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주거 단위가 1인으로서 ‘혼자 사는 삶’ 일명 ‘혼삶’을 주제로 하는 영화를 주변에서 찾아보기가 의외로 쉽지 않다. 2019년 10월 서울시에서 주최했던 ‘1인가구 영화제’가 있지만 이제 시작일 뿐 아니라 대중이 잘 알지 못한다. 

싱글을 검색어로 찾을 수 있는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싱글즈(2003), 하우투비싱글(How to be single)(2016)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영화는 파트너를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싱글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파트너 관계가 영화 전개의 기준이 된다. 누구는 파트너 관계에서 자유로운 싱글이라 즐겁고, 다른 누구는 원하는 파트너 관계를 가질 수가 없어서 괴롭다. 파트너 관계의 유무에 따른 고민, 방황, 열광, 행복 등이 영화의 주 흐름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싱글 영화에서 싱글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싱글 영화의 역설이다. 파트너 관계에서 자유로운 싱글 영화를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찾을 수 없을까? 

리틀 포레스트(2018)에서 답을 찾았다. 아빠, 엄마, 혜원이 함께 살던 집에서 아빠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혜원의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떠난다. 혜원의 혼삶이 시작된다. 어떤 사람에게 혼삶은 시작이고 또 다른 누구에게는 끝이기도 하다. 그 시작과 끝 사이에 또 혼삶이 사라지기도 하고 다가오기도 한다. 과정으로서 결코 단순하지 않은 혼삶의 모습이 있다. 이렇게 볼 때 영화 속 혼삶은 인생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런데 혼자 사는 혜원의 이야기지만, 혼삶 그 자체가 영화의 주제이거나 주배경은 아니다. 영화는 겨울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라는 계절 변화와 함께 끝을 맺는다. 이야기 전개 자체가 계절 변화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삶의 의미 혹은 어떤 의미를 찾으려는 치열한 노력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자연의 변화 속에서 살다보니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나만의 작은 숲’을 찾게 된다. 

서울에서 시작한 혜원의 혼삶은 몸만 혼자 살았을 뿐 나만의 삶이 아니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고 공무원 시험에 붙어야 사람 구실하면서 살 수 있다는 사회의 으르렁거림이 늘 혜원과 함께 한다. 시험경쟁에서 성공하지 못한 채 편의점 알바를 하는 혜원에게 나만의 삶, 내가 원하는 삶을 사회는 허락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인스턴트 식품과 진상 손님이 동거하는 삶이다. 

서울에서 도망쳐 시골 살던 집에서 혼자가 되었을 때 혜원은 비로소 나만의 삶을 시작한다. 나를 지켜주던 CC TV와 도어락이 없는 완벽한 혼삶이 되었지만 하나도 불안하지 않다. 겉모습은 혼삶이지만 친구가 될 수 없는 경쟁자와 진상 손님에 둘러싸여 살던 시절은 지나간다. 그리고 친구와 친척, 이웃이 내 혼삶을 채워주는 동거인이 된다. 서울의 동거인들(사회구조)은 혜원을 외롭게 만듦으로써 혜원(개인)을 길들였다. 그래서 나만의 삶을 살지 못하는 수많은 혜원들이 더 외로울까봐(사회로부터 배제당할까봐) 무서워서 불평불만 없이 조용히 살아간다. 그런데 시골집에서 혜원은 외롭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동시에 자신을 길들였던 서울의 삶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혜원의 시골 마을 친구 재하가 이런 말을 한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돼?” 나만의 혼삶을 먼저 시작한 재하의 이 말이 혜원을 더 느리고 여유있게 만들어간다. “서울에 가면 내가 버스 정류장 코앞에 있는 집을 얻을거야.”하고 고등학생 시절 엄마에게 소리치고 바쁘게 뛰어나가던 혜원이 계절의 느린 변화와 모습을 함께 하기 시작한 것이다.   

혜원의 혼삶 주변에 친구만 있지는 않다. 이미 고등학교 졸업 당시 헤어진 엄마가 있다. 나만의 혼삶은 나 혼자만으로써 가능하지 않음을 혜원과 엄마의 끊임없는 대화가 보여준다. 회상 속에서 엄마와 하는 대화는 혜원의 혼삶을 지탱하면서 풍요롭게 해주는 기반이다. 혜원과 엄마가 함께 살았다면 이런 대화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우리 두 사람 잘 돌아오기 위한 긴 여행의 출발선에 서 있다고 생각하자.”면서 혜원을 혼자 두고 집을 떠난 엄마의 선택을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다. 과거 함께 살았을 때 했던 지나간 대화들이 혜원의 현재 혼삶에서 재현되면서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리고 혜원은 나만의 작은 숲(리틀 포레스트)을 보게 된다.

리틀 포레스트는 1인가구의 삶, 혼삶에서 출발하면서도 파트너 관계를 기준으로 펼쳐지는 싱글영화가 아니다. 쿨한 소비주체로서 나홀로족 영화도 아니다. 우울한 독거 느낌을 주는 영화는 더군다나 아니다. 그냥 우연히 혼삶이 단위가 되어 인생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굳이 혼삶의 의미 찾기를 의도하지 않았으면서도 결국 나만의 작은 숲을 찾고 싶은 욕망을 넌즈시 보여주는 영화이다. 혼삶의 겉모습에 나만의 작은 숲을 채워 넣으라고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속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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