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내 어깨 위 고양이 봅(A street cat named Bob)」 영화를 보셨는지? 「내 어깨 위 고양이 ‘밥’」과 같은 영화다. 양키 발음으로는 ‘밥’일지 모르겠지만, 배경이 런던이고 영화 속 사람들은 잉글리쉬 발음으로 ‘봅’이라 부른다. 그래서 그냥 ‘봅’으로 해봤다. 이 영화는 실화를 근거로 한다. 마지막 장면 저자 책사인회에 등장하여 “꼭 제 이야기같네요.”라고 말하는 실제 남자 제임스 보웬의 이야기다. 실제 고양이 봅은 2020년 14살의 나이로 죽었다는 국내 언론 보도도 있었다(검색을 하실 때에는 고양이 ‘밥’으로 하셔야 한다^^).

11살 때 집을 나와 길거리 가수로 생활하는 청년 제임스 보웬(James Bowen)은 헤로인 중독자다. 재활 과정에서 헤로인과 치료제를 함께 복용하여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는 지점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위기의 순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벨(Val)은 약물ㆍ알콜중독치료지원사(Drug and Alcohol Workers)이다. 약물ㆍ알콜 중독자의 재활 과정에서 상담을 하고 재활 전략과 목표를 세우면서 약물ㆍ알콜 의존에서 성공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지원을 하는 직업이다. 벨이 보웬에게 해 준 가장 결정적인 지원은 노숙생활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주거를 마련해준 것이다. 영국은 1919년 주택법(The Housing Act 1919)을 근거로 지자체가 중심이 된 지역사회 공공주거를 확대해왔다. 보웬은 지자체 다세대 주택(a council flat)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편하게 다리 뻗고 잠잘 곳을 마련한 보웬에게 두 번째 지원이 이웃에서 온다. 고양이 봅과의 만남이다. 고양이 봅은 실제 이야기지만, 이웃집 베티(Betty)는 가상인물이다. 오빠가 마약중독으로 죽은 트라우마를 가진 베티는 보웬의 이웃주민이면서 채식주의자이고 동물보호운동가이다. 보웬이 마약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베티와의 만남에서 찾는다. 마약중독에서 벗어나 자신의 체험을 책으로 출판한 보웬은 대성공을 거둔다. 실제로 2007년부터 함께 한 고양이 봅과의 생활을 2012년 “A Street Cat Named Bob”이라는 책으로 내어서 약 40개국에서 8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친구를 잃은 모든 사람들에게’ 바치는 이 책의 부제목은 “How one man and his cat found hope on the street(한 남자와 고양이가 어떻게 길에서 희망을 발견했는가).”이다.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주거공간과 ‘함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친구 하나가 마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계기를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봅」에서 본다. 그리고 청년 주거지원의 하나로서 호텔을 개조해 만든 원룸식 주거를 놓고 「호텔거지」라는 비아냥이 돌아다니는 한국사회로 눈을 돌려본다. 「임대료 싸지만 개별 취사·세탁 못해… 맥빠진 ‘호텔임대주택’」이라는 기사 제목이 눈에 띈다. 나만의 부엌과 세탁기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인생의 한 과정에서, 특히 1인 청년이 다른 사람들과 부엌과 세탁기를 함께 사용하면 ‘거지’라고 불러도 좋은가? 

이렇게 사는 청년을 ‘호텔거지’로 보는 사람들은 아마 ‘호텔거지 청년’과 말을 섞는 삶을 상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보웬과 같은 이야기가 한국사회에서 불가능한 이유이다. 마약까지 하고 노숙생활 경험도 있는 보웬은 ‘호텔거지’보다도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웃으로서 다가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청년공공임대주택을 만들려고 하면 지역주민들이 “주거 환경 나빠지고 집값 떨어진다. 우범지역 된다. 아이들 교육에 나쁘다”는 식으로 결사반대 항전을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어떤 청년이든지 이런 식으로 밀어내는 사회가 지속가능할 수 없다. 현재 어느 국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초저출산ㆍ초저출생 현상은 주거조건으로 신분을 가르는 새로운 계급사회의 출현에서도 중요한 원인 중 하나를 찾을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보웬의 경우처럼 타인의 도움을 받아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KB금융경제연구소에서 발행하는 「한국 1인 가구 보고서」가 있다. 1인 가구 대상 설문조사에서 셰어하우스 이용 의향을 묻는 문항에서 ‘타인과 공유해도 괜찮은 공간’이라는 항목이 있다. 연령대 별로 다르게 나오긴 하지만 대체로 ‘세탁실, 거실ㆍ라운지, 발코니ㆍ베란다, 서재ㆍ독서실’ 정도는 10명 중 3명이 공유해도 괜찮다는 응답을 하였다. ‘조리공간과 다이닝룸 식탁’은 10명 중 2명이 같은 응답을 했다. 목욕시설과 화장실은 각각 응답자의 4.3%와 3.6%만 괜찮다는 답을 했다. 

서유럽 복지국가의 경우에 다양한 공공임대주택(사회주택)이 있다. 위 설문조사 문항에 포함된 시설을 모두 갖춘 주거도 많다. 자녀돌봄가족 대상 공공임대의 경우에 당연히 그렇게 공급한다. 그러나 아주 많은 주거형태에서 세탁실부터 거실, 부엌, 심지어 화장실과 목욕탕도 공유한다. 공유항목이 많은 주거시설일수록 당연히 월세가 싸다 그리고 저소득층이거나 1인 청년 거주 비율이 높다. 대학교 기숙사 중에는 아예 잠자는 방, 그리고 그 방안에 간단한 세면대 하나 있고 나머지는 모두 공유하는 형태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러나 그런 곳에 산다고 ‘거지’ 소리를 듣진 않는다. 설혹 누가 그런 소릴 한다 하더라도 정치인이나 언론인이 그런 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논쟁의 도구로 삼지 않는다. 인생 주거의 한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청년주거지원이 한 개인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여기에 말동무까지 생기면 그 어떤 문제에서도 벗어나 내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의지를 갖게 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청년기에 가질 수 있는 힘이다. 이제 막 인생 주거의 한 과정을 시작하는 청년에게 말동무가 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영화 속 고양이에게서 배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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