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정재훈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장르만 로맨스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가 한창 공포와 불안에 빠졌던 2021년에 개봉한 영화다. 김현(류승룡)은 대학교 교수이지만 인세로도 먹고 살 수 있는 잘 나가는 작가다. 다만 마지막 베스트셀러를 쓴 이후 7년 동안 신간을 못내고 있다. 7년의 공백을 극복한 김작가의 재기는 유진(무진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유진은 김작가가 교수로 있는 대학교의 학생이자 김작가의 옛동료 남진(오정세)의 동성 남자친구이었기도 하다. 김작가를 안 이후에 유진은 남진과 헤어졌다. 유진은 김작가에게 동성애적 사랑을 표현하지만, 동시에, 김작가의 이성애적 취향을 받아들인다. 오직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서 김작가의 재기를 도울 뿐이다.

김작가의 전처 미애(오나라)는 김작가의 뒤를 늘 봐주는 친구이자 출판사 사장 순모(김희원)와 아들 몰래, 사람들 몰래, 그렇지만 아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연애를 하고 있다. 자신의 학교 후배 혜진(류현경)과 김작가가 한 외도를 이유로 이혼하여 아들 성경을 키우며 살고 있다. 성경은 동네 아줌마 정원(이유영)을 사랑하지만, 성경은 정원의 연기 연습 상대일 뿐이다. 

김작가와 유진 사이에는 동성애적ㆍ동료애적 감정이 흐른다. 유진의 감정은 동성애적이다. 김작가의 감정은 동료애적이다. 김작가는 교수고 유진은 학생이다. 그러나 교수니까 가르치고 학생이니까 배우는 관계가 아니다. 교수와 유명작가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잃을지도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유진이 지적해 주었다. 그런 학생 유진을 동료로 받아들임으로써 함께 작업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김작가는 드디어 신간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유진은 김작가에 대한 자신의 동성애적 사랑을, 자신만의 감정으로 잘 가두고 추스릴 줄 아는 사람이다. 

미애와 순모는 한국 정서상 불륜인 듯 아닌 듯 묘한 관계다. 김작가와 순모는 출판사 사장과 작가 관계를 떠나서 인생의 절친이다. 이미 이혼해서 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아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절친의 전처와 하는 연애를 순모는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지 못한다. 미애 역시 순모와의 관계를 김작가에게 숨긴다. 아들 성경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빠는 다른 여자를 찾아갔지만 엄마는 아들 옆을 지킨다는 모성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모습이다. 그러나 이미 엄마가 다른 남자, 아빠의 절친과 사귀고 있음을 성경은 알고 있다.

학생의 문제를 당장 부모의 상황과 연결시켜 “너희 집에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어보는 담임교사의 편견에서 볼 수 있듯이, 성경은 자신의 문제를 모두 부모에게 돌리는 그 흔한 10대이다. 손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듯한 여자친구가 임신했다는 이유로 헤어짐을 당하고 다시 시작한 사랑의 상대가 이웃집 아줌마다. 그 아줌마는 연기 연습 상대 삼아 성경을 만나지만, 성경은 그 아줌마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사춘기 청년의 아름다우면서 애틋한 짝사랑이다.

장르만 로맨스에서 로맨스를 만드는 장르는 결국 사랑이다. 그러나 이른바 ‘정상적 규범’에 들어가는 사랑이 아니다. 그 사랑 안에 동성애, 동료애, (다시 시작하는) 이성애, (청소년의) 짝사랑이 있다. 동성애적 사랑과 동료애가 만나서 한 남자는 자신만의 사랑을 이루고 또 다른 남자는 인격적 성숙을 통해 사회적으로도 성취를 이루게 된다. 남의 눈을 피해 사랑하던 사람들은, 숨어서 하는 사랑의 끝에서 충분히 좌절하고 실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결국 둘만의 사랑을 완성한다. 짝사랑이 주는 너무나 아픈 고통을 온몸으로 느낀 후 비로소 그 사람을 사랑스럽게 지켜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된다.

사람은 다양한 사랑을 하는 존재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다양한 사랑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녀, 연령, 계층, 인종 등 많은 기준을 만들어 놓고 사랑의 모습을 단순하게 오려낸다. 그렇게 오려낸 틀에 맞지 않은 사랑에 대해서는 무시, 멸시, 비난의 시선을 보낸다. 그 틀에 맞는 사랑을 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숨어서 사랑한다. “더 이상 숨어서 사랑하지 마세요!”라고 장르만 로맨스가 말하는 듯하다. 로맨스의 장르는 다양하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여유를 가져보자.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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