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est Hour(2017)는 제이차세계대전 당시 영국이 수세에 몰렸던 상황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더 이상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의 대배우 게리 올드먼(Gary Oldman)이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역을 맡았다.

말 그대로 '가장 어두운 시간, 가장 희망이 없는 때'에 영국 국왕 조지6세는 처칠을 전시내각 수상으로 임명한다. 1938년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전쟁을 시작한 독일은 1940년에는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를 연거푸 점령하면서 동맹국 영국을 궁지로 내몬다.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의 코앞까지 독일군이 들이닥친 것이다. 당시 영국이 얼마나 독일에게 밀린 절망적 상황을 보여준 영화가 덩케르크(Dunkirk)(2017년)이기도 하다. 

희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처칠은 영국민을 절망에서 끌어내는 명연설을 한다. 영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결국 제이차세계대전 승리의 초석이 되었던 '말더듬이' 왕 조지6세의 명연설을 영화 킹스 스피치(King's Speech)(2010년)에서 볼 수 있다면 처칠의 명연설을 다키스트 아워가 보여준다. 덩케르크, 킹스 스피치, 다키스트아워를 엮으면 희망을 잃고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국민을 희망의 길로 이끌어내는 지도자의 진심어리고 신뢰할 수 있는 모습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조지6세가 영국민이 믿지 않으려 했던 나치 독일의 전쟁 야욕을 '말더듬'에도 불구하고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면, 야당 지도자 3명을 포함한 전시내각 구성을 알리는 연설에서 처칠은 본격적인 전쟁을 앞두고 영국민을 하나로 묶는 지도력을 보여주었다. 속임수나 미화, 과장 어느 것 하나 없이, 진심을 전했기 때문이다. 처칠 연설의 감동을 영화는 이렇게 전달한다. 

"나는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피와 노고, 땀과 눈물은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가장 극심한 시련이 있습니다. 길고도 긴 투쟁과 고통이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은 묻습니다. 우리의 정책이 무엇이냐고? 저는 대답할 수 있습니다. 바다와 육지, 하늘에서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모든 힘과 능력을 모아 싸우는 것이라고. 모든 유형의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를 능가하는 저 괴물 같은 독재자(=히틀러)와 싸워야 합니다. 이게 우리의 정책입니다. 여러분은 묻습니다. 우리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나는 한 마디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승리!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승리! 어떤 폭력을 무릅쓰고라도 승리! 승리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승리가 없으면 생존도 없습니다."

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tears, and sweat. We have before us an ordeal of the most grievous kind. We have before us many, many long months of struggle and of suffering.

You ask, 'What is our policy?' I say it is to wage war by sea, land, and air with all our might and with all the strength that God can give us. To wage war against a monstrous tyranny never surpassed in the dark and lamentable catalog of human crime. That is our policy.

You ask, 'What is our aim?'

I can answer in one word. Victory! Victory at all costs. Victory, in spite of all terror. Victory, however long and hard the road may be. For without victory, there can be no survival! 출처: 영화 Darket Hour(2017년) 장면 중에서.

절망에 빠진 영국민에게 전쟁 승리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준 처칠의 명연설과 비슷한 시기에 행한 또 다른 연설이 있다. 퀸 엘리자베스의 소녀 시절 라디오 연설이다. 

1936년 아버지 조지6세의 등위로 인하여 엘리자베스는 10살의 나이에 왕위계승자가 된다. 독일군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버킹엄 궁을 떠나지 않았던 조지6세 부부가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는 영국민에게 희망이 되었다면, 영연방 국가의 자기 또래 어린이들에게 당시 소녀 엘리자베스가 동생 마가렛을 곁에 두고 했던 1940년 10월 13일 라디오 연설은 어둠을 밝히는 불빛 그 자체가 되었다. 대중들이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던 엘리자베스의 목소리 그 자체만으로도 영국 뿐 아니라 영연방 국가 국민들을 결속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졌다.  

영국은 독일군의 공습 대상 지역 어린이들을 부모와 분리하여 농촌 안전한 지역으로 보내는 조치를 취했다. 이에 따라 엘리자베스와 동생 마가렛도 버킹엄 궁을 떠나 윈저(Windsor) 궁에서 부모와 떨어져 살고 있었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부모와 헤어져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사는 느낌을 내 동생 마가렛과 저는 여러분들처럼 잘 압니다.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여러 어린이들과 공감하면서, 동시에, 우리 어린이들을 환영하며 받아준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미국 등에 사는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옆에 있는 내 동생과 함께 우리 어린이들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마가렛! 이리로 와. 우리 어린이들 모두 안녕히 계세요."

Thousands of you in this country have had to leave your homes and be separated from your fathers and mothers. My sister Margaret Rose and I feel so much for you as we know from experience what it means to be away from those we love most of all. To you, living in new surroundings, we send a message of true sympathy and at the same time we would like to thank the kind people who have welcomed you to their homes in the country... 

My sister is by my side and we are both going to say goodnight to you.

Come on, Margaret. Goodnight, children. 출처: https://youtu.be/x2DQYMwAM9g

자신이 국민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승리를 위한 확고한 의지와 노력뿐이라고 했던 솔직함에서 처칠이 영국민 결속의 단추를 채우기 시작했다면, 10대 소녀 엘리자베스가 처음으로 대중을 상대로 했던 라디오 연설은 영국 뿐 아니라 영연방 국가들이 독일을 상대로 결속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대중은 지도자의 솔직함과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 지도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듣고 희망을 갖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70년 왕위에 오르기 전에 퀸 엘리자베스는 이미 10대 소녀시절부터 또래 어린이들의 마음에 다가가면서 어른들까지 감동시켰고 영연방국가의 결속을 다질 줄 알았다. 그런 지도자가 사라진 지금, 영연방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연방의 운명이야 그렇다 치고, 우리는 여전히 그런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는가? 특히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는 1인 가구들에게 희망을 가져오는 지도자의 '말말말'을 기대해본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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