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1인 가구의 현실 ③] '복지망' 있지만 없다…사각지대에 갇힌 제도

종이 위에만 존재하는 복지…탈북민 삶은 여전히 '홀로 생존' 고위험군 탈북민 7200명, 자살자도 매년 증가

2025-11-25     안지호, 조가영, 김현찬, 박성민 기자
하나원 수료 이후 홀로 정착에 나서는 탈북민 1인 가구의 복지 사각지대가 심각하다. 정부 지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르거나, 지원 대상자가 아닌 경우가 허다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통일부 하나원 사진 캡쳐, 미리캔버스
연간 수백 명의 탈북민이 한국에 도착하지만, 초기 정착 지원이 끝나면 일자리·주거·건강 관리 등은 홀로 감당해야 한다. 특히 가족이 없는 1인 가구 탈북민은 정보 부족과 사회적 고립, 복지 제도의 복잡함 때문에 가장 먼저 지원망 밖으로 밀려난다. 제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지원은 있어도 닿지 않는다'는 절규가 반복되고, 많은 탈북민이 사회적 단절로 내몰린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가 외면한 구조적 방치의 결과다. 이에 [1코노미뉴스]는 탈북민 복지정책의 빈틈과 현장의 실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탈북민 1인 가구는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 틀 안에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들은 제도는 존재하지만, 이를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정책 사각지대에서 이들은 고립과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든다. 이들의 현실은 정책 보고서와 숫자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삶의 절규에 가깝다.

강동구에 사는 탈북민 1인 가구 이경순(가명·58) 씨는 한국에 오면 '다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와 정반대였다. 지체장애 1급인 그는 노동할 수 없고, 약값만 한 달 40만원이 넘지만 의료급여가 적용되지 않는 약들이 더 많다. "도와달라"고 찾아간 곳마다 돌아온 말은 "예산이 없다"는 건조한 답뿐이었다.

그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긴 건 복지제도의 무심함이었다. '도와주러 왔다'는 복지사들은 여럿이지만, "뭐가 힘드냐", "뭐가 불편하냐"는 질문은 늘 같았고, 해결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경순 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70대 김윤희(가명) 씨는 다리 수술비 350만원을 마련하지 못해 통증에 절어 지내다 남북하나재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돌아온 답변은 '지원 불가'였다. 통일부에 직접 SOS를 치듯 연락한 뒤에서야 가까스로 일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김 씨는 "지원이 극히 일부였다. 돈이 모자랐고 진통제나 수액을 전혀 맞지 않고 수술을 받았다.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았다"며 "그렇게 했더니 수술비가 딱 맞았다"고 눈물을 훔쳤다.

복지의 부재가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 김 씨의 사례에서 드러난다.

인천 부평에서 홀로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 이신우 씨./사진=1코노미뉴스

인천 부평에 사는 이신우 씨는 하나원을 나온 후에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 정착 초기 전 재산 1600만원을 사기로 잃어버리며서, 힘든 삶을 살아왔다. 이 씨는 "가족도, 지인도 없고, 제도 이해도 낮았던 탓에 허무하게 피해를 입었다며 모르는 게 많으니 쉽게 속아 넘어가고, 그걸 어디에 하소연할지도 몰랐다"고 털어놨다.

탈북민이 아닌 한국인이라면 어땠을까.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은 대한민국은 법과 제도가 탄탄하게 갖춰져 있지만, 어려서부터 이를 이해하고 살아온 한국인과 탈북민은 다르다고 말한다.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맞춤 정책이라고 지적한다.

김 회장은 "최근에도 사기범죄 피해를 받아서 돈을 전부 잃은 탈북민들이 도움을 요청하러 왔었다"면서 "이것은 말도 안 된다. 이들을 위한 대책이나 도움책이 하나도 없다"고 질타했다.

이들이 제도가 아예 없는 사회에 사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동일한 복지 정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상상 이상으로 높은 소통의 벽이 존재했다. 창구는 있지만 진입 조차 어렵고, 지역사회와 연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제도의 빈틈이 아니라 제도의 부재와 다름없는 현실이다.

2025년 5월 기준 탈북자 연령별 고위험군 통계./표=통일부

실제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탈북민은 7200명에 달하고, 그 중 상당수가 1인 가구다. 고독사·무연고 사망은 매년 반복되고 있으며, 최근 3년간 무연고 사망자만 49명에 이른다. 누군가의 삶이 조용히 꺼져가도, 국가 시스템은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

일례로 2022년에는 서울 양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40대 탈북민 여성 A씨가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A 씨는 20여년 전 탈북해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인물로도 알려져 사회적으로 충격을 안겼다.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고독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탈북민 자살자도 늘고 있다. 2022년 15명에서 2023년 20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2023년 탈북민 전체 사망자의 16.5%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전체 국민 자살률 3.96%와 비교했을 때 약 4.1배 높은 수치다.

문제는 이들의 고립을 막아줄 마지막 안전망이 사실상 민간단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사진= 북한대학원대학교 홈페이지 사진 캡쳐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중앙 정부 주도로 탈북민의 초기 정착을 위한 지원이 있지만, 이는 물리적 생존을 위한 단순, 단기적 지원으로 끝날 수 있어 한계가 존재한다"면서 "단순히 도와준다는 개념보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립 커뮤니티 등을 통해 스스로가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초기 지원 단계에서부터 지역사회의 개입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중앙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고, 초기 정착에서도 민간이 심리적 지원이나 관계적 안착을 이룰 수 있게끔 지원하도록 병행되어야 한다"며 "물리적, 단기적 지원이 아닌 자립 능력을 키우게끔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착지원의 패러다임 자체가 전환되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박원곤 이화여자대학교 박한학과 교수./사진=이화여자대학교 홈페이지

박원곤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하나원을 나온 후 사기를 당하는 사례들도 많이 보고되고 있다. 하나원을 나와서 지역 사회로 편입되는 과정 중에 지역사회에서 가인 맞춤형으로 케어하는 방식이 아니다 보니, 사기범죄에 피해를 받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며 "북한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것도 있다.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해 한국사람들이 익숙지 않고, 젊은 세대로 갈수록 점점 관심이 떨어지기 때문에 북한주민 생활과 특성 이해도 약하다"라고 말했다.

박봉선 새터민들의쉼터 대표./사진=1코노미뉴스

박봉선 새터민들의쉼터 대표는 민간 지원의 한계와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를 지적했다.

박 대표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산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우리 자체 회원들끼리 조금씩 보태면서 스스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며 "정부 정책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탈북민들을 위한 사회통합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예산 공모전이 올라오는데, 이와관련 심사하시는 위원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심사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냥 사막에 혼자서 살아야 한다고 보면 된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혼자 알아서 살아가야 된다. 만약 탈북민 지원 단체가 있고, 단체에서 어렵게 생활하는 탈북민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공유해주지 않으면, 정말 외롭고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1코노미뉴스 = 안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