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대출 한도 축소 '만지작'
보증금 마련 어려운 청년 1인 가구, 주거 불안 심화되나

사진=미리캔버스,뉴스1/디자인=안지호 기자

정부가 가계부채와 전쟁을 선포하면서 1인 가구에 불똥이 튀었다. 금융당국이 전세자금대출 카드를 만지작 거리자, 은행권에서 미리부터 전세자금대출 한도를 축소하고 나선 것이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1인 가구는 대출 한도 축소·중단 충격을 고스란히 입게 될 전망이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의 대출 한도 축소 및 중단 조치가 확대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말부터 전세 계약을 갱신하는 세입자에 대해 현재 전체 보증금의 80%까지 받을 수 있는 전세대출 한도를 보증금 상승분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을 시행한다. 뒤이어 하나은행도 이달 초부터 동일한 내용의 전세자금대출 한도 축소를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서라도 다른 은행 역시 동일한 방안을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NH농협은행은 이미 전세대출 취급을 일시 중단했고, 우리은행도 일부 전세대출 취급을 한시 중단한 바 있다. 

전세자금대출은 아니지만 유동성 해소에 도움을 줬던 마이너스통장 신규 대출 중단도 시작됐다. 1금융권 최초로 카카오뱅크가 10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신규 마이너스통장 대출 판매를 중단한 것이다. 세입자들이 치솟은 전세보증금을 감당하기 위해 전세자금대출로 부족한 자금을 마이너스통장으로 충당하기도 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 역시 여파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은 전세 보증금 목적으로 빌린 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세입자가 대다수라고 본다. 따라서 전세자금대출 옥죄기는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규제 발표 전,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선제적으로 금리를 높이거나 대출을 줄이는 은행들의 행보만 봐도 그렇다. 

문제는 이로 인해 타격을 입는 1인 가구다. 2019년 기준 국내 1인 가구의 15.8%는 전세 세입자다. 가구수만 97만가구에 달한다. 최근 전셋값이 급등한 상황에서 재계약을 해야 하는 1인 가구는 전세 자금 마련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종배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국민의힘)에 따르면 주택임대차보호법개정안 시행 1년 간(2020년 7~2021년 7월)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3.3㎡당 28.2% 올랐다. 전년 동기 상승률 9.4%의 3배 정도다. 

KB국민은행 월간 주택가격 동향 시계열 통계를 봐도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전셋값은 지난 8월 4억4156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8년 1월 수도권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4억467만원) 수준이다. 올 1월부터 8월까지 수도권 아파트 전셋값 누적 상승률만 10.26%다. 이미 지난해 연간 상승률(10.23%)을 돌파했다. 전세가 매매를 밀어 올리는 형국이 이어진 것이다.

대출로 전세 보증금을 마련한 세입자가, 추가 대출 없이 30% 가까이 치솟은 보증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청년 1인 가구라면 더욱 주거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김상훈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국민의힘)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확보한 5대 시중은행(국민·우리·신한·하나·농협) 잔액기준 전세대출 현황에 따르면 2017년 6월 52조8189억원이었던 전세 대출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48조5732억원에 달했다. 

4년 만에 2.8배(95조7543억원) 증가한 수치다. 그런데 이 중 상당수가 20~30대 청년층이었다. 전세대출을 보면 20대는 4조3891억원에서 24조3886억원으로, 30대는 24조7847억원에서 63조6348억원으로 급증했다. 

해당 기간 20·30대가 금융기관에서 받은 전세대출 규모만 약 59조원이다. 이는 전체 전세대출 증가액의 61.5%나 된다. 

청년 1인 가구가 급증하면서 청년층의 전세대출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전셋값 급등으로 전세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은 청년 1인 가구가 대출을 늘린 것 역시 한몫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금융당국이 전세대출을 옥죄기 시작하면 청년층을 비롯한 무주택 1인 가구의 주거 상황은 더욱 열악해질 것으로 분석된다. 또 1인 가구의 불만 역시 거세질 전망이다. 

한 1인 가구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벌써부터 전세대출규제를 걱정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직장인 김지원(가명)씨는 "11월에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있는데,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말했다. 보증금 인상분만큼 추가 대출을 받을 계획인데, 전세를 옥죈다는 이야기가 들리니 불안해진다"며 "사실 지금 사는 가격에 주변에 다른 전세가 없어, 만약 쫓겨나면 출퇴근 1시간 내에서는 갈 곳이 없을 거 같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직장인 박정우(가명)씨도 "직업상 지방을 전전하다가 이직을 하면서 서울에 자리를 잡게 됐다. 급한 데로 월세에 살고 있는데 비용 부담이 너무 커서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전세로 옮기려 한다"며 "계약기간이 남아서 12월에나 전세를 구할 것 같은데 신규 전세 대출을 안 해 준다는 말이 나오니 황당하다. 이러다 월세를 재계약하게 되면 매달 얼마나 손해를 봐야 하고 그건 누가 책임지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시중은행 ATM 모습.사진=1코노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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