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 일본 전문 칼럼니스트
정희선 일본 전문 칼럼니스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며 떠오르는 문제 중 하나는 치매 환자의 증가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다. 치매는 기억이나 사고와 같은 인지기능이 점차 저하되는 것으로 일상 생활에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발병 후 서서히 악화되지만 현재로서 완치 가능한 치료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 2030년경에는 65세 이상 고령자 5명 중 1명이 치매에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최근에는 한창 일할 나이인 65세 미만에 발병하는 젊은 치매 환자의 증가도 우려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의 경험을 활용하여 치매 환자의 생활의 질을 높이는 제품 및 서비스를 개발 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치매 환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는 찾아보기 힘들어 이러한 제품에 대한 니즈는 높다. 

결제 서비스 관련 사업을 운영하는 벤처기업인 카에루 (KAERU)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후쿠다 (福田)씨는 교토 내 한 회의실에 모인 치매 환자들에게 자사의 서비스를 시연하며 엄격한 의견을 전해주길 부탁한다. 참가자들은 카에루가 개발한 스마트폰 앱을 시험해 보며 "사려고 하는 것을 잊어 버리지 않도록 하는 메모 기능은 도움이 된다", "자동 충전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등의 의견을 전한다. 

카에루는 스마트폰 앱과 선불카드를 연계하여 치매환자와 그 가족이 함께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결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용 상한액을 설정할 수 있어 과도한 사용을 방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자가 카드를 잃어버리면 가족이 앱 에서 바로 이용을 정지시킬 수 있다. 앱에는 위치 정보나 메모 기능도 탑재되어 있으며 환자가 매장에 접근하면 앱으로 통지가 와서 구매를 막을 수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모임을 교토부와 경제산업성이 주최하였다는 것이다. 교토부는 2019년부터  '치매에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타업종 연계 협의회 (認知症にやさしい異業種連携協議会)'를 구성하여 치매 환자용 제품 개발에 관심이 있는 기업과 당사자를 연결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협력한 치매환자에게는 사례비를 지불한다. 지금까지 치매환자 약 20명 가량을 중개했다. 

기업 각각의 방식으로 치매에 관심을 가지고, 치매에 걸려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을 만들고 싶다는 게 교토부 관계자의 말이다. 즉, 일본의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치매 환자와 기업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자청하기 시작한 것이다.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의 65세 이상 치매환자는 2020년 약 600만명이었다. 큐슈대학의 '일본의 치매고령자 인구 장래 추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환자 수는 2030년에는 744만명 (65세 이상 인구의 20.8%), 2060년에는 약 850만명(25.1%)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 치매 실종자는 1만 7천명을 넘어섰다. 기억장애로 인해 판단력이 흐려져 귀가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통사고나 낙상으로 인한 사고 등 치매로 인한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경제산업성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기업과 치매환자를 연결하는 '당사자 참가형 개발 모델 (当事者参画型開発モデル)'을 전국에 보급시키려고 한다. 제품 개발을 원하는 기업과 치매 환자가 등록하고 정부가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모델 하에서 현재 4개사가 시범적으로 제품 개발에 임하고 있다. 치매환자도 지금까지 100명 정도 참여하였다. 경제산업성은 기업의 제품 개발 담당자를 위한 안내서도 만들고  있는데, 치매 환자를 위한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는 치매라는 병에 대한 전문 지식, 그리고 환자 당사자에 대한 배려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소비재 기업인 라이온(LION)사 또한 당사자 참가형 개발 모델을 통해 치매 환자를 포함한 고령자의 구강 케어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라이온은 자사의 직원을 간병 시설에 파견, 간병 시설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함께 고령자의 입 안의 상태를 체크하고 건강한 구강 관리를 위한 칫솔질의 지도 등을 수행하며 얻은 정보를 시스템에 입력하여 기록한다. 인지 기능이 저하된 고령자도 자택에서 혼자서 칫솔질을 할 수 있는 서비스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라이온사가 치매 환자를 위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은 처음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서비스 개발을 위해서는 환자를 관찰하고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치매환자 관련 상품 개발을 지원하는 것은 단지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에서는 영국 국립의료 연구소와 알츠하이머 관련 단체가 만든 '조인 디멘시아 리서치 (Join dementia research)'가 기업 및 연구자와 치매 환자를 중개하는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도 지자체가 제품 개발에 나서는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 내각부의 추산에 의하면 가족들의 부담을 포함한 치매 관련 비용은2020년 17조 엔에서 2030년 21조 엔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완전한 치료법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치매이기에 환자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상품 및 서비스가 개발될 여지가 많아 향후 기업들의 참가가 확산 될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 또한 2026년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이 예상된다. 치매로 판명 받아도 환자가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당사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상품 개발에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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