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탈북을 시도하는 탈북자들은 정작 한국에서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 2015년 탈북한 이후로 홀로 생활하고 있는 70대 김윤희(가명) 씨./사진=1코노미뉴스, 미리캔버스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탈북을 시도하는 탈북자들은 정작 한국에서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사진) 2015년 탈북한 이후로 홀로 생활하고 있는 70대 김윤희(가명) 씨./사진=1코노미뉴스, 미리캔버스
연간 수백 명의 탈북민이 한국에 도착하지만, 초기 정착 지원이 끝나면 일자리·주거·건강 관리 등은 홀로 감당해야 한다. 특히 가족이 없는 1인 가구 탈북민은 정보 부족과 사회적 고립, 복지 제도의 복잡함 때문에 가장 먼저 지원망 밖으로 밀려난다. 제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지원은 있어도 닿지 않는다'는 절규가 반복되고, 많은 탈북민이 사회적 단절로 내몰린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가 외면한 구조적 방치의 결과다. 이에 [1코노미뉴스]는 탈북민 복지정책의 빈틈과 현장의 실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북한을 떠나 한국에 홀로 정착한 탈북민들은 '자유'를 얻었지만, 정작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또 다른 고립이다. 탈북 과정에서 겪은 극심한 트라우마, 낯선 환경, 차별이 겹치며 심리적 어려움이 장기화하고 있다. 

그러나 탈북민 정착 지원은 경제적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심리·정서 영역의 관리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전문가들은 탈북민들의 초기 정착지원에서 더 나아가 장기적·지역 기반의 정신건강 관리와 사회적 지지망 확충이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한국은행의 '북한이탈주민의 건강과 경제적 적응에 대한 연구' 보고서는 탈북민의 정신건강 문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탈북민의 경우 모든 성별, 연령대에서 대조군에 비해 우울증, 불안장애, 적응장애 등 정신건강 문제로 인한 의료이용률이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났다. 또한 간염, 결핵 등 감염성 질환에도 취약했다.

특히 50~60대 북한이탈주민 여성 중에서는 우울증으로 인한 의료이용률이 20% 이상, 불안장애로 인한 의료이용률이 10% 이상으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현행 탈북민 정책은 하나원 등 초기 1~2년 지원에 편중돼 있다. 보호기간이 끝나면 장기적 주거·생계·의료·심리지원이 급격히 축소된다. 사회적 고립은 그 이후 시작된다.

정부는 '지원체계를 마련했다'지만, 정책은 문서 속에만 존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4일 서울 강동구에서 만난 70대 김윤희(가명) 씨. 그는 탈북 과정에서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그 이후로도 정서적 건강이 악화되었지만, 이를 위한 지원은 듣지 못했다고 호소했다,/사진=1코노미뉴스
24일 서울 강동구에서 만난 70대 김윤희(가명) 씨. 그는 탈북 과정에서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했다. 그 이후로도 정서적 건강이 악화되었지만, 이를 위한 지원은 듣지 못했다고 호소했다,/사진=1코노미뉴스

[1코노미뉴스]가 서울 강동구에서 만난 70대 김윤희(가명) 씨는 탈북 과정에서 깊은 트라우마를 안고 남한에 왔다. 2015년 탈북해 홀로 생활하고 있는 그는 북한에 가족을 두고 혼자 왔다는 '죄책감'과 '고난의 행군('1995년부터 2000년까지 5년간 지속된 대기근으로 최소 최대 350만명 가량이 아사한 사건) 시절 경험한 충격을 안고 있다.

김 씨는 "북에 두고온 자녀들 생각이 제일 많이 난다. 정착 초기에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침구류가 다 젖을 정도로 매일을 울다시피 했다"며 "고난의 행군 때는 시신 처리하는 작업을 했었는데, 그때의 충격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그 충격으로 가끔은 자다가 누군가에게 쫓기는 악몽을 꼬기도 하고, 환각을 보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한국 사회에서의 차디찬 냉대였다. 하나원에서 나온 후 생활비 마련을 위해 벼룩시장으로 구직에 나섰지만, 탈북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를 외면했다. 

김 씨는 "하나원에서도 탈북자라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라고 했는데, 정작 탈북자라는 것을 밝히고 나서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얼굴이 변했다. 어떤 때는 대놓고 조국을 배반하고 도망친 탈북자라고 말했다"면서 "그때의 경험이 지금까지 트라우마로 남았다. 차라리 조선족이라고 말하는 게 낫다. 그 뒤로 낯선 사람에게 탈북민이라고 말을 못하고 조선족이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정신적 압박감 끝에 김 씨는 정신과를 방문해 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기초생활수급자인 탓에 의료비 부담을 느껴 치료를 중단했다. 김 씨는 탈북자 대상 정신건강 지원 정책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40대 여성 탈북자 박선희(가명) 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2003년부터 총 3번의 탈북을 시도했지만, 모두 중국 공안에 붙잡혀 강제북송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인신매매, 구타를 경험하면서 몸이 성치 않을 정도다.

기적적으로 탈북에 성공한 후 2018년 12월 한국에 정착을 시작한 박 씨였지만, 그 역시도 한국 사회의 냉정함에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미리캔버스

그는 "탈북에 실패하면서 당시에 느꼈던 불안감이 말을 못한다. 어렵게 한국에와서도 정신건강이 좋지 못해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서도 "몸이 성치 못해 일을 못하니,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 중이다. 그 돈으로 월세도 내야하고, 병원도 가야하는데, 재정적인 문제도 겹치니까 너무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박 씨는 기초생활수급비로 월 80만원을 받는다. 그 가운데 월세 50만원, 기본적인 생활비, 의료비까지 전부 감당하려면 그에게는 벅찰 수 밖에 없다. 박 씨도 정부의 정신건강지원 정책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힘들게 홀로 생활하는 탈북민 1인 가구에게 조금 더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인천시 부평에서 홀로 거주하는 이신우(50) 씨는 1999년에 탈북, 중국에서 약 21년간 생활한 후 2020년 10월부터 한국에 정착했다. 오랜 시간 중국에서 생활했음에도 중국에서 호적을 받지 못했다. "말 그대로 제대로 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다"고 이 씨는 말했다.

자유를 찾아 한국으로 오게 됐다는 이 씨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또한 한국 생활에서 차별도 경험했다. 그는 "내가 탈북자인 게 내 잘못도 아니지 않느냐"면서 "중국에서 오래 살았다 보니 모두 조선족인줄 안다. 오히려 스스로가 그냥 탈북자라고 당당하게 말하려고 한다. 우울증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사람들과 만나면서 스스로 극복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탈북민 1인 가구 이신우(50) 씨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지만, 봉사활동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고 말한다./사진=1코노미뉴스
탈북민 1인 가구 이신우(50) 씨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지만, 봉사활동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고 말한다./사진=1코노미뉴스

현재 정부는 북한이탈주민의 마음건강 및 심리지원 프로그램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남북하나재단 및 하나센터 전문상담사를 통해 심리치료비 지원(1인당 최대 150만원, 69명 지원), 하나센터별 힐링프로그램 지원(25개 센터), 하나원 마음건강지원센터 전문의 연계 슈퍼비전 지원(5회)이다.

또 탈북 및 정착과정에서 생긴 마음 건강 치유, 심리적 안정 지원을 위해 2022년부터 탈북민에 특화된 '마음건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4월 23일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용인정신병원, 남북하나재단은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정신건강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3개 기관은 협약을 통해 ▲북한이탈주민 마음건강 관련 사업 지원 및 지원체계 구축 ▲마음건강 지원 대상자의 진료 및 지역 연계 ▲기타 마음건강 증진을 위한 상호협력 체계를 구축해 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업무협약 당시 이유상 용인정신병원 원장은 "북한이탈주민은 문화적 차이와 사회적 낙인에 대한 우려로 인해 정신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번 협약을 계기로 하나원 입소 단계부터 지역사회 정착 이후까지 경기 동남부권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정신건강 회복을 위한 맞춤형 의료서비스와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지속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들 프로그램의 경우 참여자 규모가 제한적이고, 정보 제공 및 접근성 부족으로 현장 체감 효과가 미미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탈북민들 상당수는 해당 정책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탈북민 1인 가구는 심리적 위기가 일상으로 굳어지는 복합 취약 구조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탈북민 1인 가구의 정서지원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원곤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탈북민은 북한에 가족과 친지를 두고 온 경우가 많아 남한에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수가 제한적인 경우가 많다. 또 북한 체제는 한국보다 커뮤니티 지향적이고 그에 비해 한국은 개인 중심으로 돌아가다보니 적응이 쉽지 않다"면서 "북한과 달리 한국은 발달된 시장경제 체제라는 점도 적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요소다. 가까운 동사무소 등 지자체와 민간단체, 종교계에서 탈북민을 지원하고 있지만 여전히 지역사회로의 연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또 "탈북민들은 심리상담을 받는 걸 정신적으로 약하다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갖기 때문에 쉬쉬하거나 상담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사회도 지금은 널리 퍼졌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심리상담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이들에게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고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재훈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북한인권 담당자는 탈북자들이 경험하는 정서적 문제에 대해 "최근 정착한 탈북민들 다수가 한국 정착시 어려움을 말할 때 주로 꼽았던 점은 행정 절차나 실생활에서 마주하는 어려움보다는 외로움에서 오는 정서적인 고통을 토오하는 분들이 많았다"면서 "고향을 떠나 갖은 어려움을 겪은 후 낯선 곳에 정착한 분들의 입장에서는 오랜 시간 같이 지내온 가족, 지인 등과 철저히 단절된 환경에서 오는 근본적인 그리움과 외로움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복지 정책의 한계점에 대해 "오랜 기간 논의되어 온 사안이다. 현재 탈북민 관련 업무의 경우 행안부가 아닌 통일부가 전담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각종 행정, 복지 서비스에서 일반 국민과 달리 절차적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탈북민도 한국 사회의 일원이자, 국민인만큼 통합의 차원에서, 행정적인 효율성 차원에서 탈북민 관련 업무를 행안부로 이관해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수혜 대상자인 탈북민들의 의견을 수렵할 필요가 있고, 관련 업무가 행안부로 이관 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문제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검토가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도 말했다.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은 약 3만4000명 가량이다. 이들 중 홀로 생활하는 1인 가구 비중도 30%에 달한다. 이들에게 '혼삶'은 단순한 정서적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탈북 과정에서 경험한 트라우마를 넘어 한국에서 경험하는 차별, 경제적 빈곤, 정책 사각지대가 더해지면서 이들의 심리적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이들이 안정적으로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초기 정착 지원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심리치료, 사례관리 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1코노미뉴스 = 안지호, 조가영, 김현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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