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구 1인 가구 A씨 ◇흔들리는 '사십춘기'나이 마흔, 13년차 회사원, 동대문구 1인 가구, 나를 설명하는 말들이다. 그 어디에도 진짜 '나'는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언제 어디로 마흔이라는 나이를 먹은 건지 알 수 없고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회사로 10년 넘게 매일 똑같은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 생활은 날이 갈수록 지루하고 지쳐만 갔고, 1인분의 삶은 홀가분하면서도 때론 무거웠다. 어지러운 몸과 마음을 나이와 월급이라는 현실로 억눌러가며 12년을 버틴 회사를 올해 초 결국 그만두고 나니 생전 처음 가보는 낯선 길,
저는 참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입에 담기도 힘든,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만 나는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따뜻한 보호자의 손길이 필요했지만 제게는 저를 보호하고 안아줄 어떤 어른도 없었습니다. 그런 결핍 때문에 어른이 된 지금도 세상에는 존재하지만, 나에게는 없는 것과 다름없는 부모님보다 마음을 의지할 수 있을 누군가를 찾고 그리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때론 그 보호자의 역할을 남자친구가 해주길 바랐고, 친구나 동생에게 바란 적도 있었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항상 상대방이 부담스럽진 않을까? 나를 짐처럼 느끼면 어떡하지
무료로 건강을 파는 곳이 있다면 사겠습니까? 건강은 성별, 나이불문 모두의 바람이자 염원이며 소원일 것이다. 건강은 값으로 매길 수 없다는 것에 모든 사람이 동의하고 있다. 나는 최근에 마음의 병으로 인해 신체적인 건강 또한 급격히 나빠지는 경험을 했다. 건강을 위해 적절한 식습관과 운동을 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돌보고 선행되어야 할 것이 마음의 안녕이다. 전국 곳곳, 우리 마을에 이러한 심신의 건강을 공짜로 파는 곳이 있다.2021년 하반기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30여년 평생을 살면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
2022년 5월부터 10월까지 1인 가구 지원 사업 중 하나인 '멘토링'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 할 수 있었다. 평범한 일상의 익숙함을 잊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소소한 일상이 소중히 생각되고 기대되는 큰 활력소가 됐다. 내 기억에 강렬히 각인된 장면 중 특히 첫 번째 모임을 하던 날이 기억난다. 수유역에 거주하는 멘티를 배려해 우리는 삼각지역에 있는 옛날식 생선구이 집에서 첫 모임을 가졌다. 첫 대면에 어색해하던 우리는 연탄불에 생선을 노릇노릇 맛있게 구워주는 할머니에게 집중했다. 그리
동대문구 1인 가구 A씨= 나는 30대 중반 1인 가구다. 일반적으로 혼자 사는 삼십대 중반의 삶은 어느 정도 단단하고 노련할 거로 생각하지만 나의 삶은 그렇지 않다. 상담 멘토링을 시작하기 이전에 나는 한없이 막연하고 무력했다. 스토킹이라는 범죄를 당하면서 삶에서 많은 부분을 자포자기 했었고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도 없었다. 아침이 되어 하루를 시작할 때도 밤이 되어 다음날을 기다릴 때도 그저 시간을 삼키고 있다는 느낌만이 있을 뿐이었다. 사람은 이론으로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지키며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양천구 1인 가구 A 씨 = 부푼 꿈을 안고 호기롭게 1인 가구로 독립한 서울 사는 직장인이다. 내성적인 성격에 평소 큰 취미 생활이랄 것도 없어서 직장, 집, 직장, 집을 반복하고 있었다. 독립을 해서 1인 가구가 되면 '인테리어는 이렇게 하고 싶다, 강렬한 색감의 편안한 내 방을 만들어야지' 하던 것들은 다 어디 가고 오히려 낯선 동네에 고립되어버린 상태가 됐다.어느새 퇴근 후에는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번갈아 들어가며 누워 집안일을 미루는 단절된 자신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가 무기력한 줄도 모른 채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도봉구 1인 가구 A씨= 2022년 초 서울로 발령을 받아 이사를 오며, 서울시에서 1인 가구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다수의 서울 자치구에서 1인 가구를 위한 건강, 안전, 여가에 유용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거주하는 자치구는 아니었지만, 서울 시민이면 신청할 수 있어 인근 자치구의 프로그램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 중에서도 종로구에서는 1인 가구를 위한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1인 가구 정서지원 프로그램 '#마음스트레칭 프로그램과 1인 가구 여가지원' '취미샘플러: 취미미술
강동구 1인 가구 A씨= 2021년 12월 어머니께서 소천 하셨다.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이라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를 몇 달 동안 뵙지도 못하고, 간호사를 통해 안부만 간간이 듣던 어느 날,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이미 임종하신 후 였다.어린나이에 이혼을 하고 홀로 지낸 막내딸을 항상 안쓰러워하시며 곁에 두고, 물심양면 도와주시던 어머니, 그를 잃고 나서 나는 몹시 아팠다.한없이 무겁기만 한 마음과 맥이 다 풀린 몸뚱이로는 무엇도 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다니던 직장에서도 계약기간이 종료되어 실직을 하고, 오랫동안 계속되는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에 12년째 거주하고 있는 주민이다. 자녀가 5살이 되던 해부터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게 됐다. 연세가 많았지만 자전거를 탈 정도로 건강하시던 시아버지가 아프게 된 시기가 2020년부터다. 대장암 진단을 받았고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몫은 우리 부부의 일이 됐다. 치료를 위해 병원을 지속적으로 전전하게 되었고 요양병원으로 모실 수 밖에 없었다. 요양병원에서도 진료병원을 가게 되면 꼭 가족이 동행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날도 성남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지방으로 출장중이었다. 양쪽 배에 관을 삽입하고 있
서대문구 1인 가구 A씨= 회전목마 앞에 선 젊은 부부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부부 사이에 서 있는 꼬마는 솜사탕을 손에 들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유치원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마주친 한 장의 그림은 한동안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내게도 크레파스를 꾹꾹 눌러가며 도화지 가득히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 학기 초가 되면 선생님은 어김없이 가족사진을 가져오거나, 그림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내주시곤 했다. 나는 투덜거리면서도 연필로 밑그림을 그렸다. 아빠, 엄마, 동생, 그리고 내 모습을 공들여서 크레파스로 완성하곤 했다.
은평구 청년 1인 가구 A씨= 월급은 오를 생각을 하지 않는데, 물가는 너무도 빠르게 올랐다. 한정된 생활비를 손에 꽉 쥐고, 동네 슈퍼든 대형 마트든 어디를 가든 내 손에 들려 나의 방으로 초청되는 것들은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다. 당장 이것들이 없으면 내가 배고픔에 허덕이게 될지 모를 것들만 사 올 수밖에 없었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배불리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충동을 이기지 못하면 월말의 내가, 월급을 받은 직후의 나를 비난할 것이 자명했다. "야, 내가 돈 이렇게 막 쓰지 말랬지! 이제 굶자!"돈
종로구 1인 가구 A씨=서울시 1인 가구 지원사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는 우연히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나타난 배너를 통해서였다. 덕분에, 그 이후로는 씽글벙글서울 홈페이지를 하루에도 수차례 방문하면서 어떠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지 보게 되는 것이 취미가 됐다. 예전에는 서울시청 홈페이지 하단에 나타나는 무연고 사망자에 관한 내용을 보게 될 때면 나의 미래가 저렇게 되면 참 쓸쓸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러 가지 고뇌에 빠지고는 했었다. 그러나 이 씽글벙글서울 홈페이지를 알게 된 후, 삶에도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다. 홈페이지
종로구 1인 가구 A씨 = 모든 걸 놓고 싶어서 놓아버렸다. 돌이켜 생각했을 때 지난해 상반기 나는 흔히들 말하는 '번아웃(burn-out)' 상태였다. 출근하고 일하고 야근하고 퇴근하고, 잠시 잤다가 다시 출근하는 일상의 무한 반복. 나름 일 자체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지만 그 의미마저도 쏟아지는 업무들 앞에서는 점점 희미해졌다. 그러던 중 함께 일하던 동료 한 명이 "이렇게 지낼 순 없다. 무엇을 하는 모임을 만들어서, 그때는 정시퇴근하고 모이자"를 외쳤고, 그렇게 직장동료들이 모여 '정시퇴근'팀을 만들었다. 우리는 패기
양천구 1인 가구 A씨= 1인 가구로 산 지 약 3년이 됐다. 원해서 시작한 독립생활이 아니기에 1인 가구로 사는 동안 불만이 가득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 써야 하는 일투성이에 필요한 비용은 많았다. 본가에서 살 때보다 살펴야 하는 것들이 족히 10배는 되는 느낌이었다. 가족과 친구들과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니 심적 거리도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는 1인 가구로서의 즐거움보다 외로움의 감정이 점점 커졌다. 이 쓸쓸함을 해소할 방법으로 OTT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허한 마음은 달랠 수 없었고 시간이
서대문구 1인 가구 A씨 =서른 살, 허리가 고장 났다. 처음은 으레 그렇듯 급한 일이 밀려서 책상에 앉아 몇 날 며칠 컴퓨터를 붙잡고 있을 때 잠깐 허리가 찌뿌둥하고 마는 정도로 시작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어떻게 앉아 있어도 서 있어도 참을 수 없는 허리 통증이 시작됐다.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 병원에 갔고 그전까진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허리 디스크 초기 진단을 받았다. 이 정도는 사무직에게 흔한 증상이라는 말에 다들 이 정도 고통은 달고 사는 건가 해서 다시 한번 놀랐다. 통증 감소를 위한 주사를 허리에 여러 군데 맞고
종로구 1인 가구 A씨 = 지난 1년 동안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나누었던 시간들을 떠올리는 지금 나의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수다를 떨지는 않았지만 칼림바 악기의 음계로 마음을 전하며 소통했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재래시장에서 여름 과일들을 사며 깔깔거렸던 시간들은 좋은 과일향기처럼 내 마음에 남아있다. 어느 날이었다. 건물 현관에 동대문구 소식지가 있었고 나는 반갑게 소식지를 집어 들고 방에 들어가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그 소식지를 통해 1인 가구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곧바로 신청을
생애 첫 1인가구 생활, 화나도록 외로웠다마포구 1인 가구 A씨= 29살. 처음 독립을 시작했을 땐 나름 낭만이 있었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면 일 말고도, 개인적 성취를 느낄 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직장 근처로 집을 얻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만날 사람이 없으니 퇴근하자마자 다시 출근하는 곳은 아침에 어질러 놓고 간 침대 위였다. 매일 씻지도 않은 채로 침대에 누워 인터넷 커뮤니티, SNS를 뒤지다가 지쳐 잠들었다. 방구석에서 마주하는 세상은 참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세상이었다.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욕하는
광진구 1인 가구 A씨 =2021년, 동료의 소개로 서대문구건강가정지원센터의 1인 가구 사회적관계망지원사업(이하 1인 가구 지원사업)을 처음 알게 됐다. 그 당시 나와 팀원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이라는 공동의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에 내 집 마련의 꿈은 점점 멀어져만 갔고 경제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을 때이다. 때마침 동료로부터 경제공부를 하는 1인 가구 지원사업의 참여를 권유받고 좋은 기회다 싶어 참여하게 됐다. 그렇게 참여한 사업이 2021년부터 올해로 벌써 2년 차가 됐다. 1인 가구 지원사업에 2년간
성북구 1인 가구 A씨= 2022년 2월, 28살의 첫 자취가 시작됐다. 이불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롱패딩을 덮고 잠을 청하며 혼자 청하는 잠이 얼마나 외로운지, 그리고 겨울 밤이 얼마나 추운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1인 가구 지원 사업에 함께 참여할 사람을 찾는다는 독서 토론 동아리원의 연락에 내향인답지 않게 덥석 참여 의지를 밝혔던 것 같다.문화 감상 및 토론 모임이다 보니 영화를 감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각종 OTT를 구독해놓고 보지는 않는 내가 매달 한 번은 영화관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1인 가구로서의 외로움이 해소되
저와 함께 하실 분, 계신가요?독산동 1인 가구 A씨= 독립해 혼자 살게 되면서 꼭 하고 싶었던 일은 동네 친구를 만드는 것이었다. 나와 비슷한 1인 가구가 모여 사는 사회적 주택에 살면서도 공통의 취미도 없고 생활 방식도 다르다 보니 무엇인가를 같이 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그렇게 독립 후 몇 달이 지나 버린 어느 날, 자치구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상자텃밭 분양'이라는 공지를 확인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집 강아지만 빼고 내 손에 닿는 건 다 없애 버리는 내가 식물이라니. 스스로 조금 우스웠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 본 김에 입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