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선 기자
정윤선 기자

수면 아래 잠겨 잘 드러나지 않았을 때가 더 좋았을까. 농심을 두고 나온 얘기다. 농심은 이달 초 14년 만에 대기업 반열에 올랐지만 마냥 웃을 수만 없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됨과 동시에 높은 내부거래 비율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농심그룹은 25개 계열사에 공정자산총액이 5조500억원으로 집계돼 이달부터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포함됐다.

대기업 집단에 포함되면 일단 주요 경영 사항 공시의무와 일감 몰아주기 및 사익편취 금지 규제를 적용받게 된다. 비상장사 경영 현황과 계열사 간 거래 내역도 공개해야 한다. 일거수일투족 레이더망에 걸린다. 지난해 사업보고서만 놓고 보면 내부거래 지적 얘기가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작년 말 기준 농심 계열사는 율촌화학 등 상장사 4개와 비상장사 40개 등 총 44개다. 내부거래로 지적을 받는 곳은 태경농산(52.5%), 율촌화학(39.3%), 농심엔지니어링(32.3%), 호텔농심(45.4%), 엔디에스(33.6%) 등이다. 특히 라면스프를 만드는 태경농산과 포장재를 생산하는 율촌화학은 내부거래 비중이 높다. 

농심엔지니어링은 식품가공 설비를 제조하는 기업이고, 엔디에스는 그룹 계열사에 IT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모두 농심을 중심으로 사업이 이뤄져 있다.

현재는 창업주인 고 신춘호 회장의 세 아들이 핵심 사업군을 맡아 경영하고 있다. 장남인 신동원 그룹 회장이 지주사인 농심홀딩스를 통해 그룹 전반을 이끌고 있고, 차남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과 삼남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이 각각 그룹의 한축을 담당하는 형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 지분정리를 통한 계열분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지배구조에 손을 댈지는 아직 미지수다. 

'알짜'로 통하는 농심은 외부 매각보다는 계열분리를 통해 삼형제가 각자 경영 체제를 구축하는 편이 사업 효율을 유지하는데 유리하다는 시각이다. 

신춘호 명예회장이 보유했던 지분 상속이 마무리된 만큼 농심홀딩스, 율촌화학 등 핵심 기업의 지분 교환을 통해 계열분리를 진행하면, 그룹의 몸집 규모를 줄이고 이를 통해 대기업 지정을 피할 수 있다.

그룹 지주사인 농심홀딩스가 보유한 율촌화학 주식 31.94%(792만1700주)와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이 갖고 있는 농심홀딩스 지분 13.18%(61만1484주)를 맞교환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이 경우 신동윤 부회장은 율촌화학 최대주주에 올라 독립경영 체제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남 신동익 부회장이 최대주주(56.14%)인 유통기업 메가마트는 그룹 내 다른 기업에 비해 지분구조가 단순한 편이다. 신 부회장에 이어 농심근로복지기금(17.7%), 율촌화학 근로복지기금(8.67%) 등이 주요 주주로 올라 있다. 다만 내부거래 비중이 30%가 넘는 메가마트(53.97%) 자회사 엔디에스의 경우 신동원 회장(15.24%)과 신동윤 부회장(11.75%)의 지분이 섞여 있어 계열분리를 위해서는 지분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 사업 다각화를 통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농심이 내부거래 비율을 어떻게 낮출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이날 법원이 대기업집단의 일감 몰아주기(사익편취) 조항이 적용된 사건에 대한 첫 확정판결을 발표했다. 법원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최초 판단과 달리 총수일가에 대한 또렷한 경제력 집중이 입증돼야 제재할 수 있다고 최종 판단했다. 이로써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내부거래가 느슨해질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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