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1인 가구의 현실 ①] "남한에 왔지만 아직 도착 못했다"
누적 탈북민 3만4천명…10명 중 3명 '1인 가구'
| 연간 수백 명의 탈북민이 한국에 도착하지만, 초기 정착 지원이 끝나면 일자리·주거·건강 관리 등은 홀로 감당해야 한다. 특히 가족이 없는 1인 가구 탈북민은 정보 부족과 사회적 고립, 복지 제도의 복잡함 때문에 가장 먼저 지원망 밖으로 밀려난다. 제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지원은 있어도 닿지 않는다'는 절규가 반복되고, 많은 탈북민이 사회적 단절로 내몰린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가 외면한 구조적 방치의 결과다. 이에 [1코노미뉴스]는 탈북민 복지정책의 빈틈과 현장의 실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
지난해 기준 국내에 거주하는 탈북민 수는 3만4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그중 가족 없이 홀로 생활하는 1인 가구 비중은 30%를 넘어선다. 낯선 땅에서 혼자 살아가는 탈북민 1인 가구 상당수는 법적 신분은 국민이지만, 사회적 인식과 제도의 한계 앞에서는 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21일 통일부 및 남북하나재단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누적 탈북민 수는 총 3만4314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1인 가구는 33.6%에 달한다. 10명 중 3명은 혼자 사는 셈이다.
문제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 자체가 벼랑 끝이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희망과 강한 의지를 안고 입국하지만, 가족·친인척 등 의지할 곳이 없는 상태에서 홀로 자립을 이어가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문화적 소통 차이, 탈북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 낮은 경제력, 노후 대비 취약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자립 의지는 빠르게 약화된다. 그 결과 일부는 고독사라는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제 통계는 이를 방증한다. 최근 3년간 탈북민 무연고 사망자는 2021년 3명, 2022년 19명, 2023년 13명, 2024년 상반기 14명으로 집계됐다. 사망 원인을 보면 ▲병사 78.3% ▲자살 13% ▲사고사 8.7% 순으로 건강 문제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더 큰 문제는 제도와 인력의 한계다. 탈북민 정착을 지원하는 거주지보호담당관 1명이 맡는 탈북민 수는 최대 300명을 넘는다. 경기도의 경우 담당관 1인당 평균 346.3명, 서울과 인천은 각각 246명, 272명을 담당해 사실상 업무 과부하와 제도 운영 부실을 불러오고 있다.
게다가 담당관은 지자체 간 순환 배치가 잦아 장기적 경험과 전문성을 쌓기 어렵다. 결국 탈북민 1인 가구는 국가의 보호망 밖으로 밀려나며,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탈북민 1인 가구의 현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가 방치한 구조적 문제다. 제도와 지원이 있어도 손이 닿지 않는 현실, 과부하에 시달리는 담당관, 고립과 빈곤 속에 내몰리는 탈북민. 이 사각지대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다.
이는 탈북민들의 실생활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3일 [1코노미뉴스]와 만난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의 격앙된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그간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경험하고 있는 삶이 그의 말에 녹아 있었음을 단번에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그는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에게 '희망 찾아주기'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김 회장은 "한국에서 탈북자는 애완견 취급도 못 받는다. 여기 모인 탈북자들도 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혼자 생활하기 힘든데, 기초생활수급자로 신청을 하려고 해도 손가락을 놀릴 수 있을 정도의 건강 상태면 대상자가 안 된다"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혼자 사는 탈북자가 대부분이다. 정말 죽지 못해 자살 시도했던 사람도 있고,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실제로 2018년 탈북한 이경순(58, 가명) 씨가 그러했다. 그는 탈북 당시에도 몸이 좋지 않았다. 한국에서 받은 장애 판정은 지체장애 1급. 이정도로 불편한 몸을 이끌면서까지 탈북을 결심한 이유는 '억압'과 '감시'에 지쳐서다.
이 씨는 "탈북하기 10년 전에 딸이 먼저 탈북해서 한국에 왔다. 가족 중에 탈북자가 있으니까 감시 당한거지. 그게 싫어서 탈북을 결심했다"라고 털어놨다.
2018년 2월 한국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 이후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해 남북 정상회담 1차(4월 27일), 2차(5월 26일), 3차(9월 18일)가 시행되던 시기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북한과 중국의 검열·단속도 강화되면서 탈북을 막기 위한 노력이 집중된 기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씨는 중국 브로커를 통해 탈북 계획을 세웠다. 거금 1500만원을 브로커에게 건넨 이 씨의 탈북 계획도 순탄히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탈북자들을 감시 및 체포하고 북으로 강제송환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했다. 결국 이 씨 역시 탈북 과정이 발각돼 강제송환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이 씨는 이 과정에서 탈북하고 싶다면 1인당 3000만원을 더 내라는 제안을 받았고, 우여곡절 끝에 탈북에 성공할 수 있었다.
목숨을 건 탈북에 성공한 이 씨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좋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먼저 탈북한 딸을 다시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부풀었다.
하지만 그의 기대감은 금세 좌절로 바뀌었다. 기본적인 언어소통의 부재, 건강악화, 우울증이 그를 무섭게 덮쳤다.
이 씨는 "여기 오면 편하게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체장애인 1급인 탓에 일도 못하고, 복지사들과 말도 안 통하니까 너무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또 "복지상담사는 많이 온다. 방문은 7~8명 씩 엄청 많이 하는데, 북한말 때문에 말이 안 통하니까 많이 힘들다. 또 이분들이 하는 말은 오는 사람마다 다 똑같다. '뭐가 불편하냐', '뭐가 힘드냐'라고 물어본다"며 "어려운 걸 말해도 해결해준다고 말만 하고 실제로 해준 것은 하나도 없다. 올때마다 마치 처음본 사람처럼 사진만 찍어댔다"라고 하소연 했다.
이 씨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다. 명목상 도움을 준다는 복지사들이 불편하기만 했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질문,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그에게 돌아온 말은 '예산부족'으로 도움을 줄수 없다는 말 뿐이었다.
그는 결국 어떠한 도움도 청하지 않았다. 급기야 복지사들을 쫓아내기 까지 했다. "제발 가라고, 괴롭히지 좀 말라"며 소리쳤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통하지 않자 이 씨는 사회활동이 그리웠다. 새로운 사람도 사귀고, 미술이나 노래교실도 가고 싶었다. 고민도 털어놓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고자 탈북자 센터 심리상담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그의 기대와 달리 상담사에게 돌아온 말은 "무슨 말씀을 하는 지 모르겠다"는 답변 뿐이었다.
이 씨는 그렇게 상담사와의 만남을 다시 중단했다.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게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탈북난민인권연합을 알게 됐다. "이곳만이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이 씨는 말했다.
그는 "여기 오면 고향 사람들도 다 알게 되고, 서로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에 너무 감사하다. 유일하게 나를 찾아주는 공간"이라며 "여기에서는 고민도 털어놓고, 다 같이 밥 한끼 같이하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있다. 이곳이 없어지면 하루도 못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씨의 사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탈북민 1인 가구가 한국 사회에서 마주하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준다. 언어 소통 문제, 제한된 정보 접근, 반복되는 형식적 상담, 과중한 담당관 업무 등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정착 과정에서의 고립과 사회적 배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착 초기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며, 탈북민 1인 가구를 위한 장기적·맞춤형 지원 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1인 가구의 경우, 주거·정서 지원·심리 상담·생활 밀착형 서비스가 통합적으로 제공돼야 하지만 현재는 각 기관별 프로그램이 분절적으로 운영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거주지보호담당관 1명이 맡는 탈북민 수가 과다하고, 순환 배치가 잦아 담당관의 전문성이나 장기적 관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제도의 존재보다 운영 방식과 접근성이 문제라는 목소리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단순한 개인적 고립을 넘어, 탈북민 1인 가구의 삶과 안전, 나아가 사회 통합까지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 없이는 사례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탈북민 1인 가구를 위한 맞춤형 상담, 언어 지원, 생활밀착형 돌봄, 지역 사회 연계 프로그램 등의 도입을 제안한다.
탈북난민인권연합처럼 실질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민간 지원기관은 한정적이고 과중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제 법적·제도적 지원을 실제 현장에 맞게 운영하는 책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1코노미뉴스 = 안지호, 박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