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 일본 전문 칼럼니스트
정희선 일본 전문 칼럼니스트

집 근처 500미터 이내에 슈퍼마켓 혹은 편의점이 없어 생활에 필요한 식료품과 일용품을 구입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쇼핑약자'라고 부른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용어이지만 일본에서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단어로 고령화 사회의 진전과 깊은 연관이 있다. 고령화가 진행되고 지방 도시 내 젊은 인구가 감소하면서 소매업체들은 중소규모의 점포는 정리하고 대형 점포의 운영에 집중한다. 이에 따라 운전을 하지 않거나 면허를 반납한 고령자들은 생활용품 구입이 쉽지 않게 되는 것이다. 대중교통의 배차 간격 또한 줄어들어 불편함은 커져만 간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의하면 65세 이상의 쇼핑약자는 2015년 시점, 824만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2005년에 비해 20% 증가한 수치이다. 그리고 이 숫자는 앞으로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한 고령 쇼핑 약자들의 수요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지가 최근 일본 소매업체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소매업체들은 이동 판매와 택배 서비스를 확대하기 시작한다. 

대형 드러그스토어를 운영하는 쿠오르 홀딩스는 자동차 2대를 활용해 도쿄 시내의 양로원과 고령자 대상 서비스 주택 등 6개의 시설을 방문하는 '출장 편의점'사업을 시작하였다. 편의점 로손과 제휴를 맺어 로손에서 취급하는 상품의 최대 2000품목까지 판매할 수 있다. 쿠오르 홀딩스는 로손 편의점 내 처방약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어 식품 뿐만 아니라 의약품도 판매할 계획이다. 2024년 3월까지 자동차를 10대로 늘리고 수도권 이외에서의 사업도 검토 중이며 방문 시설도 100개 정도로 확장할 계획이다. 

무인양품을 운영하는 양품계획은 2020년 여름부터 니가타현이나 야마가타현에서 '무지투고 (MUJI to Go)'라고 이름 붙은 버스를 활용하여 이동형 판매를 시작했다. 주방용품이나 식품, 의류품 등을 싣고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이 없는 동네를 돌아 다닌다. 홋카이도나 일본 중부 지방 등으로 이동형 점포를 차례 차례 확대하여 전국으로 넓혀갈 생각이다.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소매 기업들도 소비자에게 빠르게 물건을 전달하여 불편함을 없앨 궁리를 하고 있다. DIY 용구 및 자재, 잡화, 리폼 관련 용품 등을 판매하는 유통업체인 카인즈(CAINZ)는 온라인 쇼핑으로 주문한 물건을 점포에서 직접 고객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전환한다. 지금까지는 사이타마현 카와고에시의 물류 센터로부터 전국에 배송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배송지의 인근 점포에서 고객에게 배송함으로써 배송 시간을 줄인다. 필수품 등을 바로 사용하고 싶다는 고객의 니즈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세븐&아이 홀딩스 산하의 소고 세이부 백화점은 반찬 등 백화점 지하에서 판매하는 상품을 배달해 주는 택배 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백화점 지하의 상품은 집에서 작은 사치를 통해 만족감을 얻으려는 고령 소비자들로부터 수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점포에서 바로 고객에게 배송하는 형식은 일본의 편의점들이 이미 진행하고 있다. 세븐일레븐 재팬은 상품 약 3000개의 품목을 최단 30분에 전달하는 서비스를 2021년 1200점포까지 확대했으며 2025년에는 거의 전점에 달하는 2만점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반면 과제가 되는 것은 배송을 담당할 운전수를 확보하는 것이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일본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운전수 부족이 심각한 수준이다. 

'자동차 운전 직종'의 유효 구인 배율 (구직자 1명당 일자리수를 나타내는 비율, 예를 들어 이 수치가 1.8이면 1명당 1.8개의 일자리가 있다는 뜻)은 2021년 11월 시점, 2.13으로 전 직업군의 평균인 1.1을 두 배 정도 웃도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보스톤컨설팅그룹 (BCG)의 조사에 의하면 2027년에는 일본 국내에 필요한 운전수가 24만명 부족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일본의 유통업체들이 '쇼핑 약자'의 니즈에 부응해 이동판매 및 점포 직송 택배와 같은 전략을 실행하는 것은 고령화로 인해 거동이 불편해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쇼핑약자들이 또 하나의 고객군으로 떠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들이 나이 들어가면 행동반경과 소비행동이 달라지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니즈가 생긴다. 이는 고령화 시대의 주역인 고령자들의 행동을 기업들이 면밀히 관찰해야 하는 이유이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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