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영화 「뮌헨 - 전쟁의 문턱에서(Munich - The Edge of War)(2021)」이 있다. 2017년 로버트 해리스(Robert Harris)의 베스트셀러 소설 ‘뮌헨(Munich)’을 원작으로 하였다. 배경은 1938년 9월 29일과 30일에 걸쳐 있었던 독일 나찌 정권 총통 히틀러(Adolf Hitler)와 영국 수상 네빌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 간 협상이다. 협상 장소 독일 뮌헨(München)에서 영화 제목이 나왔다.

체코의 영토였지만 독일어권이었던 주데텐 지역(Sudetenland)을 히틀러의 요구대로 독일에 양보함으로써 영국ㆍ프랑스와 독일 간 전쟁을 피하는 것이 협상의 주 내용이었다. 독일군이 주데텐 지역을 점령하더라도 체코와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과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는 협정을 맺은 것이다. 독일과 비교할 때 군사력이 보잘 것 없던 당시 체코슬로바키아는 뮌헨협정에 따라 자기 나라 영토에 들어오는 독일군을 그냥 바라만 보는 처지가 되었다.

당시 영국 수상 체임벌린의 일관된 외교정책은 이른바 유화정책(policy of appeasement)이었다. 호전적 나찌 정권과 최대한 갈등을 피하면서 ‘큰전쟁’을 막아보자는 의미에서였다. 1차세계대전의 참상을 경험한 지 20년이 채 안된 상황에서 ‘큰전쟁’에 대한 공포가 영국과 프랑스에 만연해 있었다. 또한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이 소비에트유니언(구소련연방) 공산정권에 대항하는 좋은 방책이 될 수 있다는 믿음까지 있었다. 주데텐 지역을 차지하려는 히틀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1차세계대전과 같은 ‘큰전쟁’을 다시 한번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영국과 프랑스 국민들의 여론과 체임벌린의 두려움이 ‘주데텐 지역 양보’라는 뮌헨협정을 낳았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만 바라보던 체코슬로바키아는 자기 영토를 하루아침에 독일에 내주는 치욕을 경험하게 되었다.

영화에서도 나오는 장면인데, 뮌헨협정을 맺고 런던으로 귀국한 체임벌린 수상을 영국국민들은 열렬하게 환영하였다. 주데텐 지역에 대한 독일군의 진입을 용인해 준다면 더 이상 유사한 요구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뮌헨에서 체임벌린에게 한 히틀러는, 그러나, 불과 1년 뒤인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였다.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을 웃음거리로 만든 제2차세계대전의 시작이었다. 히틀러에게 질질 끌려 다닌 협상 결과로 인하여 체임벌린은 이후 우유부단한 정치인의 상징이 되었다. 

영화는 옥스포드 대학교 동기생이면서 체임벌린 수상의 보좌진으로 일하는 휴 레가트(Hugh Legat)(조지 맥케이 George MacKay)와 독일 외교부에서 일하는 파울 폰 하르트만(Paul von Hartmann)(야니스 니뵈너 Jannis Niewöhner)라는 두 명의 가상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히틀러의 요구가 주데텐 지역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입증하는 비밀문서를 빼돌린 폰 하르트만이 자신의 친구인 레가트를 통해 체임벌린 수상을 비밀리에 만나 유화정책의 재고를 요청한다. 그러나 체임벌린 수상은 폰 하르트만의 요구를 거절한다. 히틀러가 체코 침공을 단행할 경우 독일 방위군(Wehrmacht) 장성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히틀러를 제거할 것이라는 폰 하르트만의 정보로도 체임벌린 수상을 설득할 수 없었다. 

체임벌린 수상과 독일의 주데텐 지역 점령, 뮌헨협정은 역사적 사실(事實)이다. 레가트와 폰 하르트만은 소설에서 만들어낸 가상 인물이다. 히틀러에 반대하는 방위군의 쿠데타 움직임은 새로운 ‘큰전쟁’이었던 2차세계대전 기간에도 있었다. 이를 소재로 한 톰 쿠르즈(Tom Cruise) 주연 영화 ‘작전명 발키리(Valkyrie)’도 있다. 그러나 히틀러 친위대의 체코 주데텐 지역 진입에 반대하고 히틀러를 제거하려 했던 쿠데타 시도는 소설과 영화의 긴장감을 더하기 위한 허구로 보인다. 

「뮌헨」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잘 버무린 긴장감 높으면서도 흥미로운 영화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로서 체임벌린 수상의 유화정책에 대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단순히 히틀러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한 나약한 양보가 아니었다. 당장 히틀러에 맞설 수 없는 영국의 입장에서 군비 재무장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대응이었다.” 

결단력도 없고 우유부단하기만 체임벌린이 히틀러에게 질질 끌려 다니다가 결국 2차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다는 역사적 해석이 있다. 이에 반해 (소설과) 영화는 히틀러와의 ‘큰전쟁’을 준비할 수 있는 1년의 시간을 확보했던 통찰력 있는 지도자로서 체임벌린의 모습을 주장한다. 어느 관점이 맞을까? 뮌헨협정을 뒤로 하고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체임벌린이 레카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히틀러가 약속을 깨면 연합국이 힘을 모으겠지. 미국도 참전하겠지. 내가 바보로 보이는 일쯤은 감당할 수 있어. 난 내가 가진 카드로만 협상을 할 수 있어.” 

1938년 10월 체임벌린 수상은 ‘큰전쟁’을 막은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1년 뒤 1939년 9월 역사상 가장 나약하고 결단력이 결핍된 겁쟁이 수상이 되었다. 체임벌린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70여 년 영국 수상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하여 이 글을 쓰지는 않았다. 「뮌헨」을 보다가 우리의 대통령 선거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이 글을 썼다. 체임벌린이 어떤 지도자였는지 답을 찾기 어려운 만큼,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 답을 찾기 어렵다. 공약이나 정치 노선의 차이가 보이질 않는다. 그러다보니 한국사회가 어떤 역사적 소명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진 대통령을 원하는지 판단이 잘 안선다. 이해관계나 진영에 따른 편가르기가 선명할 뿐이다.

게다가 1인 가구 정책 관련 공약을 찾아보시라. 어떤 후보가 청년 1인 가구를 찾아가는 쇼는 잘 봤다. 그 후보 캠프의 홈페이지를 들어가서 ‘1인 가구’로 공약 검색을 해보았다. ‘검색 결과 없음’이 떴다. 다른 후보들은 아직 1인 가구 관련 무대를 준비만 하고 계신 듯하다. 그분들의 홈페이지에서도 ‘1인 가구’ 검색어를 넣으면 ‘결과 없음’만 뜬다. 

지도자로서 체임벌린을 둘러싸고 논쟁할 수 있는 ‘뮌헨협정’이 있다면, 내가 투표하고 싶은 주요 기준 중 하나로서 ‘1인 가구’ 공약 모음을 봤으면 좋겠다. 아직 다들 만드시는 중인가? 누구라도 빨리 내놓으시길 기다려본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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