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영화 「원데이(One Day. 2011)」는 참 아름다운 영화다. 음악이 아름답고 영화의 배경인 스콧틀랜드 에딘버러(Edinburgh)도 아름답다. 여기에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닌 엠마의 삶이 나온다. 현재 나와 공간을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을 내 인생의 파트너로 가슴 속에 품고 사는 모습도 있다. 엠마를 중심으로 다양한 삶의 모습이 펼쳐진다.

엠마(Anne Hathaway)와 덱스터(Jim Sturgess)가 갖는 세상에서의 만남은 1988년 7월 15일에 시작하여 2006년 7월 15일에 끝이 난다. 첫 만남은 대학교를 졸업하는 날에 이루어졌다. 두 사람은 구면이지만 그날 처음 정식으로(?) 인사를 한다. 덱스터는 엠마의 생일 파티에도 왔었다. 게다가 엠마의 옷에 와인까지 실수로 쏟기도 하였다. 그러나 덱스터는 그런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24살 동갑내기 ‘바람둥이’ 덱스터와 덱스터에게 말도 건네기 전에 반해버린 엠마의 만남이 시작된다. 이 날이 7월 15일이다. 영국에서 7월 15일은 성 스위딘의 날(St Swithin's Day)이다. 이날 비가 내리면 내리 40일 동안 비만 내리고, 반대로 날씨가 좋으면(fair) 40일 동안은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영국 민담이 있다. 비가 내리든 내리지 않든 그날의 만남이 하루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대목이다. 

1989년 7월 15일. 

엠마는 런던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런던을 휘어잡는 유명작가가 되라는 덱스터의 소망과는 달리 멕시코 식당을 휘어잡는 알바를 할 뿐이다. 그리고 알바를 너무 잘해서 매니저 제안까지 받는다. 작가로서 성공하고 싶은 엠마는 불안하기만 하다. 자신감도 잃어간다. 반면 마치 버스를 타듯 런던과 파리를 비행기로 오가는 덱스터의 생활은 섹시한 여자들과 돈 많은 부모 덕에 둘러싸여 즐겁기만 하다.  

1993년 7월 15일. 

덱스터는 상업방송국의 선정적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여전히 섹시한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엠마가 보기에는 ‘맛이 간’ 생활이다. 곧 암으로 세상을 떠날 덱스터의 엄마가 바라는 ‘교양 있고 예의 바르며 남에게 베풀 줄 아는’ 생활이 아니다. 이날 덱스터는 애타게 엠마를 찾았지만 엠마는 이안((Rafe Spall)과 시간을 함께 보낸다.

1995년 7월 15일. 

이안과 동거하는 가운데 엠마는 교사로서 안정적 생활을 하고 덱스터의 방송은 더욱 자극적이 되어 간다. 

1996년 7월 15일. 

각기 다른 남자, 여자와 사는 엠마와 덱스터가 만난다. 그리고 서로 자기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엠마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이안)랑 한집에 사는 힘든 삶을 덱스터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엠마는 덱스터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랑했으니까. 그러나 엠마를 테이블에서 혼자 있게 하고 덱스터는 화장실에 가서 마약을 한다. 다른 여자에게 추근대기도 한다. 게다가 작가의 꿈을 아직 이루지 못하고 교사로서 생계를 이어가는 엠마를 비웃는 멘트를 날린다. “능력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능력이 없으면 하는 것이 선생질이다.” 덱스터는 엠마의 이야기를 들어줄 인물이 되지 못했다. 그런 덱스터가 엠마에게는 너무 힘든 존재였다.

1997년 7월 15일. 

덱스터의 방송은 점점 초라해져 간다. 결국 방송에서 퇴출당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 줄 사람을 찾아보라는 충고까지 듣는다. 그 사람이 새롭게 만난 실비(Romola Garai)는 아니었다. 엠마는 이안을 집에서 완전히 쫓아낸다.

2000년 7월 15일. 

대학 동창의 결혼식에서 엠마와 덱스터는 다시 마주친다. 덱스터와도 섹스를 했던 여자친구의 결혼식이다. 덱스터는 실비와 결혼한 계획과 아빠가 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엠마에게 한다. 엠마는 축하의 말을 전하지만 진심인지 분명치 않다. 이제 연락을 끊자는 이야기를 엠마가 덱스터에게 한다. 하지만 둘의 키스 장면은 헤어지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2001년 7월 15일. 

대학시절 업신여겼던 친구 밑에 들어가 덱스터가 새롭게 일을 시작한다. 나름의 방식대로 아이를 돌보는 아빠의 삶도 경험한다. 모임을 이유로 아이를 아빠(덱스터)에게 맡기고 나간 실비는 덱스터를 고용한 그 친구와 섹스를 한다. 실비도 덱스터의 마음은 엠마에게 가 있음을 안다. 그 사이 엠마는 ‘줄리 코스터의 세상을 향한 도전(Julie Crisscoll vs. The Whole World)’이라는 책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2003년 7월 15일. 

엠마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파리에서 남자친구와 살고 있다. 덱스터는 이혼을 했고 변변한 직업 없이 자신의 표현대로 ‘망한 남자’가 되었다. 덱스터는 여전히 엠마에게 ‘들이대고’ 엠마는 자신의 프랑스 남자친구 장 피에르의 존재를 알리려고 한다. 그러나 남자친구의 존재를 알리려고 하면 할수록 엠마는 자신이 덱스터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2004년 7월 15일. 

함께 성장했다고 믿는 엠마와 덱스터는 결혼을 한다. 덱스터는 카페를 시작한다.

2005년 7월 15일. 

두 사람은 아이를 갖기 원함을 확인한다. 그리고 친구로서의 섹스가 아니라 부모가 되기 위한 섹스를 한다. 

2006년 7월 15일. 

여전히 엠마는 임신을 못하고 있다. 그래서 힘들어한다. 수영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도중 엠마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덱스터에게 짜증을 냈던 아침의 일을 미안해 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엠마는 숨을 거둔다. 

2007년 7월 15일. 

덱스터에게 너무나 힘든 7월 15일이다. 실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자스민 앞에서도 만취한 채 상처투성이 얼굴을 하고 있다. 덱스터의 엄마를 먼저 보내고 10년 동안 혼자 살고 있는 덱스터의 아빠가 한마디 한다.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남은 생을 엠마가 살아 있는 것처럼 사는 거야.” 

2009년 7월 15일. 

혼자 카페를 운영하는 덱스터 앞에 엠마의 옛 남자친구 이안이 찾아온다. 두 사람 모두에게 7월 15일 성 스위딘의 날은 잔인한 날이다. 싫은 날이다. 이안은 엠마가 덱스터를 사람으로 만들어줬고 덱스터는 엠마를 행복하게 해주었음을 상기시켜준다. 

2011년 7월 15일. 

딸과 함께 덱스터는 엠마와 첫 데이트로 산책했던 ‘아더왕의 언덕(Arthurs Seat)’을 찾는다. 에딘버러 교외 해발 250m 쯤 되는 언덕이다. 배경음악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도시 에딘버러를 품고 있는 언덕이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을 재현해주면서 영화는 끝을 맺는다. 

20년 가까운 만남의 시간이 있었다. 서로가 혼자인 채, 혼자만 혼자인 채, 그리고 둘이 함께 하는 시간들이었다.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니었고 둘이 있어도 둘이 아닌 시간을 엠마와 덱스터는 보냈다. 하루를 함께 해도 좋을 사랑을 믿었던 두 사람의 시간은 엠마의 죽음으로 멈추지 않았다.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니었던 엠마의 삶이 여전히 덱스터와 함께 하고 있다. 혼자 산다고 혼자가 아니다. 모여 산다고 혼자가 아님이 아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계시는가?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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