' 같은 뉘앙스를 풍기지 않기 위해 각별히 조심해 주는 것 같았다.

고급 코스요리를 내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이런 풍경은 처음 봤다. 여러 직원들이 나를 둘러싼 채로 서서 '연인을 잃고 혼자 와서 기리는 쓸쓸한 기념일'을 축하해주는 그런 광경. 혼자인 나를 절대 쓸쓸하게 놔두지 않겠다는 열렬함이 전해져서 나는 어쩔 줄을 모르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케이크는 더할 나위 없이 달콤했다. 당황스럽고 난처한 기분이 들었을 법도 했는데 나는 오히려 우스꽝스러운 상황 속에서 조금 들뜨고 즐겁기까지 했다. 케이크가 무색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왠지 오늘을 기념할 만한 날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싱가포르 혼밥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결혼기념일 대신 '혼삶기념일'이라도 챙겨야겠군. 

"혼밥, 어색하고 서글프게 느껴지는 혼삶이라면"

1인 가구에게는 비교적 혼밥의 일상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혼자 하는 일상 중에서도 혼밥의 영역을 유독 힘겨워한다. 

혼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능력 중 하나는, 자신의 일상에서 불만족스러운 점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찾아내어 그것을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능력이다. 아무리 TV, 유튜브와 함께 해도 혼밥이 여전히 심심하고 외롭다면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혼밥의 메뉴나 과정 자체를 자신이 좋아하는 쪽으로 스타일링하거나 혼밥을 어색해하거나 불편하게 여기는 스스로의 기분이나 생각을 트레이닝하거나.

1인 가구에게 혼밥 상황이 더 잦은 것은 자연스럽지만,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혼밥 대신 누군가와 함께 하는 끼니를 늘릴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식사를 동반하는 모임에 참여하는 것은 아주 트렌디한 대안이 된다. 1인 가구는 '1인 이상의 순간'을 어떻게 만들고 관리하는지에 대한 역량이 삶의 질을 좌우하기에.

[저자 소개] 네이버 블로그 <직장인 띄엄띄엄 세계여행> 운영, 34개국 250여 회 #혼행 전문 여행블로거 

'남의집' 소셜링 모임 <여행블로거의 혼삶가이드>의 호스트

혼삶이 두렵지 않은 합기도 4단, 23년 경력의 '무술인'

현) 비욘드바운더리 글로벌 커머스 본부장

전) 이랜드차이나 상해 주재원, 중국 리테일 런칭 전략기획 

후) 독립출판 레이블 리더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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