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칼럼]「승리호」에서 찾아 본 우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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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칼럼]「승리호」에서 찾아 본 우리의 미래
  • 정재훈
  • 승인 2021.02.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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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최근 우주활극 영화 「승리호」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넥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영화이어서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영화의 흥행 요소를 영화 전문가가 아닌 필자 입장에서 언급할 수는 없다. 다만 한국 사람 시각에서 「승리호」가 사랑받는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았다.

먼저 「승리호」는 우리들이 영어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미래를 보여준다. 「승리호」 시대 사람들은 각자 자기 나라말을 맛갈나게 한다. 지구위성 궤도에 만든 인류의 새로운 낙원 UTS(Utopia Above the Sky)의 회장이자 영국 사람인 설리반(리처드 아미티지. Richard Armitage) 앞에서 조금도 꿀리지 않고 「승리호」 선원들은 한국말로 대응한다. 

내 아이가 나중에 혹시 2등시민이 될까봐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쨋거나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경제적 무리를 하면서도 아이가 서너살이 되면 영어유치원에 보낸다. 그런데 영어유치원은 유치원이 아니다. 한달에 적어도 백만 원 이상의 돈을 받는 고급유치원이 아니다. 단지 ‘학원의 설립ㆍ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일명, 학원법)’ 적용을 받는 유아 대상 고액 영어학원이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공통으로 운영하는 ‘누리과정’이라는 (인성)교육 개념이 없다. 아이들에게 영어만 잘 가르치면 되는 학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승리호」가 승리하는 2092년은 모든 언어가 동시통역되는 세상이다. 한국 사람들은 더 이상 영어 앞에서 주눅 들지 않는다. 한국 사람에게 ‘절대언어’로서 영어의 존재가 사라졌다! 중국어, 불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 뿐 아니라 덴마크어, 심지어 따갈로그어와 나이지리아 피진어를 말해도 모두가 알아듣는다. 피에르가 프랑스어로 하는 작업성 멘트의 감정을 장선장(김태리)은 한국어 그대로 알아듣는다. 부모들이 아직 한글과 한국어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를 고액 유아영어학원에 보내는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승리호」가 한국사회에 주는 첫 번째 희망이다.

「승리호」가 주는 두 번째 희망은 ‘기후악당국가’의 오명을 벗는 것이다.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소극적인 국가를 어느 순간부터 국제사회에서 기후악당(climate villain)이라고 이름 붙여주고 있다. 한국은 대표적 기후악당 국가 중 하나이다. 온실가스 배출량 등 거창한 이야기는 그만 두고라도 ‘엔진공회전’이 국민스포츠인 국가가 가질 수 있는 이름이다. 누가 내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 눈살을 찌푸리지만, 일단 자동차 시동을 켜놓고 온가족이 차 주변에 둘러서서 어린아이 유모차를 접어 넣고 작별인사도 길고 찐하게 하는 환경 감수성의 결과이기도 하다. 재활용 쓰레기 분리 배출은 열심히 하지만, 그 엄청난 양의 과대포장은 깨끗함과 편리함이라는 명분으로 눈감고 넘어가는 한국사회 분위기를 보면 기후악당 명칭을 당분간 털어버리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런데 ‘숲이 사라지고 사막이 늘어가는 지구, 태양빛은 가려지고 토양은 산성화되며 식물들이 자취를 감춘 2092년의 병든 지구’를 결국 푸르른 지구로 돌려놓는 계기를 ‘우리 한국 사람들’이 만든다.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는 속물인 줄 알았던 조종사 태호(송중기), 갱단 두목이었던 타이거 박(진선규), 천방지축 작살잡이 로봇 업동이(유해진)가 장선장과 더불어 꽃님이(박예린)의 도움으로 지구를 살리는 방법을 찾아낸다. 서구인 중심 UTS 시민권자들은 살 수 없는 지구를 버렸다. 그러나 우리 「승리호」 선원들은 꽃님이와 함께 지구를 살렸다.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기후악당 우리들에게 참으로 위안이 되는 대목이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먼저 자동차 시동부터 켜놓고 검색도 하고 사람도 기다려도 상관없다. 잠깐 세워놓고 편의점에 물건 사러 들어가는 거라서 시동을 끌 필요도 없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아무리 많이 나와도 분리 배출만 잘 하면 된다. 국가에서 ‘그린뉴딜’ 정책이니 하면서 뭔가 하고 있는 듯하니, 미세먼지 많은 날은 중국 쪽을 향해 손가락질만 하면 충분하다. 지구가 더 이상 살기 어려운 땅이 된다 하더라도 우리 한국의 「승리호」 선원들이 푸른 지구를 되찾아 줄 것이다. 이런 희망이 있으니, 하나 뿐인 지구를 마치 세 개 정도 있는 것처럼 마음껏 소비하고 즐기면서 살아도 된다. 

마지막으로, 「승리호」는 ‘사회적 가족’의 모습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한국사회에는 ‘사회적 가족’ 개념이 등장하였다. 2016년 제정ㆍ실시된 「서울특별시 사회적 가족도시 구현을 위한 1인 가구 지원 기본조례(일명 ‘1인 가구 지원조례’)」가 있다. 동 조례 3조 3은 “‘사회적 가족’이란 혈연이나 혼인관계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취사, 취침 등 생계를 함께 유지하는 형태의 공동체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승리호」 선원들의 모습이 사회적 가족이다. 장선장, 태호, 타이거 박, 업동이는 서로가 서로에게 생활동반자이다. 혼인의 인연도 없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다. 게다가 아빠가 죽고 이들과 살게 되는 꽃님이(박예린)의 합류는 어른(들)이 어린아이를 키우는 의미에서 사회적 가족의 모습을 완성하고 있다. 영화가 끝나는 부분에서 꽃님이가 “우리는 새 가족이 되었어요.”라고 말한다. 

지구가 망가져서 삶 자체가 혼돈이 되어 버린 결과로서 사회적 가족의 등장은 왠지 씁쓸하다. 가족의 기준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린 지구 환경이 사람들을 흩어지게 만든 결과가 혼자 사는 사람들의 증가와 사회적 가족의 형성으로 이어지는 2092년이 오지는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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